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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기 이야기/매체 속 법

장희빈이 되살아나면 살인미수일까?

법무부 블로그 2011. 3. 8. 08:00

그녀는 정말 대한민국 대표 악녀(?)일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표적인 악녀(?)라고 하면 장희빈을 들 수 있는데요. (최근에는 장희빈도 정쟁의 피해자라는 해석도 있기는 합니다만^-^) 장희빈의 본명은 장옥정으로 중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가 여종이었기 때문에 천인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장옥정은 궁에 들어가 대비전의 나인이 되었다가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후궁이 되었는데요. 숙종은 오랜 동안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장희빈과의 사이에서 왕자 윤(훗날 경종)을 낳았고 윤이 원자로 책봉되자 장희빈도 왕비가 되었습니다. 장희빈은 남인과 서인 사이의 권력 다툼 속에 인현왕후와 대립하게 되는데요. 숙종은 처음에 장희빈을 가까이 두고 인현왕후를 폐위시켰다가 서인들이 정권을 잡게 되자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시켰습니다. 그 후 장희빈은 숙종으로부터 사약을 받아 천인 신분으로 왕위에 오른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치게 되지요.

 

이런 파란만장한 생애를 산 때문인지 장희빈과 관련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영화와 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미숙(1981년, MBC), 정선경(1995년, SBS), 김혜수(2002년, KBS), 이소연(2010년, MBC) 등 당대의 인기 여배우들이 장희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는데요. 그 중 어느 드라마에서건 빼놓지 않고 나오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장희빈이 자신의 거처 부근에 신당을 차려 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짚으로 만든 인형을 이용해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장희빈(김혜수 분) ⓒ KBS, 장희빈, 2002

 

초상화를 그려놓고 화살을 쏘거나 인형을 만들어놓고 바늘로 찌르는 장면이 그것인데요.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인현왕후는 몸이 아프다고 하고, 그 때문인지 인현황후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게 됩니다. 만일 장희빈이 지금에 태어나 같은 행위를 한다면 과연 살인죄나 살인미수죄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요?

 

해치려는 생각에 비해 방법이 부적절

여기에서 의문이 드는 점 하나! 바로 ‘초상화를 그려놓고 화살을 쏘거나 인형을 만들어놓고 바늘로 찌르면 사람이 아프거나 죽느냐?’ 하는 것이지요. 요즘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비슷한 장면을 삽입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런다고 사람이 죽는다고 믿고 계신 분은 설마 없으시겠죠? ^-^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한 장희빈의 행동은 법률적으로 사람을 살해하려는 고의는 아주 심하게 갖고 있지만, 그 수단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법률에서는 ‘불능범(不能犯)’이라고 하는데요. 행위자에게 범죄의사가 있고 외관상 실행의 착수라고 볼 수 있는 행위가 있지만 행위의 성질상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즉, 아무리 고의가 있더라도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없는 행위는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좀 더 재미있는 예를 들면, 설탕을 많이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을 가진 부인이 남편이 죽도록 미워 모든 음식마다 설탕을 넣어 남편에게 주는 것과 같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설탕을 너무 많이 넘어 당뇨나 다른 병으로 사망할 수는 있지만, 설탕 그 자체에는 위험성이 없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해치려는 의도와 행위가 분명하다면 명백한 죄!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야쿠르트 병에 농약을 넣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사실은 치사량이 2그램인데 0.5그램이 치사량이라고 생각하여 1그램만 넣은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아무리 치사량에 미달한 양을 넣어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농약 자체가 가지는 위험성 때문에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는데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텐데요. 형법에도 제27조에서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단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이 경우는 치사량이 현저히 미달한다고 하더라도 농약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 때문에 살인미수로 처벌이 된다는 것이지요.

 

 

 

 

▲장희빈의 최후 ⓒ KBS, 장희빈, 2002

 

장희빈이 살았던 시대에는 칠거지악으로 여성의 투기가 전혀 용납이 되지 않고, 미신에 대한 믿음도 강해 장희빈의 행위 자체가 죄가 된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아 장희빈을 살인이나 살인미수죄로 처벌한다면……. 당시 장희빈을 처벌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지네요. ^-^

 

글 = 법무부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드라마 장희빈 캡쳐 = KBS, 장희빈,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