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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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속 '1파운드 살' 재판의 결과는?

법무부 블로그 2023. 7. 25. 09:00

 

 

 

영국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최고 시인이자 극작가입니다.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 자신의 저서 영웅숭배론에서, “인도를 언젠가 잃게 될 것이나 셰익스피어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문학의 영원성을 강조하면서 유명해진 구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수없는 연극으로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상영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사회탐구 영역 법과 사회과목에서 줄거리를 각색한 문제로 출제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니스의 상인이 1605년에 대중에게 처음 선보인 후 지금까지 법학도의 법률연구 주제로도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을 묘사한 삽화  ( 출처 :  게티이미지 )

 

 

작품은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가 부자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빚을 갚지 못해 살을 베이려는 재판에서 피를 흘리지 말고 베어가라는 판관 발타자르의 판결로 목숨을 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과연 작품 속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지금 우리의 법으로 판단했을 때 법률적 문제는 없는 것일까요?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돈을 빌리고 신체의 일부를 베어주는 증서는 유효할까?

 어느 날,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의 친구 바사니오가 찾아와서
벨몬테 섬의 아름다운 상속녀 포셔를 사랑한다며 구혼할 자금을 빌려줄 것을 부탁한다
.
안토니오는 자신이 소유한 상선이 한 달 후면 많은 상품을 실고 돌아올 것이므로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재산을 탕진해 빈털터리인 바사니오의 청혼을 도와주기로 한다.

 

안토니오는 유대인 부자 샤일록에게 석 달 동안 빚을 상환하지 못하면 자신의 고운 살 1파운드를 베어 가도 좋다고
공증소에서 무담보 계약에 서명을 하고 삼천 다카트를 빌린다
.

 

하지만 먼 바다로 출항했던 상선 4척 중 한 척은 난파되고,
나머지는 모두 유실되었다는 소식에 안토니오는 파산에 이른다.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서 보증을 선 안토니오는 샤일록에게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는다.

 

 

돈을 빌리고 신체의 일부를 베어 주는 증서에 서명을 하다니요! 신체 포기로 간주될 수 있는데 현행법에서는 괜찮을까요?

 

 

우리 민법에서는 신체라든지 장기 등을 넘겨준다는 계약 등과 같은 반사회적 질서의 법률 행위는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 신체에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이 형법상 피해자의 승낙이라는 규정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인정을 하는 경우 굉장히 큰 혼란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살 1파운드를 제공하겠다는 증서는 법에서 금지하는 것이므로 계약 자체는 무효이고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인격적 모욕을 당했다는 샤일록의 주장은?

 포셔는 남편 바사니오의 친구인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
민법법학 박사 복장의 판관으로 변장하고 법정에서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권한다
.

 

샤일록은 평상시 안토니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저고리에 침을 뱉었을 뿐만 아니라 발로 찼으며,
이유 없이 무자비한 개라고 무시하고 욕을 했다며 조정안을 거부한다.

 

바사니오가 최대 열 배까지 변제하겠다고 했지만 샤일록은 한사코 거부하며 계약서에 쓰인 대로 해달라고 요구한다.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할게요. 1597년 이 희극이 쓰여 질 무렵 베니스의 시민들은 유대인을 이교도, 오신자(誤信者)라고 멸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작품 속 고리대금업자 유대인 샤일록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보는 공개된 자리에서 안토니오로부터 인격적 모욕을 당합니다.

 

 

지금 법의 잣대로 보면 모욕죄에 해당하고,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또한 침을 뱉었기 때문에 폭행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극의 시대는 1596년으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크던 시대였으며,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멸시를 받았던 샤일록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는 하네요.

 

 형법
제260조(폭행, 존속폭행) ①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제311조(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영화  ‘ 베니스의 상인 (2005)’  중에서

 

 

 

계약서대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원한다고 주장했던 샤일록! 과연 판관 포셔는 어떠한 판결을 내렸을까요?

 

 판관 포셔는
"계약이 심장 가장 가까운 부분의 살 1파운드만 허용하고 있으므로 핏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살을 베어내시오.
그렇지 않으면 땅과 재물은 베니스의 국법에 의하여 정부로 몰수될 것이고,
시민의 생명을 노렸으므로 사형에 처할 것이다." 라는 판결을 내린다.

 

샤일록은 재산의 절반을 국고에 귀속하게 되고,
나머지 절반은 안토니오가 위탁 후 샤일록이 죽게 되면 그의 딸 제시카와 사위 로렌초에게 증여하는 기증서에 서명한다.

 

결국 안토니오가 재판에서 승소한다.
안토니오의 상선 세 척이 안전하게 돌아온다.

 

 

피를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내라는 판관 포셔의 판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지혜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재판관의 자격 획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재판 체계상 현재는 외부인이 신분을 속이거나 위장하여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판관으로 변장한 포셔는 공무원의 자격을 사칭하였기 때문에 공무원 사칭죄에 해당하고, 재판 자체가 무효입니다.

 

 형법
제118조(공무원자격의 사칭) 공무원의 자격을 사칭하여 그 직권을 행사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우리 주변에는 검사, 의사, 판사, 경찰 등을 사칭하는 사람에게 속아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요. 그런 사칭하는 사람들 중에는 판관 포셔처럼 지혜롭기 보다는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가거나 건강을 노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 늘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셰익스피어  ⓒ 클립아트코리아

 

 

작품에서 살펴본 것처럼, 민법상의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와 관련해서 상인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제공하는 계약 자체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계약이기 때문에 무효입니다. 우리 법률에서 신체포기각서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족이나 친구 간에 돈 거래를 합니다. 지인과의 정상적인 소액거래는 그 피해가 미미하지만, 남을 대신하여 보증을 서거나 명의를 빌려주고 거액의 금전거래 등을 함에 있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에 이르기도 합니다.

 

 

개인 간의 약속과 계약에 원칙적으로 국가는 개입하지 않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관과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내용이라면 법률적 측면에서 무효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하겠습니다.

 

 

 

 

= 15기 법무부 국민기자단 박민주(고등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