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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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인연 끊기 위한 성본변경신청,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법무부 블로그 2010. 6. 23. 17:00

얼마 전 서울가정법원에 아들의 성씨와 본관을 바꿔 달라는 ‘성본변경신청서’가 접수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은 특별했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지금 아들은 제가 키우고 있습니다. 전 남편과 우리 아들의 인연을 끊기 위해 아들의 성과 본관을 제 성과 본관으로 바꿔주기를 원합니다!”

 

대략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한 내용이었지요. 부부가 살다가 마음이 맞지 않아 이혼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간의 인연까지 끊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신청서를 낸 A씨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A씨는 2003년 남편과 협의 이혼을 했고 양육자이자 친권자로서 아들을 키워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게임만 하는 겁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를 해도 게임 삼매경에 빠진 아들에게 공부는 완전히 뒷전이었지요. 급기야 A씨는 아들과 대판 싸웠고, 아들은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아들이 간 곳은 바로 헤어져 살고 있는 친아버지의 집, 즉 A씨의 전 남편의 집이었습니다.

 

이때부터 A씨와 전 남편의 갈등은 시작되었습니다. A씨의 주장에 따르면 전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학교도 잘 보내지 않았고, 아들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전 남편은 평소 양육비도 지급하지 않았다며 A씨는 아들과 전 남편의 인연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가정법원은 어떻게 판결을 내렸을까?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서울가정법원, 과연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요?

 

재판부는 “이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성본변경제도는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자녀의 복리’를 위한 것으로, 2008년에 새롭게 마련된 제도입니다. 과거에는 어머니가 재혼을 해 새아버지가 생겨도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아버지의 성씨를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성씨가 다르다고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사회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지요. 이처럼 성본변경제도는 이혼한 부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자녀를 줄이기 위해 ‘자녀의 복리’를 법으로 보호해 준 제도입니다.(민법 제781조 제6항)

 

그런데 A씨는 전적으로 A씨의 감정과 주관적 판단으로 성본변경신청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성본 변경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할 때만 허용하는 것”이라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자녀의 복리를 위한 것이라는 제도의 본 취지를 따른 것이지요.

 

 

 

“법대로 하자”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

 

평소 이권문제로 싸움을 하다가 “그래 법대로 하자!” 하며 돌아서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법대로’는 법의 원칙과 정의대로 하자는 말이 아니라 “누가 이기나 해보자”와 같은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화합이 아닌 결별, 상생이 아닌 이기심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A씨 신청 역시 아들이 집을 나간 것은 전 남편의 책임이며, 이것을 법적으로 증명해 내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들의 마음이었을 텐데 말이죠...

 

법은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다를 가르는 잣대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어지러운 곳에 명확한 질서를 잡아주는 것이 법의 더 큰 역할이지요. 아마 법원에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고 해도 A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겁니다. 지금 A씨에게 필요한 것은 아들의 성씨를 바꾸는 법원의 허락이 아니라,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의 진실된 속마음을 가슴으로 들어주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