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동은 가정의 보호 아래 건강하게 자랄 권리를 가지지만, 부모의 사망 혹은 학대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이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가정을 마련해주는 법적 절차가 입양인데요. 입양은 법률적으로 친자관계를 맺는 행위인 만큼 그 역사를 돌이켜보면 법률의 제·개정과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6.25 전쟁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입양 관련 법률과 그 함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961년 고아입양특례법 제정, 해외입양 사례가 증가하다
6.25 전쟁 이후 전쟁고아와 가난으로 유기된 아동이 증가했고,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가족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민간 차원에서 전쟁고아를 구제하기 위한 해외입양은 한국 입양의 시초가 되었는데요. 특히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배경에는 1961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이 있었습니다. 미국 이민 자격 중 하나로 이민법상 고아자격이 신설되어 미국입국의 장벽이 완화됐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고아란 14세 미만의 타국의 고아로서 양쪽 부모가 모두 사망하거나 실종된 경우, 한 부모만 있고 그가 아동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 부모로부터 유기된 경우를 포함하며 범위가 넓었습니다. 덕분에 한국의 전쟁고아 대부분이 이에 해당할 수 있었죠.
동년에 한국은 고아입양특례법 제정을 통해 해외입양 절차를 간소화하고 촉진하고자 노력했는데요. 1961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이 입양목적의 입국비자를 발급해준 고아 34,568명 중 19,283명이 한국 아동이었습니다. 전체의 약 54%가 한국인 만큼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사례가 많았어요.
대리입양과 고아호적 관행
해외입양이 이민 성공 신화로 비추어질 수 있으나 아이의 관점에서 비극일 수 있습니다. 고아입양특례법 제 6조에 따라 입양을 원하는 해외 부부는 한국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대리인을 통해 입양할 수 있었습니다. 일명 ‘대리입양’ 관행이 성행했는데요.
고아입양특례법
제6조 (외국인의 대리) 외국인은 각령의 정하는 기관으로 하여금 입양절차의 일부를 대리하게 할 수 있다
신속한 입양절차에만 치중한 나머지 아동의 복리는 도외시됐습니다. 129명의 입양아동을 한 번에 이송하는 과정에서 5명의 사망아동이 발생하거나, 비행기를 탄 아동 23명이 집단적으로 발병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양부모 심사과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학대 등 아동의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가 침해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었어요.
1976년 고아입양특례법 폐지 후 입양특례법이 제정되긴 했으나 대리입양은 지속됐습니다. 더불어 미아를 기아로 둔갑하여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고아호적 관행도 존재했습니다. 고아 신분이어야 미국 비자발급이 용이하고 친부모 동의가 필요 없어 입양절차가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죠.
대리입양과 고아호적 관행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해외입양이 늘어났고, 한국은 아동수출국으로 오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1년 입양특례법 전면개정, 아동 이익의 최우선 원칙이 적용되다
1995년 입양특례법 전면개정 이후 입양이 국가의 책임으로 전환되긴 했으나 여전히 입양절차는 민간기관에 일임됨에 따라 불법적인 관행이 존재했습니다. 양부모가 친부모와 합의하여 마치 친자식처럼 허위 출생신고하는 이른바 ‘비밀입양’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이는 엄연히 당시 입양법 위반이며 형법상 공문서 위조에 해당하는 불법이었습니다.
불법적인 입양 관행 하에 아동의 이익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자, 2011년 입양특례법이 전면 개정되었습니다. 이때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아동의 이익 최우선의 원칙’을 입양특례법 제4조에 규정했습니다. 입양절차의 편의성보다 아동의 권리와 복리에 점차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죠.
민간 입양기관에게 모든 입양절차를 맡겼던 전과 달리, 법원이 개입하여 입양이 아동복리에 최선인지 검사하게 됐습니다(입양특례법 제11조 제1항). 또한, 친모의 출산 전 입양동의는 효력이 없게 만들고 친생부모의 입양동의 시점을 아동출생일로부터 1주일 후로 제한했습니다(입양특례법 제13조 제1항). 출산 후 입양을 다시 숙려해보는 기간을 제공하여 최대한 원가정에서 아동이 자랄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입니다. 한편, 입양인의 알권리를 보장하고자 입양 정보공개청구권도 도입했습니다(입양특례법 제36조).
입양특례법
제4조(입양의 원칙) 이 법에 따른 입양은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제11조(가정법원의 허가) ① 제9조에서 정한 아동을 입양하려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서류를 갖추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13조(입양동의의 요건 등) ① 제12조제1항에 따른 입양의 동의는 아동의 출생일부터 1주일이 지난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제36조(입양정보의 공개 등) ② 중앙입양원 또는 입양기관의 장은 제1항에 따른 요청이 있을 때 입양아동의 친생부모의 동의를 받아 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 다만, 친생부모가 정보의 공개에 동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친생부모의 인적사항을 제외하고 정보를 공개하여야 한다.
2023년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 제정, 정부가 입양 전 과정을 책임진다
그러나 입양특례법 적용 이후에도 예비 입양가정에 위탁보낸 아동이 양부의 학대로 뇌사에 이르게 되거나 입양 부모가 입양 딸 살해 후 시신을 훼손하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법원에서 입양의 여부를 결정하지만, 입양 전 위탁결정, 양부모 심사 등은 민간 입양기관의 단독결정으로 운영되고 입양이 아동 복지 시스템과 분리된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이에 한국은 작년에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정부가 입양절차의 핵심을 관장할 수 있도록 법적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민간 입양기관이 아닌 보건복지부가 직접 양부모 자격을 심사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입양기록물을 관리하게 됩니다. 지자체 산하 사례결정위원회에서 원가정에서 우선 양육될 수 있도록 복지제도와 연결하여 지원한 뒤, 입양을 최후의 조치로 고려합니다. 이때 무분별한 국제입양을 최소화하고 국내입양을 우선합니다.
1993년에 한국이 서명한 ‘국제입양에서 아동의 보호 및 협력에 관한 협약(이하 헤이그협약)’은 아동의 복리를 보장하기 위해 권한 있는 공적당국의 관장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헤이그협약 비준 준비에 따라 내년부터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될 예정으로 또 한 번의 입양제도 개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초기 한국의 입양은 전쟁고아를 구제하기 위해 해외 입양절차 간소화를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입장에서 입양은 최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국가는 최대한 원가정 양육을 지원하되, 입양이 불가피하다면 아동이 건전한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될 때까지 입양제도는 발전해오는 중입니다. 최근 또 한 번의 전면개정이 아동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글 = 제16기 법무부 국민기자단 박도형(대학부)
참고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재단법인 동천 공동편집(2020), 『아동·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연구』, 111-148p.
이경은(2017), 「국제입양에 있어서 아동 권리의 국제법적 보호」, 박사학위 논문, 서울대학교, 42p.
전홍기혜 기자, “입양을 보낸 게 아닙니다. 인신을 내준 겁니다.”, 프레시안,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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