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대한민국 법무부 공식 블로그입니다. 국민께 힘이되는 법무정책과 친근하고 유용한 생활 속 법 상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무부 블로그 2023. 2. 7. 18:00

 

 

우리는 모두 진실을 추구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은 해선 안 되는 것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따라서 거짓말을 한 사람이 도덕적·법적 비난을 받는 사회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진실을 옳은 것, 정의로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정의의 형식이라고도 칭해지는 법속엔 진실을 말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법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법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함께 알아봅시다.

 

 

1. 명예훼손죄, 그리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 인해 성립되는 범죄이다. 이 법을 통해 보호되는 명예는 위신, 체면 등의 좁은 의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고유한 인격체로서 사회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자체로 해석해야 합니다. , 이는 한 개인이 크고 작은 사회집단 내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는 바탕이 되며, 나아가 사회 내 권력 구조를 이루는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에,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 표현은 그러한 명예를 훼손시킬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하고, 불특정 혹은 다수가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때 적시되는 사실은 진실(truth)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에 존재하는 사안, 말 그대로 fact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너 너무 못생겼어.”, “저 사람은 사이비야.” 같은 말로는 의견이나 평가에 불과한 표현으로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명예훼손적 표현이 되려면 저 사람은 성형으로 얼굴을 완전히 갈아엎었대.”, “저 사람은 사이비 교준데, 한 명한테 1000만 원 가까이 뜯어냈대.” 같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적시가 필요합니다.

 

 

 

 

많은 명예훼손죄 중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발생합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감춰진 치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행위, 예컨대 전과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사생활, 과거 행위를 폭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모두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소위 미투, 학투, 빚투로 불리는 운동들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기를 다들 기억하시나요? 실제로 이때 용기 내 목소리를 냈던 많은 피해자들은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 고발을 당해야 했는데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 도리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들의 한낱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오용된 것입니다.

 

 

또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러한 부작용 이외에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시되는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제에 있습니다.

 

 

 

2. 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처벌 대상이 될까?

 

 

이렇게 부작용이 심각하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고려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2021, 헌법재판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재판관 5:4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판례에서 가져온 구체적인 헌재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적시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가 광범위해지고 있기에,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명예는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므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7헌마1113, 2018헌바330(병합) -

 

 

 

 

남편 B의 불건전한 사생활을 알게 된 A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대한민국의 간통죄는 2015년에 폐지되었기 때문에 B의 잘못에 대해선 민사적으로 처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A는 너무도 억울한 나머지 B가 다니는 회사에 이 사실을 폭로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이를 시행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A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A의 참혹한 심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A의 감정에 공감한다면, A의 결정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B가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은 그가 응당 치러야 할 업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라도, 이를 정의로운 대처라고 평가할 순 없습니다. 우선 사적 제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사생활에 대한 폭로로 명예를 박탈당한 B는 그가 이전에 누렸던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됩니다. 회사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정상적으로 기존의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결국 그는 경제활동이 단절된 채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게 될 것입니다. B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B가 처하게 될 사회 내에서의 참여와 의사소통 단절의 심각성을 분명히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3. 당연히 모든 진실 적시가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모든 진실 적시를 처벌하는 것엔 분명히 불합리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사익은 그렇다 치고 공익을 위해서 용기를 내는 사람들까지를 모두 법적으로 처벌한다면, 인격권을 보호와 표현의 자유 보장 간의 균형성을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안에는 독자적인 위법성조각 사유가 존재합니다.

 

 

형법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조항에 따라 적시한 중요한 부분이 진실이라면,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혹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땐 위법성이 부정되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식당의 부당했던 서비스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것, 의료 사고로 손해를 본 것, 앞서 잠시 언급한 학교 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것 등의 행위는 다수 시민의 향후 피해를 막기 위한 공익적 성격이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므로 혹여나 재판을 가더라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또한, 언론사의 취재와 기사, 공인에 대한 표현 등에 있어서도 판례를 통해 수립된 여러 원칙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요. 이에 관한 내용은 이어질 후속 기사를 통해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14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서채영(대학부)

참고

-홍영기, 형법, 박영사(2022)

-배종대, 홍영기, 범죄와 사회, 홍문사(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