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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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 가면 제일 먼저 검정 고무신을 신게 된다.

법무부 블로그 2010. 7. 2. 08:00

내 마음 속 어여쁜 꽃신

 

정00/ 청주여자교도소

   

 

흔히들 말하는 은팔찌(수갑)라는 물건에 의해 두 손이 채워진 채 호송차에 몸이 실려져 도착한 곳, 구치소! 그 곳에서 나에게 지급해 준 물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듯 한 까만색 고무신이었다.

 

내 발에 신겨져 있던 신발과 옷가지들은 자루 속에 깊숙이 넣어진 채 영치되었고 그렇게 난 역사박물관에서나 봄직한 검정 고무신을 처음으로 신게 되었다.

 

구치소에 들어오기 몇 해 전, 퇴근해 돌아오는 내게 아들 녀석이 “엄마. 검정 고무신이 뭐야?” 하며 잔뜩 궁금해 하는 얼굴로 물어본 적이 있다. “검정 고무신? 그건 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TV를 가리키며 “응, 새로 하는 만화인데 아주 재밌어. 그런데 제목이 검정 고무신이야. 저런 걸 어떻게 발에 신지?”라며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엄마도 같이 보자며 내 손을 잡아끌고 TV 앞에 앉혔다. 얼떨결에 보게 된 만화는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가난과 싸워가면서도 성실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만화를 보면서 내 기억속의 고무신을 생각해보았다.

 

7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나는 검정 고무신을 신어 본 적도, 구경해 본 적도 없다. 내게 고무신이라 하면 그저 어릴 적 명절 때 신었던 꽃신이 전부였다. 색동 한복과 함께 신었던 꽃신은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발등을 전부 덮는 운동화나 구두와 달리 꽃신은 발등을 거의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래서 꽃신을 신을 때면 벗겨지지 않게 종종 걸음으로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앞코가 뾰족하게 나와 있던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도 생각난다. 할머니께서는 하얀 고무신에 얼룩이라도 생길새라 항상 무언지 모를 기름으로 윤기가 나게 닦으셨고, 마지막엔 꼭 무명지로 싸 놓으셨다. 그렇듯 내 기억속의 고무신은 예쁘고 고운 존재였다. 적어도 영어의 몸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구치소에 수감되어 몸수색을 받는 검신실에 들어갔을 때,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검정 고무신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왜 이런 걸 신어야 하지? 왜 하필... 왜 이런 걸...” 그런 질문을 던지며 나는 초라한 내 모습이 창피하기만 했다. 왜 꼭 고무신을 신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고무신이 가장 싸고 만들기 쉬우니까 모든 수감자들에게 일괄 지급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사실 고무신을 지급하는 것은 구치소에서 휴대하지 말아야 할 칼 등의 물품을 숨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나는 마치 ‘내겐 고무신 따윈 필요 없어요’ 하듯이 고무신을 구석에 처박아 두고, 대신 영치금으로 운동화를 사서 신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죄인의 몸이 되어서도 인정하려 하기는 커녕 따지고 고르다니, 내 행동이 참으로 우스웠다. 그렇게 수감생활을 시작한 구치소에서의 시간들은 흘러갔고 어쩌다 신발장 위에 놓여진 다른 수감자들의 고무신을 볼 때마다 ‘난 다시는 저 신발을 신지 않을 테야’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싫었던 고무신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신게 되었다. 나의 형이 확정이 되어 ‘청송여자교도소’로 이송이 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타소로 이송될 때 고무신을 신고 가야 된다는 걸 난 모르고 있었다. (이송 시엔 탈주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꼭 고무신을 신어야 한다) 그렇게 이송이 확정되어 신고 있던 운동화를 짐 속에 넣고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고무신을 찾았는데, 이 고무신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나와 같은 방에 있던 식구들이 옷장에서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꺼내어 내밀었다. 내가 잘 모르는 것 같아 미리 준비해 두었다며, 그곳에 가서도 몸 성히 잘 지내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순간 무언지 모를 감정에 난 휩싸이게 되었다. 비록 수형자의 신분으로 만났지만, 내게 고무신을 건네준 같은 방 식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낯선 곳으로 향하는 내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었다. 맞춘 듯 내 발에 꼭 맞는 하얀 고무신...

 

그 고무신은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의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릴 적 명절 때만 신었던 예쁜 꽃신처럼 그 하얀 고무신은 보고만 있어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지난 날 욕심으로 얼룩진 삶을 뒤로하고 이제 난 새로운 내 인생의 밑그림을 그릴 것이다. 같은 방 식구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진 이 하얀 고무신의 색깔처럼 말이다.  

 

 

 

이 글은 교정본부에서 재소자들의 글을 모아 만든 책

‘새길(통권 40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