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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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장학금 지원한 가족, 알고 보니...

법무부 블로그 2010. 8. 31. 08:00

10년 전, 건장한 체구에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무척이나 엄하고 강직하며 투철한 국가관과 교정에 대한 신념으로 35년 동안 교정행정을 위해 헌신하던 교도소장님이 계셨습니다. 바로 고(故)배병도 소장님인데요. 청송교도소장 재임 당시 갑작스레 세상과 이별을 해야 했지만, 아직도 그의 영혼은 교정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습니다.

 

 

  

 

 

 

 

 

과로로 인한 급성간염으로 세상을 등진 남편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건강했던 남편이 그렇게 갑작스레 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청송교도소 배병도 전 소장의 아내 김양순 여사는 1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조회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 배소장에게 이상이 찾아온 것은 그날 오후. 갑작스런 몸의 이상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숨을 이어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우리나라는 IMF사태와 정권교체 등으로 인해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위기를 넘어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는 많은 변혁이 요구되기도 했습니다. 배소장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교정행정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업무에 매달리다가 과로로 인한 급성 간염이 발병하면서 갑작스럽게 세상과 이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배소장은 1963년 안동 교도소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이듬해 김여사와 맞선본 지 한 달 만에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1년 동안 의성의 처가에 살면서 안동까지 출퇴근을 하며 어여쁜 아내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답니다.

 

김여사는 “당시 9급 교도의 월급이 1,800원 정도로 생활은 항상 빠듯했지만, 자상한 남편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맛보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고(故)배병도 소장님과 아내, 세 아들의 가족사진

 

부부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활이 더욱 빠듯해지자 김여사는 배소장에게 “왜 하필이면 교도관이 되었냐”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배소장은 “교정 공무원은 숭고한 직업이니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김여사는 남편에게 경제적인 요구를 하기 보다는 주어진 여건 내에서 알뜰살뜰 근검절약하며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공직생활 35년 동안 22개의 교도소에서 근무했던 배소장은 자녀교육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김여사는 손수 밥하고 빨래하는 남편의 외롭고 힘들었을 직장생활을 떠올리며 “그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배소장은 생전에 퇴직 이후에는 교정 기관을 거쳐 간 뒤 새사람으로 거듭난 수형자들의 이야기와 후배 교정인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글을 모아 책으로 내고자 자료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김여사는 “어느 날 황망하게 세상과 등지면서 물거품이 될 뻔 했던 아버지의 꿈을 장남이 잇기 위해 틈틈이 자료를 모으는 중”이라고 귀띔했습니다.

 

“큰 아들이 먼 이국땅에 있으면서도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생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말씀들을 하셨는지 자꾸 물으면서 하나 하나 기록으로 남기고 있어요. 교정공무원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에 충성한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책을 쓴다네요.”

 

장남 중섭씨는 행정고시 37회로 공직에 투신해 미국 캔자스 주립대 로스쿨로 국비유학을 떠나 3년 동안 로스쿨 과정과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기도 했으며,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서기관으로서 스위스 제네바에서 ‘UN사무처 및 국제기구대표부’ 주재관으로 근무중입니다.

 

 

 

 

 

항상 교정만 생각하고 헌신했던 아버지

 

해외근무중인 장남을 대신해 인터뷰에 응한 둘째 아들 오섭씨는 “아버지 하면 지금도 무서운 아버지로 기억된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무서운 아버지, 엄하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와 근무하셨던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아버지는 무척이나 엄하시고 강직하신 분입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죠.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고, 수형자를 바른 길로 이끄는 일을 하신다며 저희에게도 항상 바른 몸가짐과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셨어요.

 

교육을 받고 공부하는 이유도 그 일환이지 개인의 부와 명예만을 위해 공부할 거면 당장 그만 두라고 하셨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자나 깨나 교정에 대해 생각하고 헌신했던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작으나마 교정공무원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10년 동안 교정공무원 자녀에게 학비 지원

 

아버지의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가슴에 새겼던 자식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교정공무원을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하여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두 명의 교정공무원 자녀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형 중섭씨의 뒤를 이어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는 오섭씨는 더 많은 교정공무원의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교정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공무로 인한 순직이 인정되어 국가 유공자로 선정된 고(故)배병도 소장이 35년 동안 교정을 위해 헌신해 왔던 발자취들은 그의 영면과 더불어 멈춰서지 않고 지금도 그의 가족들에 의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계속해서 새겨지고 있습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교정공무원을 위해 훈훈한 정성을 쏟는 가족들의 뜻 깊은 행동에 모든 교정인들은 감동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이 글은 [월간교정 vol.395]에 실린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일러스트 = 아이클릭아트

사진 = 월간교정 vol.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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