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인전은 조직폭력 두목(마동석 분)과 형사(김무열 분)가 합심하여 연쇄살인범을 잡는 다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요. 두 주인공의 직업은 전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방을 제압하면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마동석에게는 정당방위가 되고, 김무열에게는 그 죄를 물어야 하는 확연히 다른 판결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어떤 이유에서 인지 살펴볼까요?
형법 제21조에는 '정당방위'에 대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자신이나 타인의 법익에 대해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벌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부당한 침해와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모호하고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일단 정당방위의 기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니가 나를 먼저 때렸으니까, 나의 폭력은 정당방위야!"라고 주장하는데요. 이런 합리화는 정말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 법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해를 입혔다고 해서, 맞서 공격하는 것을 모두 정당방위로 보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이는 섣불리 정당방위라는 법을 악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에서죠.
과연 그 성립 조건이란 게 뭘까요?
첫째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일전에 있었던 침해(과거)에 대해 복수를 한다거나 앞으로 발생할 위험(미래)을 방지할 목적으로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 '현재성'이 없다고 보여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둘째로, 방위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즉, 당시 사건 상황에서 그 방위행위가 꼭 필요했느냐 하는 여부와 사회통념상으로 용인되는 범주에 있느냐 하는 점이죠. 쉽게 말해 침해된 법익과 방위하려는 법익사이에 균형이 맞아야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해자에 대한 자신의 방위행위가 최소 침해 행위에 머물러야 합니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폭행을 멈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방위행위를 지속한다면, 이는 과도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의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열거된 조건이 충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완할 사항이 있는데요. 바로, 자신의 정당방위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목격자나 객관적인 증빙자료가 있어야 인정이 쉽다는 점이죠. 이렇게 보니, 정당방위를 행사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만은 않죠?
자 그렇다면 정당방위와 관련한 실제 판례를 통해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정도를 가늠해볼까요?
2014년에는 실제로, 도둑질을 위해 남의 집에 무단침입한 절도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이 상황은 영화 '펠론'에서도 다루었던 정당방위 불인정에 대한 상황과 같습니다. 극중 주인공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제압되어 공격의 의사가 없는 절도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폭행했다고 판시하여, 옥살이를 하게되었습니다. 당시 서울고등법원(2016.1.29 선고 (춘천)2015노11 판결)은 남의 집에 무단침입한 절도자의 부당한 침해 상황은 인정하면서도, 절도자를 수회 때려 그가 완전히 제압된 상황에서, 현재의 침해가 종료된 이후에도, 집주인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죽음에 이르게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죠.
실제로 피고인의 오빠(피해자)가 야간에 피고인과 다른 가족들을 죽일 목적으로 칼을 들고 어머니를 찌를 듯이 위협하고, 남동생의 목을 조르는 상황에서 남동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피해자의 목을 눌러 사망하게 한 여동생(피고인)의 살인사건이 있었는데요. 대법원(1986.11.11 선고, 86도1862 판결)은 여동생(피고인)의 행위가 과잉방위에 해당하지만 그 당시 야간에 불안스러운 상태 아래서 공포, 당황 등으로 인해 발생한 행위라고 보아, 벌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마동석과 김무열의 정당방위 비교
자, 정당방위의 기준에 대해 감이 좀 잡히셨나요? 그렇다면 영화 '악인전'으로 돌아와서, 마동석과 김무열의 정당방위의 가능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Q. 제우스파 두목 마동석(장동수 역)은 비 오는 야간에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요. 연쇄살인자가 마동석의 차량에 고의 추돌을 하여 마동석이 차 밖으로 나오도록 유인하여, 추돌 부위 확인을 위해 하차한 마동석을 기다렸다는 듯, 쥐고 있는 칼로 여러 차례 자상을 입혀 죽이려고 하였는데요. 마동석은 선제적으로 칼에 찔려 저항하는 중에도, 죽음을 모면하고자 살인자에게 자상을 입히지만 마동석이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어가는 틈에, 살인자가 도망 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경우 마동석의 정당방위는 가능한 것일까요?
A. 마동석이 살인자의 칼을 빼앗아 자상을 입힌 행위에 대해서는 도를 넘은 과잉방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 오는 야간에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와 당황으로 인한 행위라는 점에 비추어 보아, 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살인범이 흉기를 빼앗긴 후에도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한 부분도 마동석의 행위가 참작이 될 것이고, 여러 차례 자상을 입은 마동석이 의식을 잃어가는 중에도 공격을 받아 살인범을 칼로 찌르지 않고는 달리 죽음의 상활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점, 그리고 상대방보다 나의 피해 정도가 심각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이유' 혹은 '위법성의 조각사유'가 될 것입니다.
이 경우는 일방적으로 살인자가 마동석을 살해하려는 목적으로 부터 발생한 사건인데요. 만약 살인자와 마동석 양자 간에 싸움으로 시작되어 마동석이 살인자에게 자상을 입힌 경우라고 가정을한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싸움의 경우 가해 행위는 방어인 동시에 공격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인데요. 애초에 서로 공격을 할 의사가 있다는 전제는 일방적인 피해에서 시작된 전제와는 전혀 다른 행위로 보아, 정당방위로 볼 수 없습니다.
Q. 저녁 늦은 시간, 형사 김무열(정태석 역)은 마동석과 함께 연쇄살인범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살인범의 차량이 있는 창고로 가게 되는데요. 살인범의 증거를 찾아 들떠있는 중에 허상도의 폭력조직 부두목인 허동원(최문식 역)이 부하들을 대동하고, 창고를 습격하게 됩니다. 급기야 허동원은 칼을 쥔채로 김무열을 살해하기 위해 공격을 하는데요. 김무열은 칼을 쥔 허동원의 칼이 자신의 가슴을 향해 다가오자, 잽싸게 허동원의 가슴으로 방향을 틀게 되고, 허동원은 도리어 자상을 입고 즉사하게 됩니다. 이 경우 김무열의 정당방위는 허용되는 것일까요?
A. 김무열의 방위행위 또한 마동석과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야간에 협소한 창고 안에서 칼을 든 허동원과 조직폭력 일당이 집단으로 공격을 가하는 행위는 김무열에게 상당히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또한 김무열은 싸움의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먼저 도발하여 칼을 휘둘렀으며, 공격의 의사가 없는 중에 의도치 않게 살인에 도달했다는 점은 참작이 될 만한 사항입니다. 어디까지나 김무열은 상대의 공격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저항수단으로 유형력을 행사한 것인데요. 이러한 사정을 비추어 보았을 때 사회통념상 허용될만한 상당성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김무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형사의 신분으로서 살인행각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허동원의 사체를 암매장하는 행위에까지 이르게 되는데요. 이 행위는 형법 제161조의 '사체유기죄'에 해당하여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형사라는 공무원 신분으로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 동법 제135조에 따라 그 죄에 정한 형의 1/2까지 가중될 수도 있겠죠. 혹여 김무열이 "나는 직접 사체를 유기하지 않았고, 마동석이 대신 유기하였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 할지라도, 동법 제32조에 따른 종법으로 보아, 김무열에게 마동석의 사체유기를 방조한 죄를 묻게 되는 것이죠.
Q.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마동석이 김무열에게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조건으로 '연쇄살인마 강경호(김성규 분)의 교도소에 같이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요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러한 요구는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A. 답은 'No'입니다. 교도소로 신입 수용자가 오게되면 '형집행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것처럼 분류조사를 통해 수용자의 처우등급이라든지 특성에 맞는 적절한 개별적 처우계획을 세워 거실지정(수용실을 정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요. 즉, 동범자라든가, 상호간의 다툼의 우려가 있을 경우 분리수용을 할 수 있습니다. 처우변동이나 수용자의 태도가 가변적인 교도소의 특성 상 거실 지정은 언제든 이동 가능합니다. 또한 직원과 수용자 간의 거래는 일체 허락되지 않는데요. 이러한 거래가 발각된다면 직원의 징계는 물론이고, 수용자는 형집행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상벌에 따라 처벌을 받게됩니다. 다시말해 마동석의 간절했던 개인적 부탁은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영화를 통해 타인에게 먼저 공격을 받았다고 해서, 내가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이 전적으로 정당방위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정당방위의 기준을 인지하여 저항의 정도를 가늠하면 나를 법으로서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제가 너무 단순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깨달음을 통해, 정당방위의 조건을 알고 정당방위 행위를 행하려는 시도보다, 정당방위를 행사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양보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 제11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김웅철(일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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