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검정색 정장에 무스 바른 단정한 머리, 웃음이라고는 전혀 없고,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차가운 표정...... 검사라고 하면 저는 이런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난 9일, 한 검사님과의 인터뷰가 있어 의정부지방검찰청으로 향하며 저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자꾸 떠올라 지워보려고 무척 애를 썼답니다.
▲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에 위치한 ‘의정부지방검찰청’
처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저는 책상에 앉아 계신 귀여운 인상의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 여검사?’ 생각보다 앳된 외모에 솔직히 깜작 놀랐답니다. 제가 머릿속에 그렸던 차가운 이미지의 검사는 온데간데 없고, 그분은 귀엽게 눈웃음을 지어주시며 저를 자리로 안내하셨습니다.
▲ 최재아 검사님. 웃는 모습이 귀여우시죠?^^
이름 최재아. 올해 벌써 6년째 검사생활을 하고 있는 베테랑 검사입니다. 최재아 검사님은 인터뷰를 약속한 시간에도 자신이 처리해야 할 사건 때문에 쉽게 책상 앞에서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게 검사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는 최재아 검사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신중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건을 앞에 놓고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며 ‘나도 멋지게 첫 질문을 해야 하는데......’ 하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피의자로부터 러브레터를 받았다?!
사실 수많은 검사들 중 하필 최재아 검사님을 찾아온 것은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수사한 검사님께 ‘존경하는’ 이라는 말을 넣어 편지를 쓴 피의자는 구구절절하게 검사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 손으로 쓴 편지를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네요.
“이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마음이 참 답답했어요. 사건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요. 그 피의자는 정말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보였거든요.”
피의자 김00씨는 최재아 검사님과의 첫 대면에서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화도 내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그가 하는 말은 오로지 ‘죽고 싶다’ 이 말뿐이었습니다. 결국 남자 대 남자로 얘기해 보자며 담당 계장님이 피의자를 따로 불렀습니다. ‘당신의 얘기를 들어주겠다’는 표정으로 단 둘이 시간을 보내자, 그 피의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자본금이 많지 않았던 피의자 김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건물철거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잠까지 설쳐가며 열심히 뛰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업은 점점 기울기만 했고,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김씨는 그때부터 5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숨어있는 동안 정말 많이 무섭고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자책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살을 계획하며 준비하던 어느 날, 김씨는 경찰에게 잡혀 의정부지방검찰청으로 오게되었습니다.
▲ 최재아 검사님 책상엔 꼭 필요한 물건들만 심플하게 있답니다. ^^
“검사 생활 6년 동안 그렇게 오랜 시간을 피의자와 얘기해본 적이 없었어요. 일부러 일을 만든 게 아닌데 경제상황이 어렵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고, 그 죄책감 때문에 자살까지 하려고 했다더군요. 검거 당하기 전에 자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에 섬뜩했어요”
뚜렷한 전망 없이 사업을 진행하여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것은 분명 처벌대상이지만, 그래도 소중한 목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부탁하자 김씨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씨는 장장 6시간 동안 담당 검사님과 계장님께 그 동안의 사건 경위와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자백하고, 자살 결심을 포기하겠다는 다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피의자가 출소하면 열심히 살아 피해자들에게 진 빚을 다 갚겠다고 말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은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씨가 얼마 전, 최재아 검사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에는 온통 최재아 검사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출소 후 더 열심히 살겠다는 얘기가 가득했습니다. 최재아 검사님도 그 편지를 받고 검사가 된 후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며 ‘내가 검사로서의 소임을 다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내내 왜 이렇게 쑥스러워 하실까?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검사님은 자주 바닥을 보셨고, 쑥스럽다며 웃으셨습니다. 저 같으면 무척 자랑스러울 것 같은데, 검사님은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자랑스럽지 않으세요? 왜 그렇게 쑥스러워하세요?”라고 묻자 검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모두 같이 해낸 일이에요.. 저 혼자 한 일이 아닌 걸요.....” 수사관님, 실무관님 그리고 검찰 직원 등 모두가 함께 한 일인데 마치 자신이 혼자 다한 것처럼 보이는 게 죄송스럽기까지 하다고 최재아 검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피의자가 편지 서두에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썼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쑥스럽다며 고개를 못 드시는 검사님 ▶
최재아 검사님과 인터뷰하며 그 말씀을 모두 녹음해오고 싶었습니다. 그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담아오고 싶었습니다.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고마워하고, 남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남이 잘 하는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최재아 검사님. ‘이리 예쁜 검사님이 또 있을까’ 싶더군요.
취재를 마치고 찍어온 사진과 글을 보며 문득, 검사님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의자 김씨도 이런 따뜻한 기분으로 그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 피의자 김씨 사건 당시 담당직원은 아니었지만,
현재 최재아 검사님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고 있는 윤병곤 수사관(좌)과 정현주 실무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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