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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출입국 심사가 있었다면?

법무부 블로그 2010. 7. 1. 20:00

한국인과 함께 살면서도 고유의 전통은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화교(華僑)인데요. 화(華)란 중국인을 가리키고 교(僑)란 잠시 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외국 영토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모두 통칭하여 ‘화교’라고 일컫는 것이지요. 화교가 한국에 정착한지는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같은 듯 다른 그들! 화교의 세계를 한번 살펴볼까요?^^

 

 

한국에는 어떻게 왔을까? 

 

한국 화교의 시초는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 때 한국에 파견된 청나라 군대를 따라 입국한 상인 40여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본래 파견된 청군을 도와주려고 한국에 온 것이었는데 청군이 오래 머물게 됨에 따라 점차 한국인과 교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 사회의 개방과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서울과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화교의 수가 크게 늘어나 한때는 4만명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화교학교 학력을 불인정하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많은 한국 화교들이 보다 자유롭고 안정적인 미국, 캐나다, 대만, 호주 등지로 떠나면서 그 수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현재는 2만여 명의 화교가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며 그 중의 절반가량이 영주자격(F-5)으로 체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출입국 심사가 없어서 다행?

19세기 말, 화교들이 정착하는 데는 오늘날처럼 거주허가증이나 각종 증명서류 같은 번거로운 절차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많은 화교들이 서울과 인천을 근거지로 정착해서 직물 및 잡화 수입, 조선 토산품의 수출, 정기 여객선을 이용한 행상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조선시대에 출입국 심사가 있었다면, 조선에 정착하려는 화교들도 많지 않았을 것이고, 중국의 물품을 수입하고 조선의 특산품을 수출하는 활로도 구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온 손님이 우리나라에 정착하면서 큰 선물을 안겨준 셈이네요.^^

하지만 당시 조선사회는 상업 종류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아 화교들이 여러 가지 상업 활동에 모두 종사할 수 있었고 이는 조선 사회와 조선 상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볼 때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당시 조선 상인들에게는 밥줄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였을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서로 공존하여 잘 살아남아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속의 작은 중국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는 백여 개의 화교 단체를 통해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업종, 출신지, 종교, 동호회, 친목회뿐만 아니라 4개의 화교 중학교에 1,500여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으며 교직원도 100여명 가량 됩니다. 화교초등학교는 전국에 28개가 있고 학생 수는 1,270여명, 교직원 수는 90여명 입니다. (2008년 초 기준)

 

한국에서 ‘화교’하면 떠오르는 곳 중 하나가 인천 차이나타운인데, 이곳에 정착한 화교 1세들은 고유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중국의 큰 명절인 설날과 원소절(보름날) 사이의 15일 동안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으며, 집집마다 복을 기원하는 글을 빨간 종이에 써서 붙이고 색등을 걸어 놓거나 불꽃놀이를 즐겨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곳에는 2008년 현재 화교 2·3세 17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자금성, 중화루, 진흥각 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중 간의 협력 관계는 지난 1992년 수교 이후 지리적 인접성, 문화적 유사성, 상호보완적 경제구조 등을 바탕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양국간 교역규모도 급속히 신장하고 있어 중국은 2003년부터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이 되었으며 2004년에는 수출입을 합쳐 첫 번째 교역대상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3천 5백만 화교

1970년대 말 개혁·개방정책이 추진된 이래 중국 경제는 빠른 성장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평균 9%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GDP 기준 세계 4위 규모로 부상했습니다. 앞으로도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러한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3천 5백만(대만 제외) 화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중국이 2000년에 도입한 외국인 투자 중 53%가 회교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또한 세계 화교들의 유동자산 규모가 2조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중국 본토에 분포하고 있는 인구가 많은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화교입니다. 외국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나 우리나라 교포들을 떠올리며, 한국에 정착한 화교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도 많이 성숙해져야겠습니다.

 

 

 

이글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간행물 [공존 Vol.10]에서 발췌하여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