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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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늦지 않았다” 아버지 아직도 저를 믿으세요?

법무부 블로그 2010. 6. 18. 14:00

시장터 골목 뻥튀기 내고향

서00 / 안동교도소 재소자

 

 

 

 

저는 삼형제 중 장남으로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바로 부산 달동네로 이사를 갔고, 그 후에도 부모님을 따라 어린 나이에 이사를 참 많이 다녔습니다.

 

 

제 나이 열다섯 혹은 열여섯 쯤 됐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가족은 다함께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손님들이 가지고 오는 쌀과 콩을 정리했고, 제 동생은 뻥튀기 기계를 돌렸습니다. 어머니는 뻥튀기 쌀과자를 엿에 넣어 잘 버무려 놓으셨고, 아버지는 그것을 먹기 좋게 자르는 작업을 하셨지요. 그렇게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장사를 하고, 우리 가족은 저녁 11시쯤 다 같이 모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저는 가족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집은 늘 가난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늘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도시락 반찬은 맛난 소시지, 멸치볶음, 계란프라이 등 여러 가지를 싸와서 먹었습니다. 그에 비해 제 점심도시락은 항상 200원 짜리 단팥빵 하나와 우유 한 개뿐이었지요.

 

저는 그 초라한 점심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학교 가기 전에 먼저 빵과 우유를 다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엔 친구들을 피해 늘 혼자 운동장 구석에서 놀았습니다. 수업을 마친 후에도 저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일부러 친구들을 따돌린 후 부모님이 장사하시는 곳으로 갔습니다. 길거리에서 뻥튀기 장사를 하고 계시는 부모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우연히 시장에 왔다가 우리 가족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 중 한 명이 “거지 같이 못 사는.....” 하면서 우리 가족을 놀렸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부모님 앞에 있던 돌멩이를 주워서 그 친구 머리를 두어 대 쥐어박았다. 친구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고, 그 광경을 보고 놀라신 우리 부모님은 제게 달려와 저를 마구 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전 솔직히 저를 때리시는 부모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 가족을 놀린 그 친구의 부모님을 찾아가 치료비를 건네고, 정말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죄하는 부모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처음으로 저는 집을 나왔습니다. 열흘 정도의 가출이었는데, 그 시간동안 우리 부모님은 밤잠을 설치며 저를 찾아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몰랐던 저는 아버지가 무서워 감히 집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다 결국 집에 들어갔는데, 정말 심하게 혼날 줄 알았지만 생각과 달리 부모님은 따뜻하게 저를 대해주셨습니다. 제가 오면 주려고 했다며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놓으셨고, 저를 불러 따뜻한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마 아빠가 배운 것 없고 돈도 없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가진 사람들의 행복이 있고, 없는 사람들의 행복도 있다. 때로는 없는 사람의 행복이 더 값지고 큰 행복이 될 수도 있다”

 

그 때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가난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으셨고, 하루하루 흘린 땀과 보람을 큰 행복으로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슬프게도 이제 저는 그 때의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1997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장남이지만 아버지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불효자입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온 가족이 함께 뻥튀기 장사를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만의 향수. 저만의 그리움. 제 마음의 고향은 아마도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 온몸이 무겁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이 못난 아들을 찾아와 아버지는 접견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낙심하지 말고 항상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라. 언제나 아빠는 너를 믿고 응원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사실이 저를 무척 아프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자유의 몸이 된다면 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또 한번 주어진 삶을 철저히 준비하고, 가족의 소중한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과거 부모님과 함께 뻥튀기 장사를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나를 반성하고 새 삶을 살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불효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교정본부에서 재소자들의 글을 모아 만든 책

‘새길(2009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