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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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기 이야기/매체 속 법

성폭행범에 대한 보복살인, 정당방위일까?

법무부 블로그 2011. 6. 30. 08:00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복수 코드’

“남의 눈을 상하게 한 자는 그의 눈도 상하게 하고. 남의 뼈를 부러뜨린 자는 그의 뼈도 부러뜨린다.”

“목수가 집을 짓다가 집이 무너져 주인의 딸이 죽으면 목수의 딸도 죽어야 한다.”

 

고대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은 ‘복수주의’ 법률로 유명합니다. 마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우리나라의 속담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함무라비 법전 만큼 강경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법인 ‘8조금법’ 역시 ‘남을 죽인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는 복수주의 의식이 강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토대로 볼 때, 형법의 기원은 ‘복수’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의견 대립을 보이는 찰스 자비에(좌)와 에릭 렌셔(우) ⓒ엑스맨. 네이버 영화검색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전형적인 ‘복수코드’가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금속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에릭(마이클 페스밴더 분. 훗날 엑스맨의 악역인 매그니토가 된다)은 나치당원들에게 어머니를 잃고 복수심 하나로 어린 세월을 보내는데요. 성인이 되어 돌연변이를 연구하는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 분. 훗날 돌연변이학교 교수인 프로페서X가 된다)를 만나고, 3차 대전을 일으키려는 쇼우(케빈 베이컨 분)를 저지하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하지만 찰스 자비에가 돌연변이와 인간의 공존을 위해 쇼우를 저지하는것에 비해 에릭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자가 바로 쇼우이기 때문에 ‘복수심’ 하나로 그의 야망을 꺾으려고 하는 것이었지요.

 

《엑스맨》시리즈 이외에도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고사》 등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복수는 참 많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영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복수는 공권력을 이용하여 형벌을 집행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개인인 방법으로 행하는 복수라는 것이며, 그런 복수는 또 다른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올드보이, 네이버 영화검색

 

 

 

20년 전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복수하다

사적인 복수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9살 나이에 성폭행을 당한 경험으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 9살 때 성폭행을 당한 기억으로 인하여 정신분열성인 성격이 되었고, 결혼 후에도 정상적인 성생활이 어려워 이혼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20년 후, 여자는 미리 식칼과 과도를 구입해서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20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살해하고 맙니다. 9살이었던 자신에게 준 상처와, 그 상처를 떠안고 20여년을 살면서 받은 괴로움을 ‘보복살인’으로 갚은 것이지요.

 

우리나라 형법에서 사적인 복수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9살의 그녀에게 성폭행이라는 괴로운 과거가 없었다면 그녀는 아마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9살의 그녀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제대로 인지하고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법은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를 살해한 이 여성에게 어떠한 판결을 내렸을까요?

 

“피고인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 9살 때 강간당한 경험으로 인하여 정신분열적인 성격으로 발달되고

 

결혼 후에도 정상적인 성생활이 어려워 그로 인한 이혼으로 충격을 받게 되면서 증상이 악화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발전하고 정신분열성의 인격의 영향으로 잔재형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었으며

 

20년 후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의 증상이 갑자기 발현된 심신장애의 상태에서 강간자를 살해하였으나,

 

그 장애의 정도는 살해할 마음을 먹고 범행에 사용한 식칼과 과도를 미리 구입하고 찾아간 경위와 범행 당시 일차 식칼을 뺏기자 다시 과도로 재차 가해하는 등의 범행방법과 수단, 수사기관 이래 그 범행동기와 경위, 시간과 방법 등을 논리정연하게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점, 공판과정 및 범행전후의 행동 등에 비추어 사물을 판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된다.”

광주고법 1991.12.20. 선고 91노899,91감노80

   

 

 

법원은 위 여성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에 따른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며, 아직도 그러한 증상이 남아 있어 1년 정도의 입원치료와 5년 정도의 통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복수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사람을 믿지 못하고 면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해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며 감시되어야 한다고도 판결했습니다.

 

아무리 강경한 법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먼저겠지요? 법에도 인정이 있기에 범행을 저지른 여성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 그녀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주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함무라비 법전을 생각한다면 법도 참 많이 발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 복수 보다는 공적 형벌권 이용하는 게 효과적

개인적 복수보다는 공적 형벌권을 이용해 합당한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마련이니까요. 국가의 사법체계가 확립되면서 사적인 복수는 점차 사라져가고 공적 형벌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적인 복수는 법에 어긋나는 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너무나 억울하여 앙갚음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복수하는 것은 범죄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정정 당당하게 공적으로 해결하기 바랍니다.^^

 

 

 

tip) 성폭력 공소시효, 성인된 후 20년까지 연장

위 사건이 일어났던 1990년대에는 국내 형사법상 성폭력 공소시효가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죄는 7년, 강간 및 강제추행죄 7년, 강간 등에 의한 상해 치사상죄는 10년 등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동의 경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인지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 할 즈음이면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버리기 일쑤였지요.

 

2010년 3월, 성폭력범죄에 대한 엄벌을 발하는 국민의 법 감정을 바탕으로 『성폭력범죄자 처벌강화 및 신상공개를 위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성폭력범에 대한 공소시효 및 처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개정 법안은 징역형을 최고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유기징역형의 상한을 확대하고, 성범죄자의 신상을 인터넷과 우편으로 고지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공소시효를 피해자가 20세 될 때 까지 정지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 DNA가 있는 경우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하고,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죄질에 따라 법원에서 감경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 기사를 참조하세요.^^

15년 전 당한 성폭행, 손해배상청구 가능할까?(클릭)

 

 

글 = 법무부

영화컷 = 네이버 영화검색

이미지 = 알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