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대한민국 법무부 공식 블로그입니다. 국민께 힘이되는 법무정책과 친근하고 유용한 생활 속 법 상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영화1987, 현실은?

법무부 블로그 2018. 1. 10. 09:00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영화 <1987>에서 대공수사처장(김윤식 분)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박종철 군 사망원인을 발표하는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1987> 스틸컷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1987114.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습니다. 대공분실 5층에서 경찰관 5명은 같은 학교 선배 박종운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며 박종철 군의 양손과 양발을 묶고 얼굴을 욕조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스물두 살 박종철 군의 심장이 멈췄습니다. 경찰이 발표한 사망원인은 단순 쇼크사. 고문치사 사건을 숨기려는 권력과 이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 했던 이들의 뜨거운 노력이 영화 <1987>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영화 <1987>을 관람한 배우 강동원과 문재인 대통령(왼쪽 사진 왼쪽부터). 문무일 검찰총장, 김부겸 행자부 방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 이철성 경찰청장(오른쪽 사진 왼쪽부터)/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도 영화관을 방문해 시민들과 함께 영화 <1987>을 관람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내 울면서 뭉클한 마음으로 봤다고 소감을 말했다고 하는데요. 앞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뤄서 꼭 보려고 했었다”라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이철성 경찰청장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여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듯 그 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에게 1987년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먼 옛날이야기로 느껴질 텐데요. 그 시대가 낯선 분들을 위해, 또는 당시의 기억을 되짚고 싶은 분들을 위해 실제 1987년 역사 속에서 법은 어떤 판단을 내렸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문치사죄, 어떤 처벌을 받았나

 


박종철 군 사망사건을 세상에 알린 중앙일보의 첫 보도(왼쪽)와 사인이 고문치사라는 사실을 밝힌 동아일보의 1면 기사./사진=중앙일보, 동아일보

 

박종철 군의 죽음은 사람들을 6월의 광장으로 모이게 만들었고, 고문 경찰관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627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반금곤 경장에게 징역 15, 황정웅 경위와 이정호 경장에게 각각 징역 12년과 10년을 구형했습니다.

 

일주일 뒤인 198774. 재판부는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반금곤 경장은 징역 8, 황정웅 경위는 징역 7, 이정호 경장에겐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71일만이었습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살인자에게 징역 15년은 너무 가볍다며 유족들과 방청객의 항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서 이번 범행으로 한창 피어나는 꽃봉오리 같은 한 대학생이 푸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고문으로 인한 시비가 종식되는 뼈아픈 교훈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군을 고문한 대공형사들이 숨진 박종철 군을 바라보고 있다/사진=네이버 영화 <1987> 스틸컷

 

 

고문 경찰관들에게 15년형을 선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제4조의2 체포·감금에 대한 가중처벌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형법 제125조에 따라 검찰이나 경찰이 형사피의자나 다른 사람에게 가혹행위를 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해집니다. 만약 가혹행위로 인해 사람이 죽었을 경우 가중처벌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해당 법 조항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고문 경찰관들,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었다?

고문경찰관들은 항소심에서 그동안 대공업무에 성실히 종사했고, 박종철 군 유족에게 진심으로 애도와 사과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는 이유로 형량이 줄어 10년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는데요(조한경 10, 강진규 8, 반금곤 6, 황정웅 5, 이정호 3). 이후에 이들은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하지 못했으며 상사의 명령에 의해 강요된 행위였다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에선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형량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은 욕조의 턱에 피해자의 목 부분이 눌려 질식현상 등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경험상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다고 상고이유를 밝혔습니다. 또한 가혹행위를 가하라는 등 명백한 위법·불법 명령은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대법원 1988. 2. 23. 선고 872358 판결). 박종철 군이 사망한 뒤 1년하고도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최종적인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영화 <1987> 속 남영동 대공분실 모습. 현재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운영 중인 대공분실 5층에 실제 박종철 군이 숨진 509호실이 보존돼 있다/사진=네이버 영화 <1987> 스틸컷

 

이 영화에 특별출연 한 배우 강동원 씨는 영화를 준비하면서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거구나생각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는데요. 실제로 영화를 보다보면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그 당시에는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대부분의 관객들이 나가지 않고 앉아있는 모습 또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시대! 그 시대를 치열하게 맞닥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제10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이밝음(일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