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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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재소자들과 함께 본 아르헨티나전

법무부 블로그 2010. 6. 18. 11:00

월드컵! 지구가 아닌 화성에서도 본다?

 

화성직업훈련교도소 교도 김환준 

 

 

2010년 6월 17일 저녁 8시 30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도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유인 즉슨,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와의 경기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큼은 수용자들이 부럽기도...

수용자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평소 보다 더 빠르고, 깔끔하게 방 정리를 하고 TV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오늘 만큼은 직원인 저도 방에서 맘 편히 TV를 시청하고 있는 수용자가 더 부럽습니다. 저처럼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근무를 하는 교도관은 오히려 오늘 같은 날 수용자들이 흥분하여 방에서 싸움이 일어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맘 놓고 응원을 하기 보다는 눈과 귀의 신경을 좀 더 예민하게 곧추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축구 경기를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수용사동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방안의 TV를 잠깐씩 시청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축구공 하나로 온 국민이 애국자가 되는 날

“아!~~” “야!~” “아~ 이 저XXX"

경기 시작 17분 후! 갑자기 방에서 탄성소리와 약간의 욕설까지도 들려왔습니다. 혹시 무슨 일인가 해서 급히 근무자실과 가장 가까운 방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아~ 이런... 박주영 선수가 자책골을 넣고 말았습니다.

일부 수용자들은 흥분한 감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이고, 또 어떤 수용자들은 “괜찮아~! 아직 초반이잖아!”를 외치며, TV 속에 비치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더욱 열심히 응원을 합니다. 비록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몸이지만 오늘 만큼은 축구공 하나로 이들 역시 진정한 애국자가 되는 날입니다.

 

 

 

이어지는 실점

전반 33분, 아르헨티나의 추가 골이 들어갔습니다. 수용자들 가운데는 그냥 방 한구석으로 누워 잠을 청하는 수용자도 보입니다. 정말 잠을 자는 것은 아니겠죠. 아쉬운 마음에 선수들을 상대로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초반이지만, 사실 2점은 아르헨티나의 실력을 감안할 때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자유를 제한 받으며 수용생활을 하는 수용자들에게 우리나라의 승리는 정말 큰 힘이 될 텐데 근무를 서며 지켜보는 저로서는 우리 선수들도 안타깝고, 수용자들도 역시 안타깝습니다.

 

 

블루 드래곤 날다!

“어~ 어! 어~ 와~~~!!” 갑자기 함성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전반전이 다 끝나갈 무렵 우리의 블루 드래곤 이청용 선수가 드디어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열었습니다. 교도소가 수용자들의 함성으로 떠내려 갈 것 같습니다. 골과 함께 전반전 휘슬이 울리고, 수용자들은 서로 축구 전문가가 되어 전반전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000 선수는 컨디션이 안 좋은 거 같애. 후반에는 바꿔줘야겠어”, “막판에는한 골 따라갔으니 후반전에는 반드시 역전할 거야!” 우리 국민은 모두가 축구 해설가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봅니다. 모두들 상대방의 전략을 분석하고, 제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놓는 등 옆에서 듣고 있으면 정말 재미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벽은 높았다.

후반전 초반, 염기훈 선수의 아쉬운 1대 1 찬스! 이제 조금만 더 밀어 붙이면, 역전이라며 수용자와 교도관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던 순간, 아르헨티나의 세 번째 골에 이어 얼마 안 돼 네 번째 골까지...수용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일부는 구석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하고, 또 일부는 잠을 청하고, TV를 아예 꺼버리는 방도 있었습니다. 역시 아르헨티나의 벽은 높다며 앞으로 16강 진출을 전망하며 논쟁을 펼치는 수용자도 있고,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수용자들도 있었습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가 생각납니다. 결승전에서 만난 운명의 한일전! 9회 패색이 짙던 우리나라가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을 때 교도소 전체가 떠내려 갈 정도의 환호!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비록 경기에는 패했지만 이청용 선수의 골이 들어갈 때의 함성!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함께 환호하고, 함께 안타까워하고, 하나로 똘똘 뭉치는 기분!

 

비록 죄를 지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용자들이지만 스포츠로 하나가 되어, 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 스포츠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벼랑 끝, 23일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꼭! 승리하기를 재소자들도 한마음으로 바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그들이지만, 지금은 비록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그들이지만, 다음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반드시 승리하여 하면 된다는 희망을 그들에게 심어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