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을 요하는 입시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어떤 죄책이 성립할까요?
먼저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대학원 신입생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해당 대학원 교수 A씨가 출제 교수들로부터 대학원 신입생 전형 시험문제를 받아 시험 응시자 B, C씨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B와 C씨는 미리 알게 된 시험문제에 대한 답안을 쪽지에 작성한 다음, 이를 답안지에 그대로 베껴 썼고,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시험감독관에게 답안지를 제출하였는데요, 이때 시험문제를 미리 누설한 A씨, 그리고 이를 토대로 미리 답안지를 작성하고 제출한 B, C씨에게 어떤 죄책이 성립할까요?
A씨를 비롯한 B와 C씨에게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합니다. 이들은 어떤 업무를 방해한 것인 걸까요? 대법원 판결(91도2211)에 의하면 이들은 위계로써 입시감독업무를 방해한 것인데요, 오늘은 업무방해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업무방해죄에서 보호하는 ‘업무’란 무엇인지, 어떻게 성립하는 죄책인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업무방해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조항부터 살펴볼까요?
형법
제314조(업무방해) ①제313조의 방법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컴퓨터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314조에서 업무방해죄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제1항의 업무방해죄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의 방법으로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사례에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였죠, 여기서 위계(爲計)란 사람을 착오에 빠지게 하거나 상대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 상태를 이용하여 속이거나 유혹하는 것을 뜻합니다. 부정행위를 한 사실을 모르는 시험 감독관을 속여 답안지를 제출한 것으로 시험감독업무를 방해한 것이지요.
한편, 제2항은 컴퓨터 등을 이용한 업무방해죄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2항의 업무방해죄를 대개 ‘컴퓨터등 업무방해죄’라고 하는데요, 컴퓨터등 업무방해죄는 컴퓨터와 같은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제1항의 업무방해죄는 ‘사람의 업무’를 객체로 하는 반면, 제2항은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와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객체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서 ‘정보처리장치’란 자동으로 계산이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전자장치를 뜻합니다. 즉, 정보의 보존, 검색 등 정보처리능력이 있어야 하므로 휴대용 계산기나 자동판매기, 자동개찰기 등은 정보처리장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업무방해죄에서 보호하는 ‘업무’란?
방금 살펴본 법 조항에 따르면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고 있는데요, 모든 ‘업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업무방해죄에서 ‘업무’란 사회생활상의 지위로서 계속적, 반복적으로 행하는 사무나 사업을 말합니다. 계속적인 업무라고 해서 반드시 여러 번 행한 업무를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계속할 의사가 인정된다면, 처음 시작한 일도 업무방해죄에서 보호하는 ‘업무’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활동의 일종이어야 하므로 단순히 일상생활에 해당하는 사무는 업무방해죄에서 보호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례를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A씨는 ○○구청장의 조경공사 촉구지시를 받고 임대 건물 앞에서 1회 조경공사를 하였습니다. 이때 B씨가 공사 중인 인부들 앞을 가로막고 작업장의 전구를 소등하고, 심한 욕설을 하는 등 조경공사 작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였는데요, 이때 B와 C씨에게 업무방해죄가 성립할까요?
대법원 판결(92도2929)에 의하면 B와 C씨에게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A씨가 행한 조경공사가 업무방해죄에서 보호하는 ‘업무’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건물 임대인이 구청장의 조경공사 촉구지시에 따라 임대 건물 앞에서 1회적인 조경공사를 한 것은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계속적으로 종사한 사무나 사업이라 할 수 없고, 주된 업무인 건물임대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계속적인 부수적 업무라고도 볼 수 없다고 보아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에서 보호하는 업무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1회적인 사무에 지나지 않는 업무를 방해할 경우엔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직무상 수행하는 공무를 방해하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할까?
공무원이 직무상 수행하는 공무는 업무방해죄에서의 업무에 해당할까요? 답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공무는 업무방해죄에서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공무에 관해서는 별도로 공무집행방해죄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관련 법 조항부터 살펴봅시다.
형법
제136조(공무집행방해) ①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37조(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와 같이 형법 제8장에선 별도로 ‘공무방해에 관한 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와는 별도로 규정한 공무집행방해죄에서 ‘직무의 집행’이란 널리 공무원이 직무상 취급할 수 있는 사무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대법 2009도4166). 즉 앞에서 살펴본 업무방해죄에서 보호하고 있는 ‘업무’와 공무집행방해죄에서의 ‘직무집행’에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공무집행방해죄는 ‘폭행 또는 협박’에 이른 경우를 요건으로 하고 있고, 업무방해죄와 달리 위력에 의한 경우는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보호법익과 보호 대상, 범죄의 구성요건이 상이하다는 점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적 업무와 공무를 구별하여 공무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업무방해죄에 관한 사례와 함께 업무방해죄 성립요건과 ‘업무’의 범위, 공무집행방해죄와의 차이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업무방해죄에서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란 사회생활상의 지위로서 계속적, 반복적으로 행하는 사무를 뜻한다는 점, 공무원이 직무상 수행한 공무에 관해서는 업무방해죄가 아닌 공무집행방해죄가 별도의 구성요건 하에 규정되어 있다는 점을 법률 상식으로 알고 가면 좋겠습니다.
글= 제16기 법무부 국민기자단 이도은(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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