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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별주부전 속 범죄의 재구성

법무부 블로그 2018. 10. 15. 14:30



바쁜 일상에 적응하면서 피로감 한번쯤은 느껴보셨을 겁니다. "피로는 간때문이야~"라고 외치는 유명한 강장제 CF에서 처럼 간은 영양소 대사나 해독작용 등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기이면서, 피로증상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데요. 건강한 간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간 동물도 있죠. 바로 별주부전의 주인공 '토끼'입니다.

 

이 고전소설은 병상에 누운 용왕을 위해 자라가 토끼의 간을 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 별주부전을 접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지킨 토끼의 지혜와 용왕을 섬기는 자라의 충심에 관심이 쏠려 정작 중요한 사항을 놓치고 말았었는데요. 극중 인물들이 모두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병을 얻은 용왕이 자라에게 토끼의 간을 구해오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출처=쥬니어 네이버

 

 

장기 매매는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약칭: 장기이식법)'에 따른 불법 행위

이야기의 발단은 병을 치유하기 위한 용왕이 자라를 시켜 토끼의 간을 가져오라고 명한 것에서 부터 시작되는데요. 현대 법에서는 제 아무리 용왕이라고 해도 토끼의 장기를 공식적인 절차 없이 얻으려는 행동은 '장기이식법 제7'에 따른 위법행위 입니다. 위 조문을 어길 시에는 '동법 제45'에 따라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죠.

 

용왕의 살인교사 및 권력 남용죄

용왕의 죄는 이뿐만이 아닌데요. 바다 전체를 관리하는 고위 공무원 신분으로써, 신하인 자라에게 토끼의 간을 구해오라 명한 행동은 형법 제123조에 따른 직권남용죄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용왕이 자라로 하여금 토끼의 간을 꺼내도록 하는 행위는 살인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기 때문에 형법 제250, 31조에 따라 살인죄의 교사범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교사범은 본범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하고 있으므로, 살인죄의 교사범은 살인범과 동일한 처벌을 받습니다.

 

 

토끼의 간을 적출할 목적인 자라는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유인합니다. /출처=쥬니어 네이버

 

 

자라의 충심은 유인죄[형법 288] 살인 미수 죄

자신이 섬기는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적출할 목적으로 유인한 자라의 행위는 충심으로서 용서될 수 있을까요? 형법 제288조에는 장기적출을 목적으로 유인한 사람은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토끼의 간을 꺼내면 사망할 것을 알면서도 적출하려 시도했던 자라의 행동은 살인 예비 또는 음모로 볼 수 있어, 동법 제250, 255조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설사 토끼의 승낙을 받아 살해했다 하더라도 동법 제252조에 의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데요. 자라의 행위를 충심으로 미화시키기에는 중대한 범죄임이 틀림없습니다.

 

 

꾀를 부려 뭍으로 나온 토끼는 자신을 곤경에 빠트렸던 자라를 비난합니다. /출처=쥬니어 네이버

 

 

토끼의 모욕죄와 명예훼손 죄 가능성

극중 토끼는 자라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토끼는 마냥 피해자이기만 할까요? 이야기가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토끼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에 꾀를 부려, 바다에서 육지로 나오게 되는데요. 이후에 자신을 속인 자라를 향해 "세상에 어떤 동물이 간을 빼놓고 다닐 수 있느냐"며 혼쭐을 내고, 약을 올리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칫 잘못하면 토끼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라를 가리키며 욕설(추상적인 판단이나 의견)을 하게 된다면 형법 제311조에 따라 모욕죄에 해당되어 처벌을 받을 것이고, 이 상황에 욕설이 아닌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킬만한 구체적인 사실(예컨데, 자라가 용왕에게 여우의 간을 나의 간이라고 속여서 기만을 했다는 등)을 적시했다면 형법 제307조에 따라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토끼는 용왕에게 자신의 간이 뭍에 있으니 가져오겠다고 약속합니다. /출처=쥬니어 네이버

 

 

자신의 간과 다른 간까지 가져오겠다는 토끼의 약속은 지켜야 할까?

용왕 앞에 선 토끼는 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목숨 보전을 위해 "집에 간을 놓고 왔으며, 다른 토끼의 간까지 가져오겠노라"고 꾀를 부리게 됩니다. 용왕은 토끼의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는 성대한 잔치를 베푼 후에, 뭍으로 놓아주게 되는데요. 용왕과 토끼의 약속은 이행효력을 가지는 것일까요?

 

민법 제107조에는 "의사표시는 약속을 한 사람이 진심이 아닌 것을 알고 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약속을 한 사람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문에 비추어보았을 때 용왕이 토끼에게 잔치를 베풀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황을 토대로 토끼가 간을 가져오겠다는 내용의 약속은 이행 효력을 가지게 됩니다. 괜한 꾀를 부린 토끼는 합법적으로 꼼짝없이 죽게 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동법 제103조에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어, 자신의 간을 바치겠다는 토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자라는 용왕의 명령 완수를 위해 토끼를 곤경에 빠트립니다. /출처=쥬니어 네이버

 

 

무지의 소치에서 비롯한 충신 '자라'는 이대로 범죄자가 되는 것일까?

자라는 극중 충신으로 묘사되는데요. 그저 용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되는 것일까요? 법률용어사전에는 '기대가능성'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행위 당시 행위자가 적법행위를 할 수 있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사정'을 말하는데요. 범죄 상황에서 누구든 위법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판단되는 경우, 기대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책임조각 사유로 인정하여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컨데, 자라가 토끼의 간을 구해오지 못하여, 용왕이 사형을 내리겠다고 공언하는 경우, 자라가 범죄행위임을 인지하면서도 적법행위를 취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보아, 자라에게 무죄를 판결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죠.

 

현대법의 잣대를 통해, 별주부전에 숨은 범죄를 재구성 해보았는데요. 토끼의 간 하나를 얻기위해 수많은 불법요소가 발생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국 속담에 "거짓말 하나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스무 개의 거짓말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범죄 또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부처님도 다급하면 거짓말을 한다지만,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은 순간이니까요.

 

 

 

= 10기 법무부 블로그기자 김웅철(일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