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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의 면책특권은 만능특권?

법무부 블로그 2013. 10. 10. 09:00

    

<사례1>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남산공원에서 대기업 B사 회장의 부인 나모씨(72)와 아들 이모씨(43)가 공원 내 연못 주변을 산책하던 도중 갑자기 목줄이 풀린 개한마리가 나타나 나씨의 오른손을 물었다. 갑작스런 봉변에 아들 이씨는 갖고 있던 우산으로 어머니를 공격하는 개를 위협해서 간신히 떼어냈다.

그런데 개 주인 주한 독일대사관 소속 무관보(武官補)인 H씨는 개의 목줄을 잡지 않은 것을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고함을 치며 이씨 모자를 밀쳐냈다. 이어 이씨의 오른쪽 다리를 발로 걷어차고, 자신의 개를 끌어안았다. 이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H씨를 이태원파출소로 연행했으나 외교관 신분을 확인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례2>

Y씨 가족은 산책을 나와 집 앞에 있는 서울 광진구 광진교 남단 광나루한강공원으로 갔다. 산책을 하던 Y씨 가족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가로지르던 도중에 제한 속도를 훌쩍 뛰어넘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자전거 한 대를 발견했다.

하지만 Y씨의 아버지(68)가 이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만 자전거에 치이고 말았다. 순식간에 공중으로 몸이 뜬 Y씨의 아버지는 잠시 후 3m 정도 떨어진 바닥으로 나뒹굴었고, 갈비뼈에 금이 가는 등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 가해자인 미국인 A씨는 오히려 옆에서 울고 있던 Y씨의 어머니에게 화를 냈고, 잠시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가 한국 주재 대사관 직원이라는 것을 확인해줬다. A씨는 자신이 외교관 신분이므로 법적 책임이 전혀 없다며 대사관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고 말한 뒤, 끝내 이씨 가족에게는 단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은 일부 외교관이 원활한 외교업무 수행을 위한 ‘면책특권’을

마치 ‘만능특권’ 인양 악용하면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주한 레바논 대사가 앞서 가던 차량을 들이받고 그대로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 SBS 뉴스화면 캡처

 

다행히 피해 차량에 있던 30대 여성 운전자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자드사이드 엘 하산 대사는 사고를 수습하지 않고 속도를 높여 주한 레바논 대사관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대사관 앞에서 대사를 만나 사고 경위를 조사하려 했지만

대사는 이마저 불응하고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사관 측은 “대사가 실수로 사고를 냈으며 몸이 좋지 않아 미처 사고를 수습하지 못했다”고 전했고,

경찰 관계자는 “외교부를 통해 하산 대사에게 출석을 요청할 계획”이라면서

“조사를 거쳐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SBS 뉴스화면 캡처

 

실제로 음주운전 측정 거부나 택시기사 폭행 사건 등의 ‘외교관 범죄’는

언론에 드러난 것만 해도 한두 건이 아닌데다,

외교공관 차량 불법 주정차 과태료 체납 건은 여전히 많습니다.

피해자가 발생해도 ‘외교관의 면책특권’ 때문에 보상받을 길이 막막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동안 이런 면책특권으로 외교관의 음주 운전, 무보험 차량 운전 등

범법행위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경찰은 아무런 행정처분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가입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등에 따라서 주한 외교관들에게 면책특권이 부여됐기 때문입니다.

 

§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29조

외교관의 신체는 불가침이다. 외교관은 어떠한 형태의 체포 또는 구금도 당하지 아니한다. 접수국은 상당한 경의로서 외교관을 대우하여야 하며 또한 그의 신체, 자유 또는 품위에 대한 여하한 침해에 대하여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제30조

1. 외교관의 개인주거는 공관지역과 동일한 불가침과 보호를 향유한다. 2. 외교관의 서류, 통신문 그리고 제31조제3항에 규정된 경우를 제외한 그의 재산도 동일하게 불가침권을 향유한다.

제31조

1. 외교관은 접수국의 형사재판관할권으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 외교관은 또한, 다음 경우를 제외하고는 접수국의 민사 및 행정재판관할권으로부터의 면제를 향유한다.

(a) 접수국의 영역내에 있는 개인부동산에 관한 부동산 소송. 단, 외교관이 공관의 목적을 위하여 파견국을 대신하여 소유하는 경우는 예외이다.

(b) 외교관이 파견국을 대신하지 아니하고 개인으로서 유언집행인, 유산관리인, 상속인 또는 유산수취인으로서 관련된 상속에 관한 소송

(c) 접수국에서 외교관이 그의 공적직무 이외로 행한 직업적 또는 상업적 활동에 관한 소송

2. 외교관은 증인으로서 증언을 행할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3. 본조제1항(a), (b) 및 (c)에 해당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교관에 대하여 여하한 강제 집행조치도 취할 수 없다. 전기의 강제 집행조치는 외교관의 신체나 주거의 불가침을 침해하지 않는 경우에 취할 수 있다.

4. 접수국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외교관을 면제하는 것은 파견국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외교관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다.

 

196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따르면

외교관은 파견국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체포·구금도 당하지 않고

형사재판관할권 면제를 받는 '면책특권'이 인정됩니다.

 

외교관들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국제법에 따라 외교상 기피인물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로 지목해 본국으로 추방할 수 있는 근거는 있습니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페르소나그라타(호감이 가는 사람)와 상대되는 말이다. 외교사절의 아그레망(agrément)이 요청되었을 때, 아그레망을 요청받은 국가가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였을 때, 그 이유를 밝히지 않고 그 사람의 파견을 거부할 수 있다(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 9조).

 

외교사절단의 직원과, 영사나 그 직원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영사관계에 관한 빈협약 23조),

거부의 이유로서는 그 인물이 언론이나 행동으로 적의를 표시한 경우나 또는 범죄를 범했을 경우 등이 해당되는데,

외교사절의 종교나 인종에 의거하여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상 외교관계 등을 고려해 집행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외교사절의 미미한 범법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면

양국이 외교적으로 심각한 마찰을 겪을 것을 우려하는 각국의 입장 때문인 것인데요,

 

우리나라는 그동안 외교관 면책특권 남용을 제재할 규정이 없어 외교관의 음주운전, 무보험차량 운전 등

범법행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에 검찰이 국내에서 근무하는 외국 외교관들의 범법행위에 엄정히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대검찰청 형사부(소병철 검사장)는 외교통상부, 경찰청과 함께

‘외교관 등 형사면책특권자 사건처리 지침’을 만들어 2009년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지침에 따르면 앞으로 외교관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 경찰은 즉시 관할 검찰청과 외교부에 통보하고

외교부는 사건 내용을 해당 외교관이 속한 국가 외교부에 통보하면서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본국 소환을 요구하거나 직접 추방할 수 있습니다.

외교부는 최종 조치결과를 대검에 통보해 종합적으로 관리하게 합니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외교관 등의 범죄에 대해 수사기관이 범법사실을 국무부에 통보하도록 하는 한편,

중한 죄일 경우 국무부가 해당 외교관에게 면책특권포기를 공식요청하고 만약 포기하지 않으면 귀국을 요구합니다.

스위스도 수사기관이 범법사실을 외무부에 통보하면

외무부는 해당국가 대사관에 통보해 해당 국가가 자체 제재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은 그 나라의 얼굴인 만큼 외교관들이 주재국의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고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