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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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대만 맞고 끝내려했는데, “이게~ 말이 돼?!”

법무부 블로그 2013. 2. 13. 08:00

 

 

 

취직이 안 돼 경제적 능력이 없는 한대만 씨는 돈이 많은 나부자 씨에게 몇 차례 돈을 꾸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격이 그리 순하지 않은 나부자 씨는 매일 한대만 씨를 찾아와 소리치며 독촉했고, 그때마다 한대만 씨는 곧 취직이 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에 좌절한 한대만 씨는 나부자 씨의 조건을 승낙하고 빚 500만원을 청산하기로 했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야구배트로 다섯 대만 맞자’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섯 대를 맞은 한대만 씨는 뼈가 여러 군데 부러져 입원하고, 이 거래사실을 몰랐던 한대만 씨의 부인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나부자 씨를 고소했습니다.

 

허락을 받고 한대만 씨를 폭행한 나부자 씨는 과연 처벌 받을까요?

 

 

 

■ 처벌받지 않는 예외, '피해자의 승낙'

 

빚을 매로 갚은 한대만씨. 이 빚은 이제 없어지는 걸까요? 과연 돈을 받는 대신 한대만씨를 흠씬 두들겨 준 나부자씨는 과연 죄가 없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피해자의 승낙’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형법

제24조(피해자의 승낙)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에서 보듯 ‘피해자의 승낙’이란, 어떤 불법행위에 대하여 가해자가 그 행위를 하도록 관련 피해자가 동의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언뜻 들으면 누가 자신에게 행해지는 불법행위를 허락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 법조항이 적용되는 행위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간단한 예로 격투 스포츠에서의 상해가 있습니다. 이는 서로 간에 상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겠죠? 또 다른 예로는 집주인의 허락을 받은 주거 공간에의 출입이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 것, 의사가 치료를 목적으로 환자의 신체를 다루는 것, 그리고 재산이나 명예에 관한 허락된 처분은 처벌할 수 없다고 합니다.

 

 

 

 

■ 승낙했다고 무조건 합법은 아니다!

 

§형법

제252조(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 등) ①사람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하지만, 승낙이 있었다고 모든 행위가 합법이라면 우리 사회엔 큰 혼란이 일어나겠죠? 법조항의 내용대로 피해자가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법률에서 따로 그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야 하는데요, 법조항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행위는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다 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 아동 성범죄, 낙태, 도박 등이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살인은 형법상으로 특별히 규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승낙을 받았다 하더라도 형법 제 252조와 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처음에 제시한 형법 제 24조의 내용을 다시 볼까요? 그 중 ‘처분할 수 있는 자’,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이라는 의미는 알겠는데,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감이 오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판례는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24조의 규정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되는 피해자의 승낙은 개인적 법익을 훼손하는 경우에 법률상 이를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의 승낙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승낙이 윤리적·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이 피해자와 공모하여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였다면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므로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승낙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 및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피해자 승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거나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는 위법이 없다.”

-대법원 2008.12.11. 선고 2008도9606 판결 中-

 

이 사건은 두 사람이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보험금을 타기 위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한 판례인데요. 대법원은 원심 고등법원의 판결을 인정하면서 상해에 관한 피해자의 승낙을 위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위 판례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승낙이 윤리적·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쉽게 말해, 피해자의 승낙이라 할지라도 신체나 생명에 관한 불법행위 등 윤리에 어긋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가서 한대만 씨와 나부자 씨 사건은 온전한 피해자의 승낙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빚을 폭력으로 갚는다는 것은 윤리적 도덕적인 사회상규에 반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나부자씨는 폭력행위에 대해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사람의 신체까지는 NO!

쉽게 말하면, 아무리 피해자가 승낙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신체를 해하는 행위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만약 이러한 예외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군 면제를 위해 일부러 신체에 손상을 가한다던지, 신체와 재산을 바꾸는 등의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들이 많아져 큰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계약 자유를 존중하고 개인적 법익에 관한 처분권을 강조한다고 해도 사람의 몸과 생명을 위협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는 도덕을 넘어서 법이 처벌할 수 있다는 사실, 이젠 아시겠죠?^^

 

 

글 = 박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