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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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는 검사도 있다

법무부 블로그 2010. 7. 2. 20:00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돌던 문구가 가슴이 아파, 내내 가슴 쓸었던 기억이 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들춰 보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부끄러운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문화재 강탈에 의한 환수 문제도 그렇고, 나라를 위해 싸우고도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사형에 처해진 분들도 그렇고...... 그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친일파’ 문제입니다.

 

친일파의 극악무도한 행동과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축적한 재산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나 법적 심판 없이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지만 고문당하고, 살해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일도 겪어야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 중에는 지금까지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면 패가망신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적 과오를 범하면 후세에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죠!”

 

 

지난 2006년 7월, 아주 의미 있는 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바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그것입니다. 이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적한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저도 이런 일을 하는 정부기구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친일파 척결에 관련된 일은 작년에 해체된 ‘친일진상규명위원회’ 가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친일파의 재산을 다시 찾아 국가로 귀속하는 의미있는 일을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거기다 이 일을 맡아하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중 위원은 9명이며 나머지는 법무부, 경찰청, 국세청 등 11개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입니다) 중에 ‘검사’도 있다고 해서 법무부 블로그 기자로서 인터뷰를 요청해 봤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법무담당관 고은석 검사

 

처음 딱 뵈었을 때 너무도 훈남이셔서 순간 멈칫했답니다.^^; 빈손으로 와서 죄송하다고 하니, ‘빈손으로 와야지 무슨 말이냐’ 하면서 긴장하는 저를 웃게 만들어 편안한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저는 제일 궁금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습니다.

“저희 위원회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친일재산의 국가귀속과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는 토지의 정리입니다. 이 일은 재산을 얼마나 압류했느냐 하는 실적 보다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면 반드시 후세에 처벌받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검사가 왜 필요한 걸까요? 검사는 검찰청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가요? 저의 우매한 질문에 검사님께서 친절히 답변해주셨습니다.

“친일파의 재산을 다시 환수하려면 많은 법률적인 쟁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찰청에서 파견 나와 있는 것입니다. 저처럼 정부 여러 부처에 파견 나와 있는 검사들도 많이 있지요. 검사라고 해서 모두 형사사건을 수사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산 뺏기지 않으려 팽팽히 맞서는 고위직들, “너무 합니다”

전국에 있는 친일파의 재산을 다 찾아내는 것도 어렵겠지만, 이것을 적법한 절차를 밟아 국가로 환수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과연 이 일을 하면서 고은석 검사가 제일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솔직히 형사적인 부분은 절대 지식이 떨어지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이 일은 법률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지식을 모두 갖춰야 하므로 참 어렵습니다. 늘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거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잖아요? 100여년이 지난 일을 조사하다 보면 후손들과 감정적인 부분이 섞일까봐 그것도 늘 고민이 됩니다.”

 

야~ 그렇게 공부 많이 하고 검사됐는데, 또 공부를 해야 하다니. 검사의 길은 역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_-;;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참 안타까운 점이 몇 가지 있어요. 고위직에 있던 친일파의 자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뺏기지 않으려고 팽팽히 싸울 때, 솔직히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친일파 후손이라고 모두 잘 사는 건 아니더라고요. 유일하게 선조가 남겨준 재산으로 겨우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한테서 재산을 압류할 때는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노력 덕에 여의도 면적 1.3배 되찾아

위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고 합니다. 이 일은 반드시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며, 과거청산을 너무 길게 끌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원회의 위원장인 김창국 위원장도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일을) 너무 늦게 시작해 국가가 환수해야 할 친일재산을 놓친 게 아쉽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끝없는 노력으로 지금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의 토지 2,359필지(약 1,114만㎡)를 국고로 환수했다고 합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달하고요, 금액으로 따지면 공시지가로 959억원(시가로 2,106억원)에 달합니다. 정말 어마어마 하지요.

 

그런데 국가로 환수된 친일파의 재산은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요?

“귀속재산은 국가보훈처가 관리하며 보훈대상자들을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저희가 환수한 금액의 90% 이상이 독립유공자 가족들에게 환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인지요. 순간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유공자 가족들에게 친일파가 빼앗은 재산을 압류해 도로 돌려주다니! 생각할수록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아빠가 이렇게 좋은 일 하는지 아이는 알까요? 검사님께 혹시 자녀가 있는지 여쭤봤습니다.

“네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는 아직 어려서 아빠가 하는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쑥스러워하는 검사님을 보며 제 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제 남편은 군인인데, 여섯 살인 제 아들은 군복 입은 아빠의 모습을 가장 자랑스러워 합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늘 유치원에 가서 자랑을 합니다. 우리 아빠가 제일 멋지다고 하면서 말이죠.

아마 검사님의 아이도 아빠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 대표적 친일인사였던 이완용(좌)과 송병준(우)

 

오는 7월 12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 위원회가 해체됩니다.

2006년에 발족해 지난 4년 동안 묵묵히 친일파 재산 환수를 위해 노력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오는 7월 12일 해체됩니다.

 

위원회는 활동 과정 중에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로 되어 있던 땅을 찾아내 국가 명의로 돌려놓기도 했고,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명단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또 친일행위자와 그 후손들의 가계도를 만드는 등 근대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많이 남겼지요. 그래서 사학계에서는 위원회의 활동이 학술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고은석 검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검사로 남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위원회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그러하시겠지요. 4년 동안 피땀 흘려 일했던 모든 작업을 정리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위원회의 많은 분들, 요즘 마음이 많이 착잡하실 것 같습니다.

 

역사를 새로 쓰시는 멋진 분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또 인터뷰도 할 수 있어 제 개인적으로 참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위원회 해체를 준비하고 계신 많은 분들께 꼭 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하신 이 의미있는 일에 대해 우리 국민들과 많은 후세들이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많은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