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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의 누드 행차, 죄가 될까?

법무부 블로그 2022. 3. 29. 09:00

 

 

 

벌거벗은 임금님의 누드행차는 죄가 될까?

 

옛날 어느 나라에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근데 이 임금님이 대단한 멋쟁이었습니다. 특히 옷에 욕심이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점점 더 멋진 옷, 지금까지 본적 없던 옷을 탐닉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멋진 옷을 만든 사람에게 상을 준다는 공고까지 하게 됐는데 이때 요상한 남자 둘이 나타나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옷을 만들어 준다 합니다. 그 옷은 바로 똑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옷이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 남자 둘은 사기꾼이었다는 겁니다. 나라에서 옷 만들라고 받은 재료비는 빼돌리고 열심히 옷 만드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선보이는 날, 사기꾼들은 있지도 않은 옷을 정성스럽게 꺼내들어 임금님에게 걸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임금과 이를 본 신하들은 서로, ‘나만 멍청해서 옷이 안 보이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다들 옷이 보이는 척을 합니다. 결국 임금님은 벌거벗은 채로 거리 행진을 나가게 되는데, 어른들과는 달리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소리치자 사람들은 모두 폭소하게 됩니다. 이후로 임금님은 자신의 허영과 부끄러움을 깨닫고 반성하여 훌륭한 임금님이 되었답니다.

 

동화이기는 하지만 임금이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한 것이 만약 오늘 날 일어난 일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요? 이번 기사에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공공장소에서의 노출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와 관련한 어떤 법령과 사례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7080 치마길이 단속부터 2019 T팬티남까지

 

미니스커트가 노출아이템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7년 가수 윤복희씨가 미니스커트를 처음 입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처음 입은 사람이 누군지 알 정도이니 당시 사회적인 충격이 굉장했나 봅니다. 일단 미니스커트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는 했는데, 충격적인 것도 잠시, 젊은 여성들에게는 곧 미니스커트가 엄청난 유행 아이템이 됩니다. 그러다 유신정권이 시작되며 미니스커트가 사회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명목으로 과다노출, 풍기문란 등을 경범죄로 취급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경찰들이 30cm 자를 가지고 다니며 치마길이를 단속했다고 해요. 당시 기준은 무릎 위로 노출된 부분이 20cm를 넘어가면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19732월에 생겨났다가 198812.31. 이 조항은 사라졌다고 하네요.

 

▲경범죄처벌법 제・개정사유로 살펴보는 변천, 1973년 (국가법령정보센터 검색)

 

 

2006년에는 입에 담기 좀 곤란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똥습녀사건이 있었어요. 2002 한일월드컵 이후 거리 군중응원이 엄청 유행했는데, 축구 경기만 있으면 다들 뛰어나가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다 뒤섞여서 행진하고 다 같이 전광판 보고 응원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 월드컵 당시 그 한가운데 한 여성분이 바지에서 엉덩이 부분이 투명한 비닐로 덧대진 바지를 입고 나타난 겁니다. 근데 땀이 나니까 그 비닐에 습기가 찬 것을 사람들이 똥습녀라고 별명을 붙인 것이지요. 소문의 주인공은 이 이후에도 상의 탈의 후 바디페인팅, 속이 다 비치는 얇은 소재나 뻥 뚫린 의상을 자주 입고 거리로 나섰고 방송에도 얼굴을 비췄습니다. 이때는 1세대 SNS라 불리는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할 때라, 그 파도를 타고 이 사건이 이슈가 되어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시 자료를 찾아보면 풍기문란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실제로 법적으로 제제에 대한 강경한 여론이 형성되거나 실제 집행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경범죄처벌법 제・개정사유로 살펴보는 변천, 1988년 (국가법령정보센터 검색)

 

 

 

201년에는 제천시 누드팬션사건도 있었습니다. 충북 제천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벗고 돌아다닌다며 공연 음란죄로 신고가 들어왔는데요. 나체주의 동호회원들이 누드 팬션을 운영한 혐의로 동호회장이 기소된 겁니다. 당시에는 공연음란이나 과다노출이 아닌 공중위생관리법풍속영업규제법위반혐의가 다뤄졌는데 법원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숙박업이라 볼 수 없다며 해당 혐의들을 무죄판결하고 2019년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한 사건입니다. 한편 이 경우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사유지였기 때문에 공연음란죄는 성립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2019년에는 T펜티남사건도 있었습니다. 충북 충주시에 티팬티를 입은 남성이 나타나 거리를 활보했는데 이때는 스마트폰은 물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넘어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가 일상화가 된 시기다 보니 소식은 사진과 함께 실시간으로 퍼져나갔고 빠르게 쟁점화 되었습니다. 처벌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가하면 경찰에게 판단을 재촉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자가 입은 의상은 속옷이 아닌 핫팬츠였고(매우 짧은 겉옷) 구체적인 음란행위를 한 것이 아니어서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해당 남성이 고발된 것도 노출이나 음란죄이 아닌 업무방해죄(카페에서 노출)이었습니다.

 

 

노출, 법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이번에는 노출에 대한 법적 제제를 알아보겠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경범죄처벌법이 있는데요. 경범죄처벌법3조에서는 경범죄의 종류를 나열하고 있는데 그 중 노출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이 조항은 원래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려야할 곳, 부끄러운 느낌등이 불명확하다며 위헌법률심판(2016헌가3)에서 위헌 판정을 받아 수정이 조항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체 주요부위,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다는 등은 여전히 다소 주관적이고 모호하여 논란 여지가 있습니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1. (빈집 등에의 침입) 다른 사람이 살지 아니하고 관리하지 아니하는 집 또는 그 울타리ㆍ건조물(建造物)ㆍ배ㆍ자동차 안에 정당한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
 
(중략)
 
33. (과다노출)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ㆍ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

 

과다노출을 경범죄로 취급하는 데에는 과다노출이 불쾌감을 주는 등 사회통념에 반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노출은 음란행위와도 연관지어 볼 수 있는데요. 형법245조는 공연음란죄를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245조(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그런데 문제는 음란하다는 개념이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겁니다. 목욕탕에서 씻으려고 탈의한 것을 음란하다 할 수 없고 애기들이 계곡에서 발가벗고 뛰노는 것을 음란하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가령 누군가가 핫팬츠를 입은 것을 보며 야하다라고 말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보다 더 짧은 운동선수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에게는 야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간 판례들을 참고해 보면, 노출의 정도, 행위자의 능동적인 의도 또는 피행위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등의 불쾌한 파급 정도를 포함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과다노출, 음란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듯합니다. 일례로 어떤 남성이 여름에 공원 분수에서 발가벗고 샤워를 했는데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지 않은 사례도 있다고 하니까요.

 

 

법은 사용자들의 배려로 완성되는 것 아닐까요?

 

 

위 동화에서 임금님은 벌거벗은 책 행진을 하였으니, 공연하게 벗은게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국정 퍼포먼스였나?’,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노출이었을까?’, ‘혹시 임금님이 성적욕망이나 의도가 있던 건 아닐까?’ 등등 이런 것들을 종합해야 노출에 대한 법적 판단이 가능해 보입니다.

 

동화에서 처럼 임금님의 누드 행진에 아무도 불쾌하다는 생각을 안 하고 오히려 나만 무식한 거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했다면, 또 임금님도 그런 의도였다면, 임금님의 누드 행진에 대한 공연음란죄나 과다노출로 인한 처벌은 어렵겠지요? 불쾌감을 주려는 의도도 없었고 불쾌감을 받은 이도 없다면요.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의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는 외침에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임금님이 부끄러워했다면 더더욱 이는 범죄행위는 아닐 겁니다.

 

 

우리 사회 통념은 늘 바뀌고, 생활양식도 계속 바뀝니다.

예를 들면 응답하라 1988’ 시대에 상상한 미래에는 꼭 미래인들이 쫄쫄이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 당시 보기에는 미래에 뭐가 아쉬워서 왜 저렇게 우스꽝스럽게 입고 다니지?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사람들이 레깅스를 그렇게들 입고 다닙니다. 그 레깅스도 처음엔 민망하다고 말이 많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또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법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사람마다 MBTI가 다르듯 다 성향이 다른데 사회구성원 전원이 만장일치하는 합의, 예외 없는 사례가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보는 법은 그 중에서도 사회구성원 다수가 이성적으로 합의한 대목들일 겁니다. 음란행위는 물론 과다한 노출에 대해서는 법에 어긋나는지를 따지기 전에 스스로의 양심과 상식에 비춰 주변을 배려해야겠습니다. 입는 사람, 보는 사람 둘 다요.

 

 

 

 

 

 

= 14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조남식(성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