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술을 마신 대학생이 술값이 부족하여 자신의 학생증이나 노트북 등을 술집에 맡겨 두고 귀가하였으나, 다음날 강의에 지장이 있을 것을 걱정해서 주인에게 하소연하려고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 보니 주인은 없고 계산대 한쪽에 본인이 맡긴 물건이 놓여 있다면, 다시 가져갈까?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절도나 강도가 쉽게 떠올려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합니다.
다소 생소한 범죄인 ‘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요건, 형량, 주요 판례 및 사례 등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권리행사방해죄란?
‘권리행사방해죄’는 자기 소유의 재물이지만 담보 목적 등으로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자기의 물건을 무단으로 가져가거나 훼손시킴으로써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로, 점유자나 이해관계가 있는 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어서 규정된 죄입니다. 그러므로 타인 소유의 재물에 대한 재산범죄인 ‘절도죄’나 ‘강도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형법
제323조(권리행사방해)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취거, 은닉 또는 손괴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범죄의 성립요건은?
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요건을 「형법」 제323조에 명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본 죄의 행위주체는 원칙적으로 제3자가 아닌 ‘재물의 소유자’만이 될 수 있으며, 재물이 법인 소유인 경우 법인의 대표기관이 재물의 소유자로 간주됩니다. 만약 법인의 대표기관이 아닌 대리인이나 지배인이 대표기관과 공모 없이 한 행위라도 직무권한 범위 내에서 직무에 관해 타인이 점유하는 법인의 물건을 취거한 경우에는 대표기관이 한 행위와 법률적·사실적 효력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객체는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과 광학기록 등 특수매체기록 및 자기와 타인이 공동으로 점유하는 물건’입니다. 여기서 ‘타인’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으로서, 자연인뿐만 아니라, 법인 및 비법인단체 등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점유'란 법률, 계약, 유언, 물권(유치권, 질권, 전세권 등), 채권(임차권 등)을 불문하고 자기의 소유물에 대하여 타인이 사실상의 지배를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보호법익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간접점유, 점유보조자의 점유 등은 모두 제외됩니다.
‘권리의 목적’은 자기의 소유물이 타인의 제한물권이나 채권의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채권은 반드시 점유를 수반하는 것임을 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당권, 양도담보 등을 설정한 상태에서 본인이 점유하고 있는 물건, 가압류가 설정되어 있거나 압류된 물건, 정지조건부 대물변제의 예약권이 있는 물건, 특정물인 원목에 대한 인도청구권 등이 해당되어 객체로 인정합니다. 반면에, 단순한 채권채무관계 그리고 자기와 타인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물건, 가령 회사가 지입한 자동차나 매도담보로 제공된 동산은 객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취거’(取去)란,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을 그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점유자의 점유로부터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 즉 가져가는 것을 말합니다. 타인에게 담보로 제공한 동산을 타인 몰래 가져온 경우가 해당합니다. ‘은닉’(隱匿)이란 물건의 소재를 발견하기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숨기거나 감추는 행위를 의미하며, ‘손괴’(損壞)란 물건 자체를 손상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용도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도 포함합니다. 세입자가 계약기간이 지났는데도 나가지 않자 임대인이 자신이 설치한 문이나 보안장치를 부숴버린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권리행사방해죄는 “①자기 소유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이 ②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상태에서 ③취거, 은닉 또는 손괴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 타인의 권리행사가 실제로 방해된 사실과 무관하게 권리행사에 지장을 가져올 위험성이 있으면 본 죄가 성립합니다. 사례로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판례1> 자기의 소유가 아닌 물건
피고인이 갑 주식회사가 유치권을 행사 중인 건물 501호를 강제경매를 통하여 자신의 아들 을 명의로 매수한 후 열쇠수리공을 불러 그 잠금장치를 변경하여 점유를 침탈함으로써 갑 회사의 유치권 행사를 방해하였다.
대법원 2019.12.27. 선고 2019도14623 판결
부동산경매절차에서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사람이 타인과의 명의신탁약정 아래 타인 명의로 매각허가결정을 받아 자신의 부담으로 매수대금을 완납한 때에는 경매목적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수대금의 부담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명의인이 취득하게 된다 해도, 피고인이 위 건물 501호에 대한 점유를 침탈한 행위는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
<판례2> 타인의 점유
렌트카 회사의 공동대표이사 중 1인이 회사 보유 차량을 자신의 개인적인 채무담보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넘겨주었다. 피해자는 승용차를 약 4개월 동안 운행하면서 위 회사 직원의 승용차 반환요구를 거절해 왔다. 다른 공동대표이사가 피해자 사무실 부근에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를 몰래 회수하도록 하였다.
대법원 2006.3.23. 선고 2005도4455 판결
피해자의 이 사건 승용차에 대한 점유는 법정절차를 통하여 점유 권원의 존부가 밝혀짐으로써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보호할 가치 있는 점유에 포함된다.
<판례3> 물건을 은닉
피고인이 승용차 1대를 구입하면서 피해자로부터 차량 매수대금 2천만원을 차용하고 그 담보로 승용차에 피해자 명의의 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는데, 그 후 대부업자로부터 4백만원을 차용하면서 승용차를 대부업자에게 담보로 제공하여 ‘대포차’로 유통되게 하였다.
대법원 2016.11.10. 선고 2016도13734 판결
은닉으로 인하여 권리행사가 방해될 우려가 있는 상태에 이르면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고 현실로 권리행사가 방해되었을 것까지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권리의 목적이 된 피고인의 물건을 은닉하여 권리행사를 방해하였다
그밖에, 임차인이 월세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임대인이 본인의 임대건물 비밀번호 또는 잠금장치를 임의로 바꾼 경우, 임대차계약의 내용을 문제 삼은 임대인이 오피스텔 출입문 잠금장치에 나사못을 박아 임차인의 출입을 차단한 경우, 전당포의 잠금장치를 훼손하고 무단으로 들어가 담보로 맡긴 물건을 취거해 간 경우, 공장근저당권이 설정된 선반기계 등을 이중담보로 제공하기 위하여 다른 장소로 옮긴 경우도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합니다.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나요?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였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데요. 미수범을 처벌하지 않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지만, 폭행이나 협박으로 타인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점유강취’행위를 할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해당하는 가중처벌을 받게 되며, 이 경우 미수범도 처벌을 받습니다.
형법
제325조(점유강취, 준점유강취) ① 폭행 또는 협박으로 타인의 점유에 속하는 자기의 물건을 강취(强取)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 타인의 점유에 속하는 자기의 물건을 취거(取去)하는 과정에서 그 물건의 탈환에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범죄의 흔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때에도 제1항의 형에 처한다.
③ 제1항과 제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또한 「형법」 제328조에 따라 ‘친족상도례’가 적용된다는 것에 유념하여야 하겠습니다. 친족상도례는 친족 간 재산과 관련해서 8촌 이내의 직계혈족이나 4촌 이내의 인척, 동거친족, 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본 범죄가 발생할 경우 가해자에 대한 형이 면제되고, 기타 친족들 간에 발생한 경우에는 친고죄로 간주되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신분관계가 없는 다른 공범은 친족상도례의 적용 없이 처벌받습니다.
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
②제1항이외의 친족간에 제323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③전 2항의 신분관계가 없는 공범에 대하여는 전 이항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지금까지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자기의 물건을 타인에게 담보로 제공하거나 빌려주어 다른 사람이 점유 또는 그 물건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소유의 재물이라도 담보목적이나 본인 의사에 의해 점유를 이전한 경우라면, 타인의 점유는 당연히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본인 소유의 물건이라는 이유로 물건을 빼앗아오거나 채무를 상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무자의 물건을 강탈하여 점유하는 것은 불법적인 행위이며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글 = 제16기 법무부 국민기자단 박민성(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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