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변덕스러운 한국 날씨를 되돌아보면 ‘기후변화’를 더는 두고만 볼 수 없을 듯합니다. 장마가 아닌 기간에도 갑작스레 폭우가 내리고 입추가 지나도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현상은 비정상적으로 느껴집니다. 2024년 6월, 기상청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9.9%가 “현재 대한민국 기후변화를 실감”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시급해 보이는 요즘, 환경보호의 신호탄과 같은 ‘헌법재판소 결정’이 2024년 8월 29일에 선고됐습니다. 2030을 이끌어나갈 미래세대가 직접 청구하고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기후소송 관련 결정문을 선고한 점이 고무적인데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이 무엇이고 어떤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으며 헌재 결정은 향후 어떤 함의를 지닐까요? 함께 살펴보시죠!
탄소중립기본법의 배경과 의의
심판대상이 됐던 탄소중립기본법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의 균형을 의미해요. 즉,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고 흡수량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순배출량을 0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온실가스 농도 조절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국제협약’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고도의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고자 1992년 UN의 ‘기후변화협약(UNFCCC)’이 탄생했고, 이러한 협약의 구체적 시행을 위해 교토의정서가 1997년에 체결되었습니다. 교토의정서 만료 시점이 2020년이었기에 국제사회는 또 한 번의 국제협약, 파리협정을 맺게 되는데요. 전과 달리 파리협정은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해야 할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 목표는 산업혁명 이전(1850년대부터 1900년까지의 평균) 대비 기온상승을 최대 2℃ 아래로 유지하고 나아가 1.5℃ 아래로 억제하는 것입니다.
언뜻 2℃라는 수치가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계에 따르면 2℃ 상승은 현 생태계를 전면적으로 파괴하고 인류의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만큼 파급력이 크다고 합니다. 1.5℃ 상승 역시 생태계의 절반이 상실될 위험이 있기에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치입니다. 그리하여 한국 역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는데요. 그 의지가 담긴 법이 ‘탄소중립기본법’입니다.
미래세대의 문제의식과 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법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감축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제8조 제1항). 이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은 40%로 규정되어 있는데요(시행령 제3조 제1항). 그러나 2030년 이후의 감축목표는 제외되어 있습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동법 제7조 제1항) 2030년까지의 목표만 법률로 명시한 것은 단계별 감축목표 중 일부 공백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더불어 국가는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20년 계획기간을 두어 5년마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세워야 합니다(동법 제10조). 이에 따르면 2023년 탄소중립기본계획은 2043년까지의 비전과 그 방안을 제시해야 하지만 2030년까지의 계획내용만 담겨있습니다. 또한, 2023년 탄소중립기본계획 상 2027년까지의 감축목표량이 2030년 감축목표량의 25%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나머지 75%의 책임부담을 2028년부터 2030년까지로 전가한 것과 다름이 없음을 지적합니다.
이에 청소년 환경단체를 비롯한 미래세대가 자신의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촉구하여 국가의 법적 책임을 묻는 ‘기후소송’이라 볼 수 있는데요. 특히, 2001년생(현 24살)부터 2022년생(현 2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 세대들이 청구인이 되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한 점이 상징적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 [2020헌마389 등]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이 보호받고자 하는 권리를 ‘환경권’으로 명명한 뒤,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내용이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만 명시된 탄소중립법 제8조 제1항은 과소보호금지 원칙과 법률유보 원칙에 위반되어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되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인 감축을 이룰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지만, 2031년부터 2049년까지 대강의 정량적인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전가할 위험이 크므로 최소한으로 필요한 보호장치가 없기에 청구인의 환경권을 침해합니다(과소보호금지 원칙 위반).
더불어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일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2031년 이후의 감축목표 및 방향을 ‘법률’로 규정할 필요성이 있는바(법률유보원칙 위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되 구체적인 수준과 방식은 국회에게 넘겼습니다.
한편, 탄소중립기본계획 상 중장기감축목표의 75% 책임부담을 2028년부터 2030년까지로 전가한 점과 “부문별 및 연도별 감축목표에서 ‘기준연도 총배출량-목표연도 순배출량’ 기준으로 배출량 목표지를 산정”한 점은 정부 행정계획의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했습니다.
함의: 미래세대의 환경권, 그리고 국가의 법적 책임
대한민국 헌법
제35조 ①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제35조가 보장하는 ‘환경권’에서 환경이란 자연환경과 인공환경을 모두 내포합니다. 기후변화는 각종 재해로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일상생활의 기반이 되는 환경까지 훼손할 수 있어요.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변화가 발생하면 원상태로 회복하기가 매우 힘들며, 현세대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감축부담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기후변화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완화하고 예방할 책임을 지닙니다.
헌법 ‘전문’ 중 일부에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헌법전문의 정신을 되새겨 봐도,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위해 환경을 보전할 의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를 몸소 실감하고 있는 요즘, 미래세대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글 = 제16기 법무부 국민기자단 박도형(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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