햄릿, “너 죽고 나 죽자…” 피로 얼룩진 범죄극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알고 계신가요? ‘햄릿’부터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까지.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긴 고전은 하나같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드러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2016년을 기점으로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공연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우리 공연 예술계에서는 연극 ‘햄릿 : 더 플레이’(극단연극열전), 연극 '미친 세상에는 햄릿'(극단백치들), 연극 '오셀로'(극단파란달) 등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햄릿'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뇌와 광기의 인간 드라마 ‘햄릿 !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로 뒤엉켜 있는 무서운 범죄극이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지금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좌)창작뮤지컬 ‘햄릿 : 더얼라이브’ 포스터 @CJmusical 제공 / (우)2018 산울림 고전극장의 셰익스피어 공연 포스터 @산울림고전극장 제공
‘햄릿’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덴마크 선왕의 장례식 날, 선왕의 동생 클라우디우스는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와 결혼하면서 왕좌에 오릅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햄릿에게 죽은 부왕이 유령으로 찾아오면서 끔찍한 비극이 시작됩니다. 부왕은 아들인 햄릿에게 자신의 죽음이 클라우디우스에 의한 독살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복수를 명령하고, 충격에 빠진 햄릿은 모든 이의 의심을 피하고자 광인(狂人)을 연기하며 치밀한 복수극을 준비합니다. 선왕의 독살을 암시하는 연극을 만들어 숙부와 어머니 왕비 앞에서 공연하게 하면서 모든 상황이 점차 파멸로 치닫게 됩니다.
햄릿은 모든 등장인물이 사망하는 전형적인 복수 비극입니다. 극 초반부터 결말까지 피로 얼룩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왕에 의한 선왕의 살인, 폴로니어스의 죽음, 오필리어의 죽음, 왕비의 죽음, 왕의 죽음 등등… 살인과 복수, 자살과 결투가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기본 동기는 복수인데요. 햄릿의 왕(숙부)에 대한 복수가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레어티스(오필리어의 오빠)의 햄릿에 대한 복수가 있습니다.
▲ 뮤지컬 ‘햄릿 : 얼라이브’ 죽은 부왕의 유령을 만난 햄릿 (2018년) @CJmusical 제공
일견에서는 햄릿의 주제가 복수를 용인하는 고대법 사상과 그것을 금지하는 근대법 사상 사이의 갈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햄릿’의 배경은 12세기 덴마크 왕가이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인입니다. 이는 왕이 레어티스에게 햄릿을 향해 복수할 것을 권유하는 장면에도 나옵니다. 곧 ‘복수에는 경계가 없다’는 말인데요. 이러한 복수 사상이 함무라비 법전이나 모세의 십계에도 나오는 고대 법사상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개인이 복수를 할 수 있는 권리, 복수법(lex talionis)은 근대에 들어서며 위험성을 근거로 차츰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 속에서는 고려시대 경종 치세에 복수가 합법적으로 용인되면서 복수를 빙자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등 극도의 사회 혼란을 빚어내기도 했습니다.
▲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연극 ‘햄릿’ 스틸컷 (2016년) @네이버 영화 제공
햄릿의 최악의 범인, 클로디어스 왕
햄릿에 등장하는 최악의 범인은 바로 클로디어스 왕입니다. 그는 햄릿의 아버지를 죽였고, 다시 그 복수를 하려는 햄릿을 죽이고자 하나(살인 음모) 실수로 거트루드 왕비가 죽습니다. 후자는 형법 제15조의 사실의 착오에 해당하는 것인데, 문제는 객체의 착오인가, 방법의 착오인가 라는 것입니다. 객체의 착오란 A를 살해할 의도로 총을 쏘았으나 B를 A로 오인하여 총을 쏴 사망한 경우이고, 방법의 착오란 탄환이 빗나가 A가 아닌 B에 맞는 경우를 말합니다. 왕은 햄릿을 햄릿으로 인식했고 왕비로 착각하지 않았으므로 방법의 착오, 구체적 사실의 착오에 해당합니다. ( 「예술, 법을 만나다」, 박홍규지음, 이다미디어, 233p 인용)
햄릿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죽음 유형은 자살입니다. 극중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는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실성하여 돌아다니다가 물에 빠져 죽습니다. 이것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사고사였다는 견해도 있지만 염세자살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명예로운 동기에 의한 자살은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죄악으로 보아 나라에 따라서는 19세기까지 국왕에 대한 범죄로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오필리아의 자살은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올바른 장례절차를 밟을 수가 없지만, 극중 왕명에 의해 특별히 묘지에 안장됩니다.
영국에서는 1961년 자살금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자살 또한 살인으로 처벌되어 시신에 대한 손상 및 재산몰수가 가해졌습니다. 동반자살과 자살미수도 처벌되었는데요. 반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자살금지법이 폐지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현행법상 자살은 처벌되지 않으나, 단 형법 제252조 2항은 자살관여죄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작품 ‘오필리아(Ophelia)’
마지막으로 결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5막 2장의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를 기점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죽기 시작합니다. 사전에 왕과 레어티스가 준비한 계획과 달리 햄릿이 마시도록 준비된 독이 든 포도주 잔을 왕비가 마시고 죽게 됩니다. 결투 도중 레어티스는 독이 묻은 칼로 햄릿에게 상처를 입히는데 성공하지만 그 자신도 독 묻은 칼에 찔립니다.
결투에는 지켜야 할 룰이 있는데 레어티스의 입장에서 결투는 룰을 무시한 살인 계획이었습니다. 봉건사회에서는 재판상 결투, 근대에는 명예 결투가 용인되어 뒤마, 바이런, 푸슈킨 등의 문인들도 결투를 했습니다. 1817년까지 영국에서는 결투를 재판의 일종으로 허용했지만 1819년에는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 「예술, 법을 만나다」, 박홍규지음, 이다미디어, 234p 인용)
▲ 연극 '햄릿' (2014년) @vn미디어제공
햄릿은 왕을 죽이면서 복수를 완성하지만 결국 그 자신 또한 독이 온몸에 퍼지면서 죽음을 맞습니다. 어쩌면 복수는 복수를 원하는 자에게 복수하는 무서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국은 법이 지배한 사회였습니다. 당시에 쓰인 희곡의 3분의 1이 법정 장면을 포함하고 셰익스피어의 경우 그 비율은 3분의 2를 넘어섭니다. 셰익스피어가 근현대에 와서도 널리 읽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역시 법이 지배한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법적인 관점에서 셰익스피어 들여다보기, 고전을 즐기는 또 하나의 색다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글 = 제10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강사랑(일반부)
참고도서 =「예술, 법을 만나다」, 박홍규지음, 이다미디어,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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