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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쪽같은 검사 이준! 그가 파면당한 이유

법무부 블로그 2011. 4. 20. 17:00

대한제국 말기 고종의 밀사로 알려진 이준(1958~1907) 열사를 아십니까? 이준 열사는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 되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인물로 알고 있던 터였는데요. 지난 4월18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별관 4층에서 ‘대한제국 검사 이준열사 학술 심포지움’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습니다.

 

 

 

▲ 서초동 대검찰청

 

 

대한민국 제1세대 검사 이준을 생각하다

이준 열사는 1895년에 처음으로 설립된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1895년 11월에 우수한 성적으로 법관양성소를 제1회로 졸업하게 됩니다. 그 후 38세 되던 해 검사보로 법관생활의 첫발을 내딛어 대관중신들의 비행과 불법을 들추어내고 올바른 법 집행을 통해 사회정의 실현에 노력하였는데요. 예를 들어 토지를 강탈한 왕족에게 징역 10년형을 구형하는 등 백성에게는 관대하고 부패 관료에게는 엄격한 지조 있고 배짱 좋은 검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준의 행동이 귀족들에게는 눈엣가시였겠지요? 결국 탐관오리들의 중상모략으로 오래있지 못하고 2개월 만에 검사직을 그만두게 되고 맙니다.

 

얼마 후, 고종황제는 이준의 강직함과 국제법에 대한 조예가 깊음에 주목해 1906년 평리원(고등재판소) 검사로 재임용한 뒤 1907년 4월 18일 헤이그 특사로 밀명을 내립니다. 하지만 헤이그에서도 일본 등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스스로 분사(憤死 : 분에 못이겨 죽음)하고 말지요.

 

 

이준 열사를 본받자는 자성의 목소리

이준 열사가 분사한지 104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검찰이 역사적인 재조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귀족보다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욕심 보다는 민족을 위해 한 몸을 희생했던 그의 태도를 검찰 스스로가 본받고 성찰해 보자는 의미에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심포지엄의 내용 역시, 『이준(李儁), 지사적 삶과 검사로서의 활동』과 『대한제국기 검찰제도와 검사의 활동』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처럼 검찰 내부에서도 대한제국 제1호 검사가 살았던 시대와 인물을 재조명하며 마음가짐을 다잡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김준규 검찰총장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2010년 9월, 검찰총장으로서는 최초로 이준열사의 헤이그묘역을 참배하였는데요. 당시의 남다른 감회에 대해 이야기하며 검찰 스스로가 정체성을 가지길 바란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 참석자에게 제공된 기념책자

 

 

심포지엄에서 부산대 문준영 교수는 이준 열사를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이준. 그는 차가운 머리의 법조인이라기보다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행동가이자 웅변가였다."

 

 

▲주제 발표자 문준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러면서 옛날 이야기를 하듯,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는데요. 1907년 2월, 이준이 법부의 상관과 동료 검사를 탄핵하여, 그 돌발행동을 이유로 평리원(대한제국의 사법기관. 고등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상관과 동료를 탄핵한다는 건 생각조차 쉽지 않은 일인데요. 많은 권력기관에서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핀잔도 있는 요즘을 생각하면 대쪽같은 검사 이준의 결정과 행동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우리 후배 검사들은 모두 이준으로 돌아가라."

 

 

▲ 토론자 김효전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토론자로 참석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김효전 교수는 "이준은 소신 있는 훌륭한 검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준이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것에 대한 불분명함과 사망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김효전 교수는 일제잔재를 청산하려면 법제부터 연구해야 된다고 이야기 하며, "좀 더 과학적이고, 좀 더 정확하게 학문연구를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검사는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박용석 대검 차장검사

 

 

마지막으로 박용석 대검 차장검사가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시 한 수를 인용했습니다.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 함부로 이리저리 걷지 마라.

오늘 내 딛는 발자국은, 반드시 이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 백범 김구 -

 

박용석 차장검사는 열사와 같은 시기에 항일투쟁을 한 백범 김구선생의 시를 인용하며, “우리 후배 검사들은 눈 내린 들판을 걷는 심정으로, 비뚤어지지 않게 대한제국 1세대 검사 이준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 네델란드의 헤이그 바겐 스트라트 124번지.

선생이 순국한 곳으로 현재는 선생의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네이버 캐스트, 국가보훈처

 

힘 있는 사람보다 힘 없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이 바로 법입니다. 아마도 이준 열사는 그 사실을 아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힘 없는 민족을 위해 한 몸을 희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제국 말, 약소국의 설움을 온 몸으로 웅변한 이준 열사를 새롭게 알게 되어 뿌듯했습니다. 또한, ‘힘과 정의'를 지켜 줄 검찰의 롤 모델을 제시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는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글.사진 = 김순규 기자

자료사진 = 네이버 캐스트,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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