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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법적으로 보호받는 ‘여성’이 되다!

법무부 블로그 2011. 8. 8. 17:00

 

얼마 전, 트랜스젠더의 호적상 성별정정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는데요. 200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호적정정과 개명을 최초로 허가하여 성적소수자들도 당당히 바뀐 성에 대한 권리와 삶 자체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 최초의 성별정정 사례는 하리수가 아니다? | http://blog.daum.net/mojjustice/8705145 >

 

태어났을 때 정해진 성(性)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성(性)으로 당당히 남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트랜스젠더!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갈 길은 험난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 까지도 트렌스젠더가 성범죄의 대상이 되었을 때에는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트렌스젠더는 여성이 아니라고 판단하던 시절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그 시절은 트랜스젠더가 대놓고 자신의 성에 대해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사람들의 편견 또한 굉장히 심했던 때였으니까요.

 

1995년 봄,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A씨가 한 남성에게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성전환을 한 사람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부녀자의 성폭력 사건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성이 여성으로 성 전환 수술을 받았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이 없고, 사회통념상으로도 성전환을 한 사람을 여성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라고 하여 객체를 부녀에 한정하고 있고 위 규정에서 부녀라 함은 성년이든 미성년이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불문하며 곧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피고인이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귀속감을 느껴 왔고 …(중략)… 여성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요소인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의 내·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성전환 수술을 한 경위, 시기 및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일반인의 평가와 태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는 없다.”

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판결문 전체보기 클릭 http://j.mp/orCHKA )

 

 

성전환 수술까지 해서 눈에 보이는 것도 여자고, 아이만 낳지 못할 뿐이지 생식기 또한 여성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었던 피해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이 없고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폭력사건을 성폭력사건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2009년, 트렌스젠더가 여성으로서 법적 보호를 받다

법이 트랜스젠더의 성(性)을 보호해야겠다고 결정내린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훨씬 지난 2009년 이었습니다. 한 남성이 성전환자 B씨가 사는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치고, 강제로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되었는데요.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절도죄와 주거침입죄 그리고 ‘강간죄’를 적용하였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수차례 성전환수술과 호르몬 요법을 시행하여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으며, 한 남성과 10년간 동거생활을 하면서 성관계를 유지해 왔고, 주민들과도 여성으로서 생활하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등 여러모로 볼 때, 사회적 심리적으로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더불어 “이미 대법원에서도 지난 2006년 6월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신청을 받아들여 성전환자의 사회적 심리적 성별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피해자를 강간죄의 피해자로 인식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법,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린 걸까?

 

 

 

부산지법의 판례가 있은 후 같은 해 9월, 대법원은 같은 사건에 대해 ‘호적상 남성인 트랜스젠더도 강간의 피해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첫 판례를 내놓았습니다. 이로써 트랜스젠더도 완전한 여성으로서 형법상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과거 판례에 비추어 볼 때, 법이 고수해 왔던 성(性)에 대한 생각은 ‘선천적인 것으로서 인위적으로 외형을 바꾼다고 하여 기본적인 성 자체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판례를 보면 법이 생각을 바꾼 것 같습니다. 선천적인 것 보다는 개인이 살아온 환경을 이해해야 하고, 스스로가 선택하고 영위하고 있는 성적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쪽으로 말입니다.

 

성을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덧셈 뺄셈 하듯이 똑 부러지는 정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법이 성(性)을 해석함에 있어서 과거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변했다는 것이고, ‘약자’ 와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낮췄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형법학계는 강간죄 피해자를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까지 확대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앞으로 법이 얼마나 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글 = 법무부

이미지 = 알트이미지

참조 = 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MBC뉴스, <대법, 트랜스젠더 강간죄" 첫 판례>, 2009. 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