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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피겨안무, 저작물로 인정될까?

법무부 블로그 2010. 7. 31. 19:00

인간은 언제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을까요?  

 

춤은 인간의 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합니다. 플라톤은 춤을 출 줄 모르는 사람들을 아코루투스(achoreutos), 즉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 불렀고, 루이 14세는 정치보다 춤과 음악에 더 관심을 쏟으며 춤을 정치에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미시시피 지역에서 끊임없이 분쟁했던 흑인과 백인들을 극적으로 화해시킨 것도, 필리핀의 한 교도소의 재범율을 0%로 만든 것도 춤이었습니다. 얼마 전, 이 교도소의 죄수들이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 등 한국가요 춤을 단체로 춘 동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춤에는 인간의 생활양식과 문화, 정체성이 녹아있습니다. 결국 춤도 인간이 창조해 낸 창작물이라 할 수 있겠죠. 창작물에는 그에 대한 권리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그렇다면 과연 춤도 저작물로 보호받고 있을까요?

 

 

‘춤’도 저작물이라는 인식이 시작되다

춤이 저작물로 인식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연극과 무용 활동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무용은 뒤늦게 저작물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마사 그레이엄과 같은 미국의 유명한 안무가들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무용작품에 대한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무용의 저작권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과거 1940년대에 제정된 저작권법에서 안무는 연극 등과 같이 취급되어 드라마적인 요소가 있어야 저작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다 1976년이 되어서 저작권법이 개정되었고, 안무가 ‘독립된 저작물’로 저작권법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1957년에 제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저작권법에서는 무용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닌 무용이 기록된 ‘무보’만이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무용의 실연 자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87년 저작권법이 개정될 때 무용도 연극, 무언극과 함께 연극저작물로 인정되었습니다.

 

저작권법

제4조(저작물의 예시 등) ①이 법에서 말하는 저작물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3호. 연극 및 무용·무언극 그 밖의 연극저작물

  

현재의 저작권법에서 예시하고 있는 저작물의 종류(저작권법 제4조)에는 연극 및 무용, 무언극 등을 포함하는 연극저작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춤은 무용에 해당하여 일반 저작물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춤을 연극저작물로 인정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 미국의 경우처럼 춤을 ‘독립된’ 저작물의 권리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춤’을 실연하는 사람의 권리도 보호됩니다.

 

 

저작권법은 실연자의 권리 역시 보호하고 있는데요. 실연이란 무용을 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저작권법은 실연이 ‘권리저작물을 연기, 무용, 연주, 가창, 연출 그 밖의 예능적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저작물이 아닌 것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포함한다(저작권법 제2조 제4호)’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연을 하는 자 또는 실연을 지휘, 감독하는 자를 실연자라 합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5호). 저작권법은 안무가의 권리 뿐 아니라 실연자의 권리 역시 제2절에서 명시하고 있으며, 실연자의 권리는 저작인접권이라 하여 저작권법 상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성명 표시권(제66조), 동일성 유지권(제67조), 복제권(제69조), 배포권(제70조), 대여권(제71조), 방송권(제 73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실연자의 권리 보호기간은 실연을 한 때부터 발생하며, 그 다음 해부터 50년간 존속합니다(저작권법 제70조). 무용에 대한 저작권 보호는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표현된 것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연자의 권리 역시 매우 중요하겠지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안무도 저작물로 인정될까?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안무는 기본적인 스텝이나 동작이 아니라 일련의 연속적이며 ‘독창적인’ 안무여야 합니다. 연속적이고 독창적인 안무라면 김연아 선수의 안무를 빼 놓을 수 없겠죠? 과연 김연아 선수의 피겨 안무도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비슷한 예로, 1991년에 캐나다의 FWS(운동선수연합)에서는 운동경기에서 선수들의 운동 활동에 저작권적 보호를 해야한다는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운동 활동은 계획과 대본이 있는 안무와는 다르게 각각의 상황에 대처하는 무계획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감독이 아무리 작전을 짰어도 운동경기의 특성 상 의도치 않은 상황이 나타나고, 애초의 계획대로 성사될 확률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에 시합 자체는 저작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전이 기록된 계획서는 저작권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어도 예측불허의 운동 활동 자체는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다는 군요.

 

서재권 저작권위원회 법제연구팀 위원은 지난 5월 '저작권과 문화'정보소식지를 통해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안무는 무용에서 파생된 사상이나 감정을 독특한 형태로 구체화 시킨다는 점에서 체조나 수영과는 달리 저작권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구체적 보호 범위에 대한 논의 가 없기 때문에 아직 명확히 보호받기는 힘들다"고 밝혔는데요. 다행히도 그 안무를 완벽하게 실연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김연아 선수 혼자뿐이라는 사실에 다소 위안이 되기도 하네요.^^

 

 

무용 저작권 침해 사례

무용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한 유명한 사례가 두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영국 맥밀란 출판사에 대한 바바라 홀간의 소송이었습니다.

 

당시 맥밀란 출판사는 뉴욕발레단의 허락을 얻어 조지 발란쉰(George Balanchine)의 ‘호두까기 인형’ 발레공연 사진과 무용가들의 인터뷰를 편집하여 발레책자를 발행했는데요. 발란쉰이 남긴 유산의 집행 담당자였던 바바라 홀간(Barbara Horgan)은 책자에 공연 중의 사진을 싣는 것은 작품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책자의 판매를 금지하는 가처분 소송을 냈습니다.

 

1심인 뉴욕지방법원은 '발레책자의 사진들은 발레에서의 연속동작이 아니라 특정 순간 무용수의 자세를 보여줄 뿐이고, 발레와 같은 무대공연이 사진이라는 매체에 의해 복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라는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바라는 항소했고 연방 상소법원은 실연되고 있는 무용을 찍은 것을 보고 ‘보통의 인간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안무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고 바바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1976년도 미국의 저작권법이 무용을 독립된 저작물로 인정한 후의 첫 법원판결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무용 저작권을 둘러싼 두 번째 저작권 소송은 안무 학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이었습니다.

안무가이자 춤꾼인 ‘파스트로(Pastro)’는 살사를 쿠바식으로 표현한 춤인 '라 루에다(La Rueda)'를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했는데요. 그는 기본 ‘라 루에다’에 자신이 창안한 동작들을 첨가해 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제자 중 한명인 ‘첸’이 스승 카스트로의 학원을 졸업한 후 학원을 차려 '라 루에다'에 카스트로가 창안한 것과 같아 보이는 동작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분노한 카스트로는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고 첸은 알고 보니 그 동작들이 카스트로의 독창적인 안무가 아니며, 자신이 졸업 후 여행을 하다가 만난 '라 루에다' 안무가들도 모두 그 동작들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였습니다. 과연 승소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법원은 이 춤이 이미 존재하는 동작들과 카스트로가 창안한 동작들의 합작품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스승인 카스트로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법원은 실제 '라 루에다' 안무가들에게 이 춤이 '아직' 생소하다는 것에 무게를 두었는데요. 이 사건은 안무가가 행한 중요 안무가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독창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면 저작권의 보호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대중가수의 안무도 저작물로 인정받는 날이 올까?

역사를 따라 항상 함께하면서도 과거에는 그 자체가 소중하며, 보호받아야 하고 존중받아야 할 창조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중가수의 노래 표절문제가 민감한 만큼 춤에 대한 저작권 인식도 많이 보편화되고 있는데요. 연극에 포함된 무용이나 발레가 아닌 대중가수의 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저작물이라는 인식과 보호의식이 미흡한 것 같습니다.

 

개그맨 박명수씨는 ‘원더걸스’가 자신의 춤을 표절했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요. 비록 우스갯 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만약 “춤도 저작물로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좀 더 커진다면 대중가수의 춤 역시 엄연한 창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참조 = '무용저작권에 관한 연구'(논문), 정기령, 세종대, 2006.08.01

일러스트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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