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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머리, 파란 눈의 해금연주자

법무부 블로그 2010. 5. 28. 17:00

해금의 울림과 국악에 빠진 아름다운 혁명가

글|우승연, 사진|이용석

 

  

 

어느 날 해금의 울림에 반해 한국 음악을 사랑하게 된 ‘힐러리 바네사 핀첨 성(Hilary Vanessa Finchum-Sung)’ 교수. 12년을 오매불망 한국 음악만을 해바라기한 그녀가 들려주는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 그리고 한국 이야기.

 

천명(天命)이 바뀐다는 뜻을 품은 혁명(革命)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회전(Revolution)이다. 한 주기를 돌아 다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새로움.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의 것을 갈아엎는 것 같겠지만 그 본질은 외려 마땅히 있어야 했던 그 자리로의 회귀인 것이다. 이를테면 왕권이나 신권으로 인해 소외되었던 인권 회복처럼. 완전한 변화에 앞선 온전한 변신이랄까.

 

굳이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그 시작은 그저 자기 자신을 오롯이 긍정하며 깊이를 가지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테니. 힐러리 바네사 핀첨-성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혁명이란 단어를 곱씹은 건 그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우리 안의 국악, 한국의 긍정성의 획득 과정이 혁명처럼 다가온 까닭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국악은 멀게만 느껴지나 봐요. 한때 음악뿐 아니라 대개의 한국적인 것을 자연스레 잊어버리고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1988년도 올림픽을 치르면서 국내외 예술가들이 그 흐름을 바꾸었죠. 그때부터 사람들은 ‘아, 이게 우리 음악이구나’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 등지에서 관심을 갖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들여다보게 된 거에요. 민주화를 통한 긍정성이기도 하고요. 민족음악학은 그 변화를 이전처럼 외부 자극이 아닌 내부로부터 길어 올리는 통로에요.”

그런 맥락에서 핀첨-성 교수의 민족음악학(Ethnomusicology) 강의가 지난 3월, 서울대학교에서 시작되었다.

◀ 서울대 국악과 힐러리 바네사핀첨-성 교수 

 

 

음악을 듣기 위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읽다

 

처음에는 ‘파란 눈의 외국 여자가 왜 국악이론을 가르치는 거지?’하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무리는 아니었다. 나고 자란 곳은 이역만리 미국이요, 오랫동안 전공했던 악기는 바이올린인 그녀였다.

 

“12년 전 한국음악을 처음 접했어요. 인디애나 대학에서 민족음악학으로 대학원 석사과정을 시작할 때 한국을 잘 아시는 분의 권유로 한국음악을 듣게 됐죠. 도서관에서 산신과 무당에 대해 읽고 음반가게에 가서 시디를 사서 한국 음악을 들었는데 그게 시나위, 심청가, 궁중음악이었어요. 중국음악이나 일본음악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독특해서 놀랬죠.”

 

특히 해금과 아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사람 목소리를 닮은 그 음색이 경이로웠다. 그로부터 12년 동안 그녀는 한국음악과 함께였다. 도서관을 비롯해 한국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쉽지는 않았다. 낯선 언어였던 한국어를 배우느라 고생했고 한국의 역사, 문화를 공부하느라 하루 24시간 조차 부족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즐거웠다. 어떤 어려움도 그녀와 국악 그리고 한국 사이를 가로막지 못했고 지난 99년 마침내 그녀는 한국을 방문했다.

 

“제가 미국에서 꿈꾸었던 한국은 영화 <서편제>나 <축제>같은 분위기였는데 김포공항에 도착해서 본 한국은 뉴욕과 같은 대도시더라고요. 그게 참 실망스러웠어요. 한국의 전통문화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는데, 2개월 뒤에 인사동에 갔을 때 한국에 대해 많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말이 서툴러서 말도 못하고 외로웠어요.”

 

그녀에게는 인사동이 곧 한국이었다. 그녀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읽고 듣고 느꼈던 것들은 이른바 ‘우리의 옛 것’이었다. 대개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우리 것’을 ‘낡았다’ ‘세련되지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는 흥미 있는 국악 공연이 함께 간 한국 친구들에게는 ‘지루한 음악’이라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훗날 그녀는 그것이 같은 음악을 다른 언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혹자는 음악을 보편적인 언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이 발 딛고 있는 그곳의 문화와 그 문화가 태동한 역사 없이는 음악도 진정으로 와 닿는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녀가 국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녀는 한국인과 국악의 거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나’를 알기 위해 ‘너’를 공부하다

 

“한국에 와서 음악작업을 통해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기뻤어요. 국악인 황병기 선생님을 비롯해서 이지영 선생님과 이강숙 선생님 그리고 원일 선생님 등 모두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죠. 조금씩 다른 느낌의 국악을 들었는데 국악에 대한 저의 소견도 다양해졌죠.”

 

여러 음악 대가들과의 교류는 그녀에게 자양분이 되었다. ‘국악’이라는 명칭이 갖는 소외와 퓨전 음악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까지를 체득하니 똑같은 음악도 달리 느껴졌다.

 

“저는 피아노와 아쟁이 진짜 안 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는 그래서 싫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 시도가 필요한지 알아요. 이를테면 힙합과 탈춤의 어우러짐 같은 실험적인 것들인데 그런 일들이 한국음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이젠 믿어요.”

 

그 바탕 위에서 이뤄지는 그녀의 서울대 강의 과목은 ‘세계음악’과 ‘국악이론’ 그리고 ‘민족음악 방법론’이다. 사실 국악과 최초의 외국인이 ‘민족음악학’을 강의하기에 부담도 크다.

 

“지난 학기, 국악이론 시간에 어떤 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민족음악학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라고 말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나라의 음악을 알면 우리 음악의 특징을 더 명확하게 알수있다’라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바로 그거거든요. 국악, 그러니까 우리 음악이 왜 특별한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민족음악학을 공부해야 돼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젊은 국악그룹들이 자신의 음악을 깊이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힐러리 바네사 핌천-성 교수. 그녀는 한국 사람들에게 국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리고 싶다. 그래서 어려운 해금도 두려움 없이 배운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제대로 연주하려면 환갑을 훨씬 넘길지도 모르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해금을 연주하는 자신을 보고 국악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좀 더 정성껏 연주할 뿐이다. 앞으로 일취월장할 그녀의 해금실력 또한 기대된다. 

 

그녀가 사랑한 악기, 해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해금과의 조우. 12년 전 지인의 권유로 듣게 된 한국 음악과 거기에서 찾아낸 해금은 그녀를 전율시켰다. 사람 목소리처럼 귓바퀴에 파고드는 음색은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조그만 통에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명주실로 두 줄을 메어 그 사이로 활을 걸쳐놓은 이 찰현악기의 공명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에서건 해금 소리는 그녀를 잡아끌었고 이내 그녀는 해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듣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시작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전공이었던 바이올린과 달리 몸집이 크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까닭. 하지만 그녀는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은 많이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수십 년 후 멋진 곡을 연주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이다. 그래서 오늘도 느긋하게 두 줄 사이를 오간다.

 

 

 

 

 

 

 

 

이 글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출간하는 잡지인

‘공존’[2009년 가을호]에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