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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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최초의 성별정정 사례는 하리수가 아니다?

법무부 블로그 2011. 7. 29. 17:00

 

요즘 한창 OCN 메디컬 범죄수사극 ‘신의퀴즈’에서 천재 의사 한진우로 분한 배우 류덕환! 지금이야 천재 의사로 명망을 떨치고 있지만, 그에게는 참으로 혼란스러운 질풍노도의 시기(?)를 연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오동구역이었는데요. 씨름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남학생이지만, 사실은 섹시한 마돈나를 동경하며 자신도 그처럼 섹시해지고 싶은 10대 청소년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지요.

 

 

 

▲천하장사 마돈나 ⓒ네이버 영화검색

 

 

외형은 남자지만 마음만은 여자인 사람, 외형은 여자지만 마음만은 남자인 사람. 그들은 대부분 청소년시절에 자신의 성정체성에 눈을 뜨게 되고,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성을 되찾기 위해 성전환수술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눈에 보이는 성만 바꾼다고 하여 세상에 잘 적응하여 살 수는 없습니다. 병원에 갈 때나, 은행에 갈 때, 부동산 계약을 할 때 등등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해야만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남을 수 있지요.

 

따라서 외형을 바꾼 사람들은 자연히 주민등록번호도 바꾸기를 희망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중 첫 번째 번호가 ‘1’인 사람이 남자처럼 생기고, ‘2’인 사람이 여자처럼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중 첫 번째 번호가 ‘1’인 사람이 여자처럼 보이고, ‘2’인 사람이 남자처럼 보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반응을 보면 당사자는 잠시 동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리수 ⓒ네이버 인물검색

 

 

2001년,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트랜스젠더가 연예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성전환자들은 조용히 음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굳이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면 그녀가 성전환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텐데, 그럼에도 당당히 자신이 성전환자임을 밝히고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로 인해 트랜스젠더가 수면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데뷔 당시 그녀의 호적상 이름은 ‘이경엽’이며 주민등록번호 역시 ‘1’로 시작하는 ‘남성’이었습니다. 그녀가 ‘여성’으로서 당당히 대한민국 땅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2002년이 되어서였는데요. 당시 재판부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뒤 실제 여성으로 살고 있는 하씨의 인간적 존엄성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해 신청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법적으로도 완벽한 ‘여성’이 되었고, 실명 역시 ‘이경엽’에서 ‘이경은’이라는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바꿀 수 있었지요.

 

성전환 수술 하리수씨 호적정정 허가결정 | 동아일보 2002. 12. 1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167544

 

 

 

그녀가 유명하기 때문에 성전환자의 호적정정이 이슈가 되긴 했지만, 사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호적상의 성별을 정정한 최초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호적상 성별을 정정한 다섯 번째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녀로 인해 호적상 성별정정 신청이 봇물 터지듯 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때까지도 이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명확히 없었기 때문에 법관의 성향에 따라 판결도 다르게 내려졌다고 합니다. “하리수는 됐는데, 나는 왜 안 되느냐!” 라고 따지는 사람도 여럿 있었을 것 같지요?^^;;

 

대법원이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과 개명을 최초로 허가한 것은 바로 2006년이 되어서입니다. 당시 한 50대의 남자(호적상 여자)가 자신의 성별을 정정하기 위한 신청을 냈는데, 대법원이 그의 삶 전체를 되돌아 본 결과 그의 성별 정정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 대법원은 이미 ‘사람의 성은 성염색체의 구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하여 내부 생식기와 외부 성기를 비롯한 신체의 외관은 물론이고 심리적·정신적인 성과 이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나 태도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참조)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중략)…

 

전환된 성을 그 사람의 성이라고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앞서 본 사람의 성에 대한 평가 기준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신체적으로 전환된 성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할 것이며, 이와 같은 성전환자(아래에서 말하는 성전환자는 이러한 성전환자를 뜻한다)는 출생시와는 달리 전환된 성이 법률적으로도 그 성전환자의 성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략)…

 

현행 호적법에는 출생시 호적에 기재된 성별란의 기재를 위와 같이 전환된 성에 따라 수정하기 위한 절차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진정한 신분관계가 호적에 기재되어야 한다는 호적의 기본원칙과 아울러 아래에서 보는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위와 같이 성전환자에 해당함이 명백한 사람에 대하여는 호적정정에 관한 호적법 제120조의 절차에 따라 호적의 성별란 기재의 성을 전환된 성에 부합하도록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함이 상당하다. …… “

 

[대법원 2006.6.22. 자 2004스42]

판례 전체보기 (클릭) http://j.mp/nkivzO 

 

 

판례 본문 내용 중에서는 “호적법이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란 기재를 수정하는 절차규정을 두지 않은 이유는 입법자가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입법 당시에는 미처 그 가능성과 필요성을 상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헌법이나 관련 법률을 만들 당시에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성별을 바꾼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며, 인위적으로 성별을 바꾸는 문제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문제들 중 하나라는 것을 이해한 내용인 듯합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집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인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게 헌법 10조의 내용이지요. 기존에는 판사의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 되던 호적상의 성별정정 문제를, 대법원이 나서서 공개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우리 사회가 소수의 기본적인 존엄과 가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 = 법무부

천하장사 마돈나 = 네이버 영화검색

하리수 사진 = 네이버 인물검색

이미지 = 알트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