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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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아이들··· “살인사건 누명을 벗겨주세요!”

법무부 블로그 2010. 8. 3. 17:00

‘담배꽁초’로 범인을 밝혀라

 

 

 

 

2009년 5월 19일 새벽.

안성시 대덕면 내리 원룸 뒤편에서 전신에 구타를 당해 쓰러져 있는 한 남자가 발견되었습니다.

 

“동료들과...술을 마시고... 차로 다가가는데... 어떤 남자...세 명이 다가와... 돈을 달라고 했어요. 없다고 하자 바로... 뭔가로 내리치고 저를 끌고 갔어요....”

 

힘겹게 말을 내뱉은 피해자는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결국 치료 도중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사건 현장에 남은 건 담배꽁초 4개. 이것으로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담배를 피운 네 명의 용의자!

경찰은 곧 담배꽁초에 묻은 침에서 유전자를 채취하였고, 그 중 하나에서 인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송□□의 유전자를 발견했습니다.

결국 송□□는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퍽치기를 했다고 자백을 했고, 결국 긴급체포된 피의자 송□□와 친구들인 피의자 안△△, 피의자 김○○은 최초 그 범행을 부인했으나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모두 구속되었습니다.

이로서 사건은 마무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경찰이 무서워서 거짓말 했어요. 저희가 안 그랬어요!”

 

 

구속된 피의자들이 검찰에 송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에서 범행을 자백했던 송○○는 ‘경찰에서는 무서워서 허위로 범행을 자백했고 지금 친구들은 이 사건과 전혀 관계없다.’며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피의자들 역시 경찰이 ‘객관적인 증거가 나왔고, 너희 친구가 이미 범행을 자백했으니 부인 해봐야 소용없다.’고 해서 겁을 먹고 허위로 자백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조사과정에서 특이했던 점은 송○○는 조사를 받는 내내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 아저씨 저희가 안 죽였는데요.’ 라고 말하는 등 현재 상황의 심각성과 중대성에 대하여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다는 겁니다.

 

이에 피의자 송○○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담임교사에게 물었더니, 송○○는 학교에서 어눌한 말투와 정확하지 않은 의사표현으로 다른 학생들로부터 이른바 왕따를 당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수준의 학습능력 조차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

 

 

 

 

그 후 피의자들의 경찰 조사과정에서의 진술을 면밀히 살펴보니 피의자들이 묘사한 범행 방법 등이 매회 조사 때마다 변경되었으며, 특히 현장검증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범행을 재현한 상황은 피해자가 생전에 진술한 이동 경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이에 수원지검에 피의자들에 대한 심리생리분석을, 대검 디지털 수사팀에 피의자들의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대한 분석을 각각 의뢰하고 추가적인 수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는 피의자들은 범행일자와 인접한 일시경에 서로 통화를 한 적이 없었으며, 피의자 안△△은 경찰에서 자백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친구에게 억울하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있었으며, 피의자들 모두에 대하여 심리생리검사 결과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진술에 진실 반응이 도출되었습니다.

 

또한, 피의자 김□□은 범행 추정 시간대에 인터넷에 접속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수차례 글을 게재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인 수사를 통하여 현장에서 담배꽁초를 피운 사람들을 확인하였는데, 인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주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 본건과는 관련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누명은 벗었으나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결국 그곳 범행현장은 외진 곳이어서 평소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주 모여 담배를 피우는 곳으로, 송○○ 또한 그곳에서 담배를 피운 사실이 있을 뿐이나, 경찰관의 추궁에 지적능력이 부족한 피의자는 거짓으로 범행을 자백하면서 자신의 친구들까지 지목했고, 피의자 안△△와 김□□ 또한 두려운 마음에 허위로 범행을 자백하여 구속된 것이었습니다.

 

검찰에서 피의자들을 석방한 이후 피의자들의 부모들로부터 제보를 받은 PD수첩 등 각종 언론에서는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위 사건은 경찰의 미제사건으로 다시 등록되어 현재 진범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구속되었던 피의자들에 대해서는 형사보상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경찰은 수사의 단서에 불과했던 현장의 담배꽁초에서 발견된 유전자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신하고 성급한 수사로 피의자들을 살인범으로 지목한 것이었으나, 다행히 대검 디지털수사팀과 수원지검 심리생리검사실의 정확하고도 빠른 분석을 통해 피의자들은 살인범의 누명을 벗고 개학일자에 정상적으로 등교할 수 있었습니다.

 

위 사건을 처리한 것이 벌써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당시 어찌나 고민을 했는지 아무런 자료를 보지 않고도 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특히 피의자들은 대부분 결손가정의 자녀들로 경제적으로 어려워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는 상황에 있어서 경찰에서의 수사 과정에서 보호자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였고, 심리적인 압박 상태에서 차라리 허위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눈물을 흘리며 진술을 했던 것입니다.

나이 어린 피의자들이 당시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누명을 벗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은 사실만을 알려줄 뿐 진실은 아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드러난 사실을 오판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 검찰과 경찰의 몫이겠지요. 다시 한 번 어깨가 무거워지는 사건이었습니다.

 

 

 

= 최재만 검사 (수원지검 평택지청)

모든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이 글은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입니다.

경찰 수사를 비난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며, 자백에 의존한 수사의 맹점에 대한

 자기반성적 성격의 글이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