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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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노모와 살인죄 아들의 기막힌 사연 들어보니...

법무부 블로그 2010. 6. 11. 11:00

수용자가 두려운 21살 교도관

21살, 성인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부푼 꿈을 안고 시작된 교정공무원 생활······.

사실 처음엔 너무나 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죄인’이란 단어는 보편적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로 이질감과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이 점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수용자들과 ‘전과자’라는 선을 긋고 생활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인성이 메마르고 생활에 회의와 권태가 밀려왔으며 미소를 잃어가게 되었고 급기야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5년여 생활 속에서 피폐해져만 가던 저의 정신과 육체에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눈먼 노모가 흘린 눈물 

접견실 근무 중이던 어느 날, 한 수용자의 노모가 면회를 오셨다는 소식에 평상시대로 접견근무일지를 들고 접견실에 들어섰습니다. 그 순간 제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멍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칠순이 훌쩍 넘어 등이 굽으신 탓에 접견실 아크릴 턱에 간신히 허리를 펴고 힘겹게 아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려 애쓰시는 모습.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차마 볼 수 없어 접견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리 낮춰 흐느끼는 수용자. 그것이 접견의 끝이었습니다. 접견 시간을 두 모자는 그렇게 눈물로 시작하여 눈물로 끝냈습니다.

 

수용자의 어머니께서는 일찍이 탄광에서 남편을 잃고 4남 2녀를 키우시느라 하루에도 몇 군데씩 날품을 팔아 생활을 하셨고, 그 중 막내였던 본인을 더 많이 사랑해 주셨지만 하루 두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수용자가 된 그 사람은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14살에 가출을 하여 도시에서 중국집 음식배달을 시작했고, 10년여의 시간 동안 돈을 모아 시골에서 본인의 중국집을 개업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형이란 사람이 사고를 쳐서 합의금으로 사업자금 전부를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후 중국집 주방장 일을 다시 시작하여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어머니를 모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은 한 푼도 모을 수 없었습니다. 본인의 돈은 물론이고 심지어 노모가 고물을 주워 모은 돈까지 형제들이 항상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와의 실랑이 그리고 살인

그러던 중 노모의 병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수술비를 마련하여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그 수술비조차도 형이라는 사람이 가로채려 들었습니다. 화가 난 그는 형과 실랑이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결국 형이 사망에 이르게 되어 그는 죄인의 몸으로 수용되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신 노모는 그가 수용시설에 수용된 사건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시력과 청력 모두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아들이 보고 싶어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면회를 오셔서 그저 아들의 얼굴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수용자의 사연이 저를 살렸습니다.

저의 사고(思考)의 경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요.

그날 이후 저는 수용자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고 노력했고, 수용자들이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 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잃었던 미소도 되찾았으며 우울증 증세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1살에 시작하여, 이제는 21년이 된 교도관 생활······.

힘들다면 힘든 생활이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지나온 21년의 추억을 안고 저는 또 다른 앞으로의 삶을 위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달려갈 것입니다. 수용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말입니다.

 

 

글 = 김도경 (공주교도소 교위)

그림 = 아이클릭아트

 

  

이 글은 새길 2009년 여름호(통권 406호) 에 실린 김도경 교위의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