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다양한 계약을 맺곤 합니다. 그런데 내용에 착오가 있는 상태로 계약을 맺은 경우, 다시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을까요? 실제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A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양로시설 및 사회복지시설 등을 운영하는 B 사회복지법인의 후원 안내에 따라 할머니들의 생활과 복지를 돕기 위한 목적의 후원금을 송금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B 사회복지법인이 대부분의 후원금을 법인에 유보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A는 자신이 송금한 후원금을 반환받고자 합니다. 이때 A와 사회복지법인 B가 체결한 후원 계약을 취소해야 하는데요, A는 어떤 법률을 근거로 후원 계약을 취소할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민법 제109조를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민법 (개정전)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①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
착오란?
여기서 착오란,
① 법률행위를 할 당시에 실제로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잘못 깨닫거나 아니면,
② 실제로 있는 사실을 없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듯이 의사표시자의 인식과 그러한 사실이 어긋나는 경우
를 뜻합니다.
의사표시자가 행위를 할 당시 장래에 있을 어떤 사항의 발생을 예측한 데 지나지 않는 경우는 의사표시자의 인식과 사실 사이에 불일치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이를 착오로 다룰 수 없습니다(2016다12175). 가령 갑이 X 토지의 가격이 추후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을의 X 토지를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X 토지의 가격이 하락한 경우, 이는 착오라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갑의 예측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떠한 인식이 장래에 있을 어떤 사항에 대한 단순한 예측이나 기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예측이나 기대의 근거가 되는 현재 사정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고 그 인식이 실제로 있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를 착오로 다룰 수 있습니다(2024다206760). 위 후원 사례에서 A는 장차 후원금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쓰일 것이라는 인식 외에, 과거에도 후원자들의 후원금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사용되어왔고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는 인식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제109조 상의 착오에 해당합니다.
착오를 이유로 의사표시를 취소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건 3가지
민법 제109조는 법률행위의 내용 중에서 중요한 부분에 착오가 있다면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경우엔 취소할 수 없습니다. 즉, 위의 사례에서 A가 후원 계약을 취소할 수 있기 위해선 3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법률행위의 내용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가령 갑과 을이 특정 물건을 언제, 얼마에 사고팔기로 매매계약을 맺었다면 언제 얼마에 어떤 물건을 사기로 했는지가 법률행위의 내용이 됩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A는 B와 위안부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목적의 후원금을 증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후원 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첫 번째 요건은 충족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법률행위의 내용 중에서도 중요 부분에 관한 착오여야 취소할 수 있습니다.
위 사례에서 A는 B 사회복지법인의 안내에 따라 자신이 증여한 후원금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과 복지를 위해 쓰일 것이라 인식하였습니다. 그런데 후원금 실제 사용 현황이 후원 계약상의 목적과 달리 쓰이고 있던 게 문제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후원금의 사용 목적’이 계약의 중요 부분에 해당하면 A는 후원 계약을 취소할 수 있고, 중요 부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취소할 수 없게 됩니다. 대법원은 이 경우 후원의 목적은 계약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B 법인의 후원 안내에 따르면 후원을 받는 목적은 위안부 피해자 관련 활동을 돕기 위한 것이고,
을이 후원금을 송금한 일반후원의 목적은 할머니들의 생활, 복지, 증언활동을 돕기 위한 것으로,
쌍방은 위와 같은 목적을 공유하였고 이러한 목적은
A가 후원계약을 체결하게 된 불가결한 기초 사정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위 후원계약의 목적은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24. 8. 1.선고 2024다206760 판결
위 판례에서 대법원은 1) 후원 목적을 표시했는지 여부, 2) 표시 주체와 방법, 3) 쌍방(A와 B)이 모두 후원 목적을 인식하였는지 여부, 4) 후원 목적의 구체성, 5) 후원 목적이 증여(재산의 무상 이전)의 불가결한 기초 사정이 되었는지를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2024다206760). 즉, 이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 A가 송금한 후원금의 사용 목적은 계약의 중요 부분에 해당하였기 때문에 민법 제109조에 의해 후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두 번째 요건도 충족되었습니다.
셋째, 의사표시를 한 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합니다.
즉 A가 착오한 데 있어서 A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의사표시를 한 자의 직업이나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주의를 현저히 결여한 것을 뜻합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평균적인 후원자의 관점’에서도 후원금의 실제 사용 현황을 알았더라면 후원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위 착오는 A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A가 중대한 과실로 계약 내용을 착오하였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계약 상대 B가 오히려 A가 계약 내용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계약을 체결하였다면 어떨까요? 이 경우엔 아무리 A가 중대한 과실로 착오했다고 하더라도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2013다49794). 계약의 상대방인 B가 A의 착오를 알고 있음에도 이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이 경우는 계약의 상대방인 B를 보호해주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입법 예고된 민법 제109조 개정안 살펴보기!
올해 2월 7일, 법무부는 「민법」 현대화를 위한 첫 번째 단계로 계약법 규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습니다. 오늘 살펴본 민법 제109조도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데요, 개정안 제109도 함께 살펴봅시다!
민법 (개정후)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① 다음 각 호의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는 의사표시자가 착오 없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1. 의사표시의 내용에 상응하는 의사가 없는 경우
2. 법률행위의 필수적인 기초가 된 사정에 관한 착오
3. 상대방이 유발한 착오
② 착오가 의사표시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 다만 상대방이 그 착오를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앞서 살펴본 현행 민법 제109조는 어떤 것이 ‘법률행위의 내용’인지, ‘중요부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등 법조문만으로는 착오의 구체적인 요건을 알 수 없어, 착오 사례를 충분히 규율하지 못하는 “백지 규정”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판례와 학설에서 논의되어 온 착오로 인한 취소의 요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제1항 본문은 “중요부분에 관한 착오”를 “의사표시자가 착오 없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때”로 개정안이 공고되었습니다. 또한 제1항의 각호는 착오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방향으로 수정된 모습입니다.
개정안 제2항의 경우는 상대방이 의사표시자가 착오를 했다는 것을 알았거나 중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엔 의사표시자가 중대한 과실로 착오한 경우라 하더라도 취소할 수 있도록 단서 규정을 추가한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착오를 일으켜 잘못 의사표시를 한 경우 취소할 수 있는지 민법 제109조와 함께 살펴봤습니다. 현행 제109조와 입법예고 된 개정안 제109조를 함께 비교해보며 오늘 살펴본 ‘착오를 이유로 의사표시를 취소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건 3가지’를 법률 상식으로 알고 가면 좋겠습니다.
글 = 제17기 법무부 국민기자단 이도은(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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