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권ㅇㅇ | 안동교도소
얼마 전, 구내 청소를 맡은 동료가 뜨거운 한 여름의 햇살을 밀짚모자로 간신히 막아내며 잡초를 뽑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윗옷은 땀범벅이 되어 살갗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얼굴의 땀은 턱 끝으로 모여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동료의 움직임이 무척 힘겨워 보이더군요. 그러더니 잠시 쉴 모양인지 그늘진 맨 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괜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고귀해 보였습니다.
밀짚모자, 고무신, 걷어 올린 바지, 검게 탄 얼굴, 그리고 흥건한 땀과 비릿한 쉰 냄새...... 문득, 저희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과거에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셨습니다. 그러다 사업에 실패하고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해 막노동판을 전전하게 되셨지요. 막노동판에서도 크게 가진 기술이 없으셔서 아버지는 버팀대로 쓰는 통나무며 쇠기둥을 옮기거나 벽돌, 모래를 질통에 담아 등에 지고 나르는 잡부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건 서너 달에 한 번쯤이었는데, 그때마다 검은색 낡은 가방을 메고 오셨습니다. 그 가방에는 땀에 절어 쉰내가 풀풀 풍기는 옷가지들과 면도기, 칫솔, 치약, 파스, 상비약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어깨와 허리에는 항상 파스가 붙어 있었지요. 가끔 파스독이 올라 가려워하시기도 하셨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얼음찜질을 해주셨습니다. 저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은 발바닥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발바닥에는 검은 자국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그게 다 못에 찔린 상처 자국이라고 하시더군요.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못에 찔리기도 하시는데, 그때마다 변변한 치료한번 받지 못하시고 발바닥을 망치로 두드려 피를 빼내고 곧장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상처는 곪다 못 해 죽어버려 검게 변했고, 아버지는 그 두 발로 또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손톱 역시 몇 군데가 검게 죽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고생을 얼마간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공장에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공장이 콘돔을 만드는 공장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동네아주머니들에게 콘돔을 팔아 반찬거리 등 생활비를 충당할 요량으로 집에 몇 상자의 콘돔을 가져다 놓곤 하셨는데, 콘돔의 정확한 사용처를 몰랐던 저와 친구들은 그것을 풍선처럼 불며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친구들이 집에 가져가서 놀겠다며 몇 개 집어갔는데, 다음 날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화가 나셔서 학교로 항의 전화를 하셨습니다. 선생님께 영문도 모르고 꾸중을 들었던 저는 어머니가 마냥 창피하기만 하고, 부끄럽기만 하고, 밉기만 했습니다. 그때의 창피함과 억울함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세월이 지났을까요. 억척스럽게 살아오셨던 저희 부모님께서 드디어 20년만에 고향땅 구석진 자리에 작은 논과 밭을 마련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에 땅이 생기다니......’ 저는 그걸로 우리의 가난도, 고생도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은 저희 부모님께 더 많은 수고와 땀을 요구했습니다. 부모님은 밭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셨는데, 일이 정말 끝도 없이 밀려 들었습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저와 형제들도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처럼 가난이 싫고 억척스러움이 싫었던 때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가난을 물려받아 평생을 땀 흘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습니다. 소금에 절인 고등어처럼 부모님은 항상 땀에 절어 계셨고,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몸부림을 쳤습니다.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땀 냄새는 제게는 그저 가난의 냄새일 뿐이었습니다.
성년이 된 후 저는 땀 흘리는 일을 피해 다녔습니다. 땀 냄새를 풍기면 내 삶이 가난하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노력, 열정, 정성...... 그런 건 제 삶에 없었습니다. 땀의 진정한 가치라는 게 무엇인지 저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지 않자, 세상은 제게 수형생활이라는 고난을 주더군요. 부모님의 삶이 바닥의 삶이라 생각했는데, 저는 그보다 더 바닥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부모님이 매일 매일 흘렸던 그 땀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살면 언젠가 그 대가가 돌아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땀의 결실이라는 것은 너무 느려터지기만 하다고 불평했습니다. 땀의 결실이니, 노력이니, 열정이니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땀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값진 결실을 주더군요.
부모님은 20년 동안 흘린 땀으로 소중한 터전을 마련하셨고, 삶에 만족해 하셨고, 행복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능사자격증이라는 목표를 향해 땀 흘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과거와 많이 달라진 제 모습을 보며 저는 땀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땀은 분명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로 보답을 하더군요. 그동안 욕심과 욕망 때문에 보지 못했을 뿐 땀은 땀 흘리는 자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잡초를 뽑는 일일지라도 땀 흘리며 일하는 동료의 모습에 숙연함을 느꼈던 것도 이제는 땀의 가치를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요즘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희망차기까지 합니다. 언젠가 땀은 제가 흘린 만큼,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은 교정본부에서 재소자들의 글을 모아 만든 책
‘새길(통권 410호)’에 실린 글입니다.
자신의 죄목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재소자들의 마음을 존중해
해당 재소자의 죄목을 밝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여기서 잠깐!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람들 중에 약 1/4은 3년 내에 또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복역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연평균 수용자 수가 4만 8천여명에 달합니다. 이 중 1만 500여명(22.7%)이 3년 내에 재복역하는 인원입니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아직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재범방지 사업’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예방 사업’보다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수형자들의 건강한 사회복귀를 위해 취업 알선·기술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형자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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