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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때 한 말은 무효?

법무부 블로그 2010. 4. 15. 18:07

우리는 하루 중 몇 번의 계약을 할까?

 

▲ 출처 : 오픈애즈

 

얼마 전 노트와 필기도구 등 문구용품을 새로 장만했다. 물건 값을 치르고 엄마 휴대전화로 현금영수증을 발급 받았다. 그런데 현금영수증 뒷면을 무심히 봤다가 깜짝 놀랐다. ‘할부거래계약서’라는 말이 있고 제1조, 제2조하며 계약조건이 써있었던 것이다. ‘계약? 그렇다면 노트를 산 게 계약이란 말이야?’

 

‘계약’이라고 하면 공식적이고 대단한 것인 줄 알는데,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비를 내고, 물건을 사기 위해 값을 치르고, 심지어 친구들한테 문자 보내는 것도 모두 계약이라고 한다. 계약이 성립되려면 첫째 상대방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둘째 서로간의 의사가 일치 되어야 한다. 서로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계약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 현금 영수증 뒤의 ‘할부거래계약서’

 

 

그렇다면 이 경우도 계약이 성립할까?

 

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의 청혼을 돕기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그리고 돈을 갚지 못 하면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증서를 써준다. 이러한 안토니오의 도움으로 바사니오는 포샤를 만나 무사히 청혼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전 재산인 배가 돌아오지 않아 샤일록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해지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사니오의 약혼녀 포샤는 재판관으로 변장해 법정에 나타난다. 그리고 ‘살은 떼어내되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현명한 판결을 내려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하고, 샤일록의 재산까지 몰수하게 된다.

 

위 내용은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베니스의 상인 (The Merchant of Venice)’의 줄거리다. 주인공 ‘안토니오’는 지혜로운 여성 ‘포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만약 2010년 한국에서 이와 같은 계약이 이뤄졌다면 이 계약은 성립이 될까?

 

법률적 시각에서 볼 때 이 계약은 ‘무효’이다. 민법 제103조에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채무 불이행시 사람의 살을 도려내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관념과 선량한 풍속에 위배되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계약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다.

 

▲ 영화 <베니스의 상인>의 한 장면

 

 

밤하늘의 별도 달도 따줄게~ 이 계약도 성립할까?

 

다섯 살 민지는 오빠 민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오빠 지난번에 나랑 약속했잖아! 내가 오빠 친구들 왔을 때 방해 안 하면, 달 따다 준다고! 달 언제 따 줄거야?”라며 귀찮게 하고 있다.

 

자, 이런 경우는 어떨까? 민지와 민수의 계약은 성립할까? 상대방이 있고, 서로 합의한 상태이므로 계약의 조건은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법에는 ‘불가능한 것을 목적으로 하는 원시적 불능의 경우’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되어 있다. 다섯 살 민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달을 따주겠다는 계약은 원래부터 불가능한 내용을 담은 것이므로 ‘무효’이다.

 

돈을 내고 소비생활을 하는 우리는 매일 매일 계약을 체결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무효가 되고, 또 어떤 경우엔 피해를 볼 수도 있는 계약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계약의 성립과 체결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따져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