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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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유해매체물 선정에 쇄국정책이 떠오른다

법무부 블로그 2011. 8. 4. 08:00

 

‘유해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해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소년 유해판정’이라는 말은 ‘청소년에게 해로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판정’ 정도가 되겠지요?

 

 

 

청소년 유해여부는 청소년 보호위원회에서 선별하여 판정을 내립니다. 그것이 노래든, 영화든, 어떤 물건이든 간에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으면 ‘19금’ 매체로 선정되며, 청소년들은 그 유해물을 듣거나 보면 안 됩니다.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은 노래가 수록된 음반의 경우,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겉면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임을 알리는 표시를 해야 하고, 19세 미만에게는 판매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작사, 유통사, 판매사 등에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오후 10시 이전에 해당 곡을 방송할 수도 없습니다.

 

청소년보호법

제49조(과징금) ① 여성가족부장관은 정기간행물등을 발행하거나 수입한 자가 제10조의 심의기준에 저촉된 청소년유해매체물을 제14조·제15조의 규정에 의한 청소년유해표시 또는 포장을 하지 아니하고 당해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결정·고시전에 유통하였거나 유통 중인 때에는 당해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발행하거나 수입한 자에 대하여 2천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다

 

얼마 전, 다음 아고라에 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아이돌 가수 비스트의 노래 ‘비가 오는 날엔’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판명된 것에 대해 청소년 팬들이 이해할 수 없다며 청원글을 올린 것입니다.

 

 

▲ 2011.08.01 다음 아고라에서 가져온 청원글.

가수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에 대한 청소년들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뷰티는 비스트 팬클럽의 이름이다.

 

 

사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어느 한 구절 때문에 ‘19금’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2008년 걸 그룹 쥬얼리의 히트곡 ‘원 모어 타임’은 발표된 지 3년이 훌쩍 지나서야 청소년 유해곡이 되었는데요. ‘이밤을 지새울 한심한 늑대들’, ‘나를 안아줘’, ‘섹시한 눈빛과 뜨거운 몸짓’ 등의 노랫말이 선정적인 표현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티아라의 'Roly-Poly'는 뮤직비디오에 클럽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청소년 유해판정을 받았으며, 뉴다이너스티의 경우 앨범 수록곡 전체가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앨범에 들어있는 모든 곡들이 선정적이고, 비속어를 사용하고, 유해약물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는 이유였지요.

 

▲티아라 'Roly-Poly' 장면 ⓒ 티아라 뮤직비디오 'Roly-Poly'

 

 

청소년 보호위원회에서 일부러 청소년들을 골탕 먹이려고 유해 매체물을 선정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분명히 청소년을 보호하고자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여 선정하는 것일 텐데요. 하지만 제 생각에, 청소년 유해판정의 기준을 표면적인 ‘가사’로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노래 가사에 ‘술을 마신다’는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듣고 정말 술을 마시러 가는 청소년이 몇이나 될까 요? ‘술’, ‘유혹’, ‘섹시’ 등의 단어는 노래 가사가 아닌 일상 속에서도 자주 접하는 단어인데 굳이 노래 가사에 등장한다고 하여 그 단어에 없던 충동이 생길 청소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래에 담긴 가사 보다는 정서를 읽어내고, 그 정서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더 실속있는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유해매체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불분명한 것도 문제가 됩니다. ‘술’이나 ‘담배’를 포함한 청소년이 접근하면 안 되는 물건이 가사에 포함되어 있는 노래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모두 청소년 유해매체물이 되지도 않습니다. 청소년 팬들은 ‘왜 저 노래는 19금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19금인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기 일쑤입니다.

 

청소년보호법

제10조(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 ① 청소년보호위원회와 각 심의기관은 제8조의 규정에 의한 심의를 함에 있어서 당해 매체물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하여야 한다.

 

1.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

2. 청소년에게 포악성이나 범죄의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3.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형태의 폭력행사와 약물의 남용을 자극하거나 미화하는 것

4.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의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비윤리적인 것

5. 기타 청소년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명백히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청소년보호법에는 엄연히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법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나 음란한 것, 범죄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 폭력행사와 약물남용을 자극하는 것, 반사회적이거나 비윤리적인 것, 청소년의 정신과 신체 건강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것 등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른들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을 판정할 때 ‘사랑의 짝대기’로 줄을 긋듯이 법과 노래 가사를 연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판단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수준은 많이 성장해 있어서, 노래가사에 ‘술’, ‘담배’, ‘섹시’, ‘유혹’ 등의 다소 자극적인 단어가 등장해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크게 자극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의 일방적인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보면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생각났습니다. 쇄국정책은 외국문물의 유입을 막아 나라를 보호하려 했던 정책이었는데요. 역사적으로 판단해 보면 대원군이 쇄국정책으로 수호하려 한 봉건적 지배질서는 민중의 편에서 본다면 시급히 청산해야 할 장애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민중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현재를 유지하려고만 했던 흥선대원군의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해석되고 있는 것이지요.

 

훗날, 2011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 논란’을 재해석할 때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비슷한 판단이 내려지지는 않을까요? 청소년들은 이미 저 멀리 서 있는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고 엉뚱한 곳에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을 판정하는 기준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청소년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도 의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유해한 것만 차단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 유해매체물이 논란 없이 제대로 선정되고 적용될 때야 말로, 청소년 스스로도 매체의 유해함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른들의 선정과 판단에도 믿음을 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미지 = 알트이미지

글 = 민지희 기자

 

 

 

 

이 글은 블로그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글로써, 법무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