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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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란 바로 이런 것!

법무부 블로그 2011. 7. 29. 08:00

 

꿈속에서 본 그가 현실에 나타났을 때

6년 전 한 서울청년이 중국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중국 대련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 날, 그 청년은 대학교에서 한 여인을 만났지요. 그 청년은 한눈에 그녀에게 반했고, 평소 이성에게 눈길 한번 안주던 차가운 그녀 역시 그날 따라 이상하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한국청년이 싫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한국청년의 인상이 많이 낯이 익었습니다. 마치 눈앞에 이 사람이랑 아주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편하고 낯설지가 않았죠. 아니나 다를까 한참 후에야 눈앞에 이 사람이 바로 오래전에 그녀가 꿈에서 나타난 그 남자랑 똑같이 닮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꿈속에 나타난 사람)와 지금 이 사람이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이 사람은 안경을 안 썼다는 것이었지요.

 

“저랑 인연이 될 사람은 안경을 쓰고 있다던데요?”

“정말요? 나 원래 안경 썼었는데 일 년 반전에 라식 수술했어요. 허허….”

 

이럴 수가! 책속에서나 나올 얘기가 현실에서 일어나다니!! 아마도 정말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며칠 뒤에 남자는 한국으로 떠났고, 둘은 떨어져 있는 동안 매일 연락하면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참고 견디며 깊은 사랑을 더 많이 쌓아갔습니다.

 

대학교 강사였던 그녀는 학교가 방학을 하자마자 강사직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5월 3일, 서울의 한 웨딩홀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정말 누구나 원하던 행복한 5월의 신부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때 그 두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나와 내 남편입니다. 물론 지금도 깨알 쏟아지듯 결혼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결혼이고, 타 지역의 문화와 생활에 적응하기란 몹시 어려웠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견기기 힘든 것은 부모님이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아기 엄마가 되니 더욱 생각나는 친정 식구들

 

부모님 초청은 너무 번거롭고 복잡했습니다. 첫 몇 달은 힘들 때 마다 매번 엄마, 아빠 생각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결혼식에 부모님을 초청했는데 어머니 비자만 나와서 아버지는 참석하지도 못하셨습니다. 나는 결혼식 날 결국은 아빠를 볼 수 없게 되여 너무 슬펐습니다. 유일한 남동생도 그 날엔 없었습니다. 형제 초청은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이런 행복한 모습을 아버지와 동생에게 보여드릴 수 없다니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자주 대련 집에 갈 수 있었지만 산달이 가까워지고 출산을 하자 육아문제로 부모님을 찾아뵙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오래도록 힘든 스트레스로 남아서 출산 전후 극심한 우울증까지 오게 되었지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자 더욱 더 부모님이 그립다 못해 가슴이 저리도록 아파옵니다. 출산의 고통을 겪고 아기를 키워보니 이제야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남동생도 태어난 조카가 너무 보고 싶다고 합니다. 심지어 남동생은 메신저 대화명으로 <3.31일 나는 드디어 외삼촌이 되었다>라고 써 놓기도 했습니다.

 

 

 

“너 짱깨구나? 너희 나라로 가서 살아!”

결혼 몇 달 후에 나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려고 운전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학원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 따라 갑자기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지고 바람이 휘몰아쳤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학원차는 오지 않고, 좀 있다가 전화가 와서는 제가 어디 있는지 도저히 못 찾겠다고 알아서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길도 모르는 내가 찾으러 나섰고, 칼날같은 비바람을 제치고 드디어 학원차를 찾아 탈 수 있었습니다.

 

“아줌마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혼자서 알아서 찾아 올 것이지 왜 우릴 다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건 데?!!”

 

학원 차에 올라타는 순간, 안에 앉아있던 20대 초반 되는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가락질 하면서 제게 막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너무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던 저는, 화가 울컥 치밀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저도 많이 기다렸어요.”

 

그러자, 제 말이 서툴러서 인지 금방 알아차리고 하는 말 한마디가 또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너 짱깨구나? 너네 나라가서 살지 한국은 왜 왔는데? 너네 나라가서 살라고...”

 

그 말이 떨어지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막 뭐라고 소리 지르긴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잘 표현할 수가 없었기에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평생 살면서 이렇게 무시당하고 치욕적인 순간은 처음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오기 전에는 중국에서 존경받는 대학 강사로 TV에도 출연했었고, 남동생이랑 회사를 같이 경영했었던 유능한 CEO였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있는 말도 못하는 욕먹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바보 같아서 눈물만 났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당장 전화하여 저를 데리러 오라고 했고, 남편은 놀라서 헐레벌떡 달려와 울고 있는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한국이 너무 싫을 때, 사랑의 힘으로 견뎠습니다.

결국, 학원 원장이 그 사람보고 사과하라고 해서 이튿날에 사과를 받고 후에 면허증을 취득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그 사람은 왜 꼭 그렇게 남에게 상처를 줘야만 했는지! 그 당시 한국이 너무 싫어졌습니다. 당장 중국부모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지요. 하지만 이미 그 이를 선택한 이상 참아야만 했고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한 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를 여러 번 했고 힘든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불평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있기에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결혼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 부부는 길을 걸을 때면 여전히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닙니다. 주말에는 여느 연인들처럼 영화관에 영화도 보러도 갑니다. 평소에 내가 설거지하기 싫다고 투정부리면 설거지해주고 빨래까지 해서 널어주는 사람입니다. 내가 힘들 땐 위로해주고 부모가 그리워 눈물 흘릴 땐 말없이 눈물을 닦아주며 품에 꼭 안아주었습니다. 몸이 아플 땐 살며시 다가와 이마에 키스해주며 병원에 데려가 주기도 하고요. 언제나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는 남편의 사랑이 있기에 아무리 적응하기 힘든 상황속에서도 언제나 늘 그이에게 고마워하고 행복해하며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생에 이미 인연을 맺어 이생까지 연장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늘이 점지해주신 이 소중한 인연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진정 서로를 위하는 원앙새가 되어 남은 인생 서로만을 바라보면서 꼭 잡은 이 손 절대 놓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여느 날처럼 편하게 그 이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푹 빠져 듭니다. 우리의 사랑은 국경을 넘어섰지만 행복은 여전히 지속될 겁니다. 이생 마감하는 그 날까지 말이지요.^^

 

 

글 = ZHENG LAN JI (2011 재한외국인 생활체험 수기 공모 우수)

이미지 = 알트이미지

 

※ 이글은 법무부가 주최한 ‘2011 재한외국인 생활체험 수기 공모’에서

다문화가족구성원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ZHENG LAN JI’님의 글

‘하늘이 맺어준 고마운 인연’을 요약·정리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