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대한민국 법무부 공식 블로그입니다. 국민께 힘이되는 법무정책과 친근하고 유용한 생활 속 법 상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한국의 선거문화를 배우는 북한이탈 청소년

법무부 블로그 2010. 6. 2. 17:00

  

▲ 북한이탈 청소년들과 법무부 법교육팀의 배성준 계장(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한껏 열기가 달아오른 5월 하순. 관악산 계곡길에 수국이 움츠렸던 겨울을 이겨내고 찬란한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싱그러운 봄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길로 신록을 가르며 달려오는 버스 한 대가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약 서른 명의 청소년들이 내렸는데요,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 학생들은 북한이탈 청소년인 한겨레중고등학교(경기 안성 소재) 중3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법무부 법교육팀에서 북한이탈 청소년을 위해 ‘우리 법 바로 알기’ 견학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우리 법 바로 알기’ 견학 프로그램은 한국 생활이 익숙치 않은 북한이탈 청소년에게 행정·사법기관 견학 기회를 제공하고,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부과천청사’, ‘한국마사회 경마공원’, ‘대검찰청 홍보관’, ‘대법원 전시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결과를 기계가 집계해요?

 

▲ “우와~ 신기해라” 투표지 분류기를 보고 있는 아이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상황실에 들어간 한겨레학교 학생들은 연신 ‘우와~’하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투표 결과를 자동 집계하는 기계를 보더니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냐며 신기해 하더군요. 또 직접 투표를 해 보는 체험이 있었는데 “이거 이렇게 하면 되요?” 라며 기표박스 커튼을 젖히고 물어보느라 바빴습니다. ‘비밀투표’에 대해 다들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저는 문득 북한에서는 선거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러 명의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선거 홍보에 열을 올리는데 북한은 어떻게 할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요. “선거? 그런 거 없는데요” “선거요? 해본 적 없는데...” 하면서 묻는 학생마다 대답이 달랐습니다. 뜨거운 홍보전을 펼쳤다면 선거에 대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북한에선 그런 게 없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그때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북한에도 선거 있어요. 만장일치 선거요!” 그러자 아이들 몇몇이 재밌다고 웃었습니다.

 

 

▲ “저도 사진 찍어주세요” 직접 투표체험도 해봤습니다.

 

 

점심시간, 저희는 고기 먹을 줄 몰라요~

점심은 법무부가 있는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먹었습니다. 먹음직스런 뚝배기 불고기가 준비되어 있었는데요, 고기부터 먹는 저와 달리 아이들은 채소 반찬 위주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보자, 북한의 열악한 식생활에 익숙해 있어서 고기 반찬을 잘 먹을 줄 모른다고 하더군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아이들은 생선, 해물요리는 아주 좋아하며 잘 먹는다고 하더군요. 인솔자인 김경신 선생님(영어교사)과 채현진 선생님(국사교사)은 자신의 식사는 뒷전이고 아이들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가들아~ 많이 먹어라~” 선생님은 학생들을 ‘아가들아’라고 자주 불렀습니다.

 

 

▲ 지금은 점심식사 중, “역시 채소가 최고야!”

 

 

한 번의 경기 출전으로 20kg이 빠지는 경주마(馬)

점심시간을 마치고 이동한 곳은 한국마사회 경마공원이었습니다. 푸른 잔디와 넓은 공원에서 아이들은 휴식도 취하고 편한 대화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경마공원의 담당 직원이 경주마에 대해 재밌는 얘기를 해줬는데요 “말은 경기에 한번 출전하면 약 20kg 정도의 몸무게가 빠집니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하는 것이지요. 떨어진 체력을 다시 회복하려면 약 한 달 정도의 휴식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로지 죽을 힘을 다해 전진하는 경주마. 탈북한 이 아이들도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한국으로 내려왔겠지요. 힘찬 경주마처럼 아이들도 힘차게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김경신 선생님(좌)과 채현진 선생님(우)

 

 

대검찰청, “여기가 국가안전보위부 같은 덴가요?”

대검찰청에 왔을 때는 아이들 모두 쥐 죽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뭔가 엄청난 기운에 눌린 것 같았지요. 그 때 한 학생이 살며시 제 옆에 오더니 “여기가 국가안전보위부 같은 덴가요?”하고 속삭이듯 물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북한의 비밀경찰기구인데, 북한정권에 반대하거나 비방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처형하는 곳이라네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국가안전보위부를 무서워한답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안심하라는 의미로 “대검찰청은 한국의 최고 핵심수사기관이지만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니야”라고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무서워하던 것도 잠시, 대검찰청에서 법복 입는 체험을 할 때는 평소처럼 발랄하고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어 역시 ‘애들은 애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검찰청 홍보관을 나설 때는 법복 체험장에서 찍은 즉석 인화 사진과 액자 등이 담긴 선물 보따리를 받았습니다. 대검찰청 직원들이 준비해 준 선물이었지요. 아이들은 모두 특별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 “오~ 불도 들어오네?” 대검찰청 모형도를 보고 있는 아이들

 

 

대법원, “판사님, 이럴 땐 누구에게 죄를 묻습니까?”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에 도착했습니다. 대법원 전시관에서는 우리나라의 3심제도(한 사건에 대해 세 번까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첫 재판 후 억울함이 있을 때 항소(고등법원)와 상고(대법원)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지요. 가능한 한 억울한 사람을 줄이기 위한 제도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학생들은 “우리는 딱 한번 재판해요”하면서 한국과 다른 북한의 재판제도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학생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단 한 번의 재판으로 모든 판결이 난다고 합니다.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진지한 시간, 헌법에 대해 꼼꼼히 메모하고 있어요.

 

전시관 관람 후엔 신동훈 판사(41)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요, 아이들의 질문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책임은 누가 지나요?’ 등 죽음에 관련된 질문이 많았습니다. 한겨레중·고등학교의 김경신 선생님은 아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며 태국·베트남 등 제3국을 경유하면서 아이들은 갖은 고초를 겪는다고 합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북에 아직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 가슴에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마음 공부’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다 더 전문적인 심리치료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 대법원 신동훈 판사님과의 대화 시간

 

 

통일 후 남과 북을 잇는 가교가 될 아이들

정말 어렵게 밟은 한국땅.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도 녹녹치는 않습니다.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뿐만 아니라 생소한 문화차이도 극복해야 하고, ‘탈북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도 감당해야 합니다. 한겨레중·고등학교 학생 중에는 일반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다가 전학 온 학생도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우울해 하는 학생도 많다고 하더군요.

김경신 선생님은 한국이 통일되었을 때 이 아이들이 남과 북을 아우를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신동훈 판사도 남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상처가 깊은 만큼 더 강인한 사람이 되어 줄 것을 희망합니다.

경마장에서 봤던 경주마처럼 북한이탈 청소년들이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려면 무엇보다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북한이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법교육처럼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따뜻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겨우 하루 동안 함께 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모두 통일 한국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학교 운동장에 한반도 지도를 만든 한겨레중·고등학교 학생들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어떤 곳일까?

 

한겨레 중·고등학교는 북한이탈 청소년을 위한 학교입니다. 탈북기간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학교가 필요하지요. 이 학교는 나이에 따라 반을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과정에 따라 반편성을 합니다. 따라서 같은 학급생이라도 나이는 천차만별입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빨리 한국에 적응하고, 자신의 진로와 꿈을 정할 수 있도록 ‘제과제빵’, ‘방송반’ 등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