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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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범죄자가 된 건 부모님 이혼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법무부 블로그 2010. 7. 12. 14:20

원망이 아닌 희망으로

김00 / 부산교도소

 

 

이제 곧 장마철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며칠 전엔 밤새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더군요. 그 비를 보면서 문득 ‘걷잡을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하늘을 보면서 이런 상황을 보고 ‘걷잡을 수 없다’고 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삶도 두어 해 전부터 걷잡을 수 없게 변한 것 같습니다. 그 시초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최초의 기억이 일곱 살 때더군요. 그때 부모님께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하셨습니다. 이 무렵 장맛비처럼 다툼은 거의 거르는 날이 없었습니다.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만, 제 눈에 부모님의 싸움은 위태롭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저희 부모님은 끝내 이혼을 하고 마셨습니다.

 

저는 홀로 남겨져 아버지 쪽으로도, 어머니 쪽으로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작은 아버지 댁으로 보내졌지요. 할머니 손을 잡고 작은 아버지 댁으로 들어서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람도 낯설고, 집도 낯설고, 그때는 숨 쉬는 공기마저 낯설었습니다. 그 외로움과 슬픔은 끝내 원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망은 제 삶 전체를 지배하고 말았지요.

 

 

어릴 때는 그것이 원망 때문인 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더군요. 아무 말 없이 구석에 있는 것도, 갑자기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도 모두 원망이 그 바탕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른들과 사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 역시 제게는 힘겨웠습니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저를 사촌들과 다르게 대하시거나 사촌들이 제게 뭐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격지심이었겠지만, 그저 제가 모든 상황에서 어른들과 사촌들의 입장을 먼저 신경 쓰고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집에는 정을 붙일 수 없었고, 저는 밖으로만 돌았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오락실을 기웃거렸고, 학교를 가도 공부에는 맛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친구들과 어울려 밖으로 돌아다니는데 정신이 팔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집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몸집이 커지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더 크게 화를 내고 더 자주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평소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어도 어른스럽다거나 의젓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곤 했는데, 한번 화가 나면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은 핑계를 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제 마음과 정신이 ‘원망’이라는 삐뚤어진 감정에 병들어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교도소에 처음 왔을 때도 저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우습게도 교도소에서 틀어줬던 TV프로그램 때문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을 보여주는 휴먼 다큐멘터리인데, 그 아이들을 통해서 저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틀어주는 방송들은 모두 재미없고 따분한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심코 보던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는 조금씩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TV 속 아이들이 하는 말이 어린 시절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고, 그 때 제가 왜 분노하고 화낼 수밖에 없었는지, 내 마음 어디가 병들어 있었는지 제 3자의 입장에서 TV를 시청하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병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제 힘으로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을 저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요즘은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화내면 나만 손해다. 나만 병든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차츰 익숙해졌으며, 2년이 흐른 지금 저는 적잖이 유순해졌습니다.

 

그리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요즘은 제 인생의 목표까지 정했습니다. 저는 현재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작업장도 구외작업장(교도관의 감시 아래 교도소 밖 공장에서 일하는 것. 모범수를 대상으로 하며, 추후 사회복귀에 도움을 줄 수 있음)으로 옮겼습니다. 일은 훨씬 고되고 쉴 틈도 줄었지만, 출소 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뚜렷한 목표 없이 교도소에서 딸 수 있는 자격증만 여러 가지 획득했는데, 지금은 분명한 한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바로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목표 아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요즘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잠을 잡니다.

 

물론 사회복지사가 되는 길이 쉽지도 않을 것이고, 막상 된다고 해도 제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되어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면 ‘원망하고 미워하지 말라, 원망은 스스로의 병을 부른다, 그 힘으로 자기애를 키워라’ 그렇게 제 경험에 비추어 말해 주고 싶습니다. 별것 아닌 듯해도 저는 왠지 그게 저의 소명인 것만 같습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꾸는 이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이 글은 교정본부에서 재소자들의 글을 모아 만든 책

‘새길(통권 409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