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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기 이야기/매체 속 법

딸의 장례식 조위금으로 학교를 짓는 아빠

법무부 블로그 2010. 6. 4. 14:00

글 | 주상근 (강릉교도소 교위)

 

광부 출신 교도관, 경상도 아가씨를 만나다

 

나는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내가 두 돌이 되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 신작로에서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리는데 버스에서 아버지가 어떤 여자와 함께 내리셨다. “인사해라! 네 엄마다.” 무척이나 어색하고 당혹스러웠다. 새어머니와 동생들이 생겼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툭하면 아버지와 다투고, 눈물로 베개를 적시다가 텅 빈 교회를 찾아가 하소연하는 날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새어머니도 어려운 살림살이에 밥해주시고, 빨래 해주시고, 옷 사주시고, 용돈 주시고, 동생들 낳아 키우시면서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생을 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탄광에서 일했다.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교도관이 된지 두 달째인 1986년 12월에 경상도 아가씨와 맞선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격일제 근무였는데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기에 강릉과 경북 영주는 너무 멀었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약혼식을 하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하늘이 맺어준 부부의 인연을 감사히 여기며, 영원히 사랑하며 살 것을 다짐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든든한 가장이 되자고 다짐했다.

 

 

못생긴 내 딸, 보라

아이는 하나만 낳기로 했다. 아들을 염원했지만 딸이 태어나서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딸이 자라면서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서운해 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큰 딸이 다섯 살 때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다. 이왕이면 아들이었으면 했는데 또 딸이었다. 게다가 둘째는 눈도 작고 못생기기까지 했다. 많이 서운했다.

 

보라는 항상 생글거리며 건강하고 애교가 많았다. 부모 말에 순종적이고, 마음이 넓어서 헌옷을 입혀도 좋아했고, 또래 아이들처럼 “옷 사달라, 장난감 사달라”고 떼 한 번 쓰지 않던 의젓한 아이였다. 양보를 잘하는 보라에게는 이리저리 미루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해 준 것이 없었다.

 

 

가슴에 묻은 아이, 세상 어린이에게 희망이 되다

2003년 겨울.

보라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3층 옥상에서 떨어져 초등학교 5학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보라를 가슴에 묻으면서 “선교사가 되어 가난한 나라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싶다”던 보라의 꿈이 떠올랐다. 영원히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없는 보라의 꿈을 누군가 대신해 줬으면 하는 소망을 품게 됐다.

 

보라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방글라데시에서 학교 설립을 추진하던 APAB(NGO 단체 구제개발기구) 사람들을 만나 학교 설립기금 2,000만원을 냈다. 여기엔 보라 장례식 때 들어온 부의금도 있었다. 강릉교회, 서울영락교회, 청주여자교도소 등에서 지원이 잇따랐다.

 

그렇게 2005년 2월 10일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외진 마을에 ‘보라 초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 지역의 취학률은 50%밖에 되지 않았고, 형편이 괜찮은 아이들만 다른 지역으로 통학을 했다. 그러나 이젠 학교에 다니고 싶은 아이들은 누구나 집에서 멀지 않은 보라 초등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었다. 학교가 턱없이 부족해 입학경쟁이 치열하지만 APAB(NGO 단체 구제개발기구)와 협의해 인근의 고아원 아이들에게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아이들이 다 우리의 보라입니다”

개교식에 참석하니 머릿돌에 ‘보라초등학교, 보라를 기념하며’라는 문구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요한복음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한 선생님이 해맑은 눈동자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one 보라, two 보라”하면서 “이 애들이 다 우리의 보라입니다”고 말을 전했다. 보라가 살아온 것만 같았다. 우리 부부는 한참을 울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보라초교 아이들 Ⓒ강릉교회 홈페이지

 

보라초등학교는 개교 당시 65명에 불과했었는데 지금은 7명의 교사들이 120여명의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희망을 싹 틔우고 있다. 학교 운영비는 직원들의 이웃돕기 모임인 초록회 회원 60명이 내는 후원금에 월급에서 뗀 돈을 보태 매달 120만원 가량을 만들어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는 ‘보라 N’이라는 소식지를 우리 부부에게 보낸다. 입학식, 운동회, 글짓기 대회 등의 학교생활도 e-메일을 통해 접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력경시대회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보라초등학교는 명문으로 떠올랐다. 지역의 반향이 크자 강릉교회는 보라초등학교 옆에 운동장을 같이 쓰는 해오름(SUN Rising) 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지난 1월에는 개교식 이후 처음으로 학교를 찾았다. 그 동안은 여행 경비로 학교 운영비 몇 달치를 쓰게 될 것 같아 방문을 자제해 왔다. 교복에 ‘BORA.P.S(보라초)’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120명의 ‘보라’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보라’가 거기에 있었다. 먼저 간 보라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지만 수많은 ‘보라’들을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아이들은 보라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을 한국어로 부르며 우리 부부를 환영했다.

 

 

내 딸과 맞바꾼 희망···

한 학생이 ‘먼 나라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 보답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낭독할 때는 가슴 뭉클함과 보람을 느꼈다.

 

한 명의 ‘보라’를 잃었지만 새로운 인연으로 더 많은 아들과 딸을 얻게 되었다. 인생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나에게 좋은 인연이든 악연이든 인생길에서 겪어야만 하는 것이라면 소중히 여기고 살아야겠다. 축복은 고난의 보자기를 통해 주어진다는 말처럼.

 

 

 

 

 

이 글을 쓴 주상근 교위는 지난해 12월 17일 제8회 법조봉사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주상근 교위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300㎞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 ‘치타공’의 외진 마을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운영비를 후원하고 있으며, 가정환경이 어려운 강릉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모금·전달하는 등 봉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가락지 사진 = 아이클릭아트

방글라데시 치타공 교실의 아이들 = 강릉교회

주상근 교위와 어린이 = 월간교정 2009년 12월호

 

 

 

이 글은 [월간교정 2009년 12월호 vol.404]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