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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죄와 언론의 자유

법무부 블로그 2023. 2. 8. 17:00

 

 

지난 기사에선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다룬 바 있습니다.

 

 

진실을 말 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https://mojjustice.tistory.com/8709819

 

진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진실을 추구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은 해선 안 되는 것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따라서 거짓말을 한 사람이 도덕적·법적 비난을 받는 사회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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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기사의 연장선에서 공적인 관심사에 있어 공익을 대변하고 권력에 대해 감시와 견제 기능을 수행하는 특별한 의무를 진 언론과 명예훼손 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뤄볼 예정인데요.

 

 

미디어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현대 사회는 미디어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공직자, 연예인, 비연예인을 가리지 않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신분이 정말 다양해지고 있고 이전과는 달리 공인의 기준, 혹은 개인의 사생활과 알 권리의 경계가 점점 더 불명확해지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지금부터 다루게 될 내용은 불명확성 속에 잊힌 공인과 언론의 책임을 상기함과 동시에 시민들 또한 이들이 맡은 바에 대해 어떻게 감시해야 할지를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공인은 과연 누구일까?

 

 

언론의 주된 관심사가 되는 공인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라고 보아야 할까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 고위공직자, 공무원과 같은 사람들을 포함하는 말이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용어는 명확한 기준 없이 연예인, 운동선수, 심지어 유튜버에게까지 사용되며 유명인과 동일어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에, 연예인의 사생활이 과연 공적 영역인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고, 이제 이 논의는 SNS와 유튜브 등의 발달과 함께 인플루언서에게까지로 옮겨가 많은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피트니스 강사 겸 인플루언서 정00씨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스스로를 공인이라고 칭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된 공인에 대한 기준은 2014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능, 명성, 생활양식 때문에 또는 그 행위, 인격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는 직업 때문에 공적 인사가 된 사람을 공인으로 규정하며 공직자, 정치인 이외에도 운동선수, 연예인, 피의자, 범인과 그 가족, 일정한 공적 논쟁에 스스로 참여하거나 개입한 사람 등 공인에 해당하는 예시들을 열거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판례에 일정하게 통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같은 대상에 있어서도 공인에 관한 판단이 달라지는 등 법관의 자의적 해석 기준이 적용되는 경향이 큽니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히 정의하기조차도 어렵다면, 굳이 공인의 범위에 대해서 계속된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공인인지의 여부는 어떠한 지위에 놓인 사람의 언행 및 처신을 도덕적, 법적으로 판단할 때 핵심 요소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공인은 공적인 혹은 대중 앞에 나서는 직무를 바탕으로 자의로든, 타의로든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므로 그들이 가진 도덕적, 법적 책임이 사인보다 더욱 엄격하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그들은 그러한 책임을 저버렸을 때 대중 전체의 비난을 감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사법권을 행사하는 사법부 또한 법적 처분을 내리는 데 있어 공유하고 있는 논리로, 사법부의 공인과 사인의 구분은 특히 명예훼손 소송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언론사와 공인 간의 끊을 수 없는 굴레: 명예훼손죄와 언론의 자유

 

 

대한민국에선 언론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이 활발해진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공적 존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공인에 대한 보도와 사인에 대한 보도가 차별성을 가진다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99년 헌법재판소는 명예훼손 사안에 있어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와 그 표현이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이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인정되는지에 따라 심사기준과 이익형량이 달라져야 한다고 판시했는데요. 이 판결 이후 2000년대부터는 점차 그 대상이 공인인지를 판단한 뒤 사안의 공적 성격에 따라 언론의 면책 범위를 확장하는 판결이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인과 공적 관심사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독재 정권 시기에 많은 탄압을 받아야 했던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시키고자 한 것이었죠.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여러 플랫폼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이들의 내밀한 사생활과 인격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언론의 감시기능, 언론의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완벽한 정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공인은 아직도 많은 경우 명예훼손 소송을 언론을 위협하여 그들의 입을 막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이를 남용하고 있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조회수와 같은 언론사 자체의 사익을 위해 공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대중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명예훼손을 둘러싼 이러한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선 이를 바라보는 법원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원칙들을 소개합니다!

 

 

법원은 명예훼손죄에 대해 법전이 명시한 최소한의 내용과 현실에 발생하고 있는 공인과 언론 간의 끊임없는 갈등 간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판례를 통해 두 가지 원칙을 마련한 바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진실오신상당성원칙과 악의성원칙입니다.

 

 

먼저, ‘진실오신상당성이란 그 취재의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진실한 사실의 증명이 있거나 혹여나 그것이 허위사실이라 할지라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경우언론의 명예훼손 위법성을 부정하는 원칙입니다.

 

 

법원은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그러한 원칙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공익을 위한 진실 보도에 있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객관적으로 검토하여 진실오신상당성 인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와 대면은 이루어졌는지, 정보원이 얼마나 믿을만한지, 어떤 자료들을 수집했는지 등을 파악함으로써 객관적인 진실확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죠.

 

 

다음으로 악의성은 공인 또는 공익과 관련된 보도가 악의적으로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거나, 중과실을 저지르는 등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라면 언론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원칙입니다.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자료 화면을 쓰고 있으면서 자료 화면이라고 명시하지 않는다던가, 관련 당사자가 아닌 사람을 인터뷰하여 마치 당사자인 것처럼 보도하는 행위는 악의성이 인정된 사례들입니다.

 

 

하지만 일부러 그 공인의 사회적 위상을 떨어뜨릴 목적으로 취재를 진행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혹여나 취재로 말미암은 기사가 허위라고 할지라도 공인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취재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해야 하며 공인의 가정사와 같은 내밀한 사생활에 대한 보도는 애초부터 언론의 자유 영역 안에 포함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공익성만 있다면 기자의 진실 보도에 대한 책임을 완화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하기 위한 언론의 특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언론이 취재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를 상기시킴으로써 결국 공인과 관련된 자극적이기만 한 보도를 방지하고 있습니다. , 언론에 채워진 족쇄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공인에 대한 언론의 취재라는 소재를 통해 공인의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 간의 균형점이 과연 어디일지를 다뤄보았습니다. 언론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인을 감시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국민 모두에게는 언론과 함께 공적 인물들을 감시하는 것에서 나아가 언론이 과연 제 기능을 잘 해내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쓴소리를 아끼지 않을 권리이자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판례의 원칙들 또한 중요하지만, 이와 별개로 적극적으로 각자가 가진 원칙에 따라 공인과 언론, 각각의 행위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각자의 책임이 잘 어우러진 때,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14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서채영(대학부)

 

참고

-하윤상, 이사빈, 한국사회의 공인은 누구인가?: 공공성 개념에 기반한 개념 재정립」 『행정논총57권 제4, 2019.

-박아란, 팩트체크와 명예훼손-진실오신상당성 법리와 중립보도 면책특권을 중심으로」 『언론정보연연구55권 제4,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