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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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가 많이 저항했는지 중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법무부 블로그 2011. 7. 18. 08:00

 

껄끄러운 만남으로 시작, 오아시스

영화 ‘오아시스’는 사회낙오자로 낙인찍힌 한 남성과 중증뇌성마비장애인 여성의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언가 한 가지씩 부족한 남녀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사랑을 키워간다는 내용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 영화 ‘오아시스’의 종두와 공주 ⓒ 영화 오아시스, 네이버 영화검색

 

 

교통사고 가해자인 형 대신 교도소에 다녀온 종두(설경구 분)는 출소 후 교통사고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중증뇌성마비장애인인 공주(문소리 분)를 만나게 되는데요. 말도 못하고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공주였지만, 종두는 그녀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고 그녀에게 성적인 감정을 내비칩니다. 하지만 공주는 처음 보는 남자의 등장과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종두는 이내 머뭇거리며 아파트를 떠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데요.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사회낙오자라는 주홍글씨도 아니고, 뇌성마비라는 병도 아닌 ‘비장애인’들의 고정관념과 시선이라는 일침을 가하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영화의 전개는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으로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사실 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 종두가 한 행동은 엄연한 ‘성추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만약 공주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종두가 자신에게 했던 행동을 경찰에 신고하고 종두는 그에 합당한 죄 값을 치르게 된다면 영화 ‘오아시스’는 영화가 아닌 그냥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장애여성에 대한 성추행과 성폭행, 갈수록 늘어

 

 

영화는 영화일 뿐! ‘오아시스’처럼 성추행이나 성폭행으로 시작한 만남이 ‘사랑’으로 결론지어지는 경우는 현실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지난 7월 6일에는 노숙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장애인을 여관으로 유인한 뒤 폭력을 휘두르고 성폭행한 혐의로 50대 남자가 구속되었으며, 며칠 후인 12일에는 장애인이 같은 처지인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떤 사건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랑’으로 결실을 맺을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장애인, 특히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폭행 사건이 많은 이유는 ‘정신지체장애인이니 신고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한건지 잘 모를 것이다.’라는 가해자의 섣부른 생각 때문입니다. 자신은 ‘멀쩡한’ 사람이고 장애인은 ‘부족한’ 사람이니까 우월한 위치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폭력을 동반한 성추행 및 성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지요.

 

사실, 정신지체장애인들은 성폭력에 대한 인지능력과 방어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성적인 학대를 당하는 중에도 ‘싫다!’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학대를 당한 이후에도 상황을 제대로 증언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에서는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 불능인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자는 형법에 의해 처벌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장애인에 대한 간음 등)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

 

형법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신지체’라는 특수한 상황을 ‘항거 불능’ 상태로 볼지 말아야 할지는 한참 논란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정신지체가 있다고 한들, 아이도 아닌 어른인데 반항도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장애인 강간죄, ‘얼마나 저항했는가’가 기준이던 시절

 

 

 

지난 2004년, 정신장애 2~3급 수준의 한 가정주부가 있는 집에 들어가, 그녀에게 주먹으로 때릴 듯한 태도를 취하며 반항을 억압한 후, 강제추행을 한 남자가 있었는데요. 원심은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대법원에서는 이를 파기하고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정신장애를 앓고는 있었지만, 평소 살림을 잘 해 오던 생활패턴으로 보아, 그녀가 ‘항거불능’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피해자에게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주먹으로 때릴 듯한 태도를 보여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한 후 상체를 껴안아 넘어뜨린 뒤 피해자를 간음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크게 소리를 질러 피해자의 딸이 오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는 것으로서,

 

피해자가 정신분열병이라는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인지가 공소사실 자체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중략)…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위와 같은 피해자의 이 사건 당시의 정신상 장애의 정도 및 상태, 사건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행사한 유형력의 내용과 그 결과, 피고인의 범행이 미수에 그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은 정신상의 장애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닌 피해자를 피고인이 폭행·협박 또는 위력으로써 반항을 쉽게 억압한 뒤 피해자를 간음하려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피해자가 정신상의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피고인이 피해자를 간음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피고인의 행위가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8조, 제12조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 2003. 10. 24. 선고 2003도5322 판결

 

 

2000년대 초반에는 장애인의 ‘항거불능’ 상태라는 것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여, 장애인이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을 때에만 장애인 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요. 강간죄의 성립 여부를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하였는가?’가 아니라,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하였는가?’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강간 피해자에게 자기방어에 소홀한 책임을 묻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박상기, ‘강간죄의 폭행, 협박의 정도’, 판례월보 105호 참조)

 

 

 

2007년, 대법원 ‘성폭행 장애인 항거불능’ 인정

드디어 시대가 변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피해자의 자기방어에 초점을 맞추던 법 해석이 변화해, 2007년 대법원이 드디어 장애인의 ‘항거불능’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장애인의 편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집 1층에 세 들어 살던 내연녀의 딸을 4년간 8차례 성폭행한 가해자에게 1,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대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된 것입니다.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이라 함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경우뿐 아니라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 중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정신상 장애의 정도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중략)…

 

피해자의 지적능력이나 문제해결능력,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특성, 피고인의 이 사건 각 간음행위 당시 피고인 및 피해자의 행위 내용과 태도, 그리고 이 사건 각 간음행위가 이루어질 무렵의 피해자를 둘러싼 제반 환경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는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피고인에 대하여 그 거부 또는 저항의사를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할 것이어서 성폭법 제8조 소정의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피해자가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 각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고 말았으니, 원심판결에는 성폭법 제8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 2007.7.27. 선고 2005도2994 판결

 

 

당시 재판부 판결문에서도 “원심이 피해자의 진술과 전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신장애가 항거가 불능할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는데요. 비로소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시선을 갖게 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모든 굴곡의 세월을 거쳐, 드디어 2011년. 성폭력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닌 가해자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폭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법무부는 2011년 7월 13일, 13세미만 아동과 장애인이 성폭력 범죄를 당했을 경우에 수사 단계에서부터 국비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는데요. 과거 ‘자신이 열심히 저항했다!’는 사실을 열심히 증명해야만 했던 장애인 피해자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더디지만 조금씩이나마 장애인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비상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정안은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데요. 오랜 세월을 돌아온 만큼,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이 개정안이 부디 바르게 정착하여 남들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더 상처받고 더 고통 받아야 했던 장애인 피해자들이 더 이상 억울함에 눈물 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 법무부

영화캡쳐 = 오아시스, 네이버 영화검색

이미지 = 알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