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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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병원에서 바뀐 아이, 되찾아야 할까?

법무부 블로그 2011. 7. 23. 19:00

 

여러분은 요즘 어떤 드라마를 보시나요? 저는 주말마다 MBC에서 방영하는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부모가 뒤바뀐 채 서로의 운명을 바꿔 살아온 두 여성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주요 핵심 내용이죠.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 imbc

 

 

출판사 사장의 딸로 살아온 한정원(김현주 분)과 식당집 딸로 살아온 황금란(이유리 분)은 출생 직후 산부인과에서 뒤바뀌게 됩니다. 각자의 가정환경에 적응하고 살아오던 두 사람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자신들의 '뒤바뀐 운명' 에 대해서 알게 되는데요. 두 가정은 경제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어서 두 당사자와 각 가정의 혼란은 극에 달합니다.

 

가난하고 힘들게 자랐던 황금란은 기존의 식구들과 냉정하게 이별을 선택하고, 새로운 가정에 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반면 한정원은 기존의 가족들과도 끈끈한 정을 이어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서로의 인생을 바꿔 살아온 두 여인의 이야기가 종영을 앞두고 어떤 결말로 끝날지 기대가 큽니다.

 

 

 

현실에서도 아이가 뒤바뀐다면?

 

 

그런데 만약 드라마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이러한 일들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인이 되어서 결국 자신들의 가족이 뒤바뀐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 뒤바뀐 운명을 바로잡아야 할까요? 아니면 이미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가족들과의 관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채로 살아야 할까요?

 

지난 2010년 1월, SBS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정말 기막힌 사연이 방영되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인 박씨는 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살피다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활기록부에 적힌 딸의 혈액형은 A형. 하지만 박씨와 남편은 모두 B형이었으므로 부부 사이에서는 결코 A형의 자식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친자확인 검사를 해 본 결과 박씨의 딸은 친자식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16년이라는 세월동안 박씨의 딸은 ‘뒤바뀐 운명’ 을 지니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씨 부부는 당시 아이를 출산했던 산부인과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했고, 동시에 출생 당시 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기록을 공개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병원 측에서는 신생아를 주의 깊게 잘 살펴 건강한 상태로 친 부모와 함께 각자의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소홀히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박씨 부부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므로, 부부의 정신적 충격에 대해 7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 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박씨 부부가 청구한 기록 공개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요. "병원의 진료기록 등은 개인의 사생활 정보에 관련한 것이어서 이 역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당시의 신생아와 그 부모들의 기록에 대한 정보의 공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친자식을 찾기 위한 부모의 행동이 의료법에 위반된다고?

의료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의료법

제19조(비밀 누설 금지) 의료인은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조산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

 

제21조(기록 열람 등) ①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박씨 부부가 친자식을 찾기 위해서라면 정보공개가 당연히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 같지만, 그렇게 된다면 의사로서 다른 환자의 진료기록을 공개하는 일이 되고, 위에 명시된 의료법에도 저촉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법원에서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박씨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인데요. 박씨 부부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정보 공개가 가져올 큰 파장을 생각하면 섣불리 정보를 공개할 수도 없는 일이라 마음이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소송이 끝나고, 결국 박씨는 SBS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친딸 찾기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약 4개월 동안 전국을 뒤져 자신의 ‘친 딸’을 찾아냈지만, 박씨 부부와 상대방 부부는 서로의 친 자식을 찾았다는 감격 보다는 아이들이 받을 큰 상처가 두려웠습니다. 결국 두 부모는 아이를 바꾸지 않기로 결정했고, 18년 동안 길러왔던 ‘기른 딸’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들 부모의 결론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선택한 가장 현명한 결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보게 되는군요.

 

 

아이 찾기 위해 정보공개 허락한 사례도 있어

조사를 해 보니, 박씨의 사건과 매우 흡사하지만, 법원이 친딸을 찾게 해주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인 판례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건에서도 1심 판결에서는 정보공개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던 부모의 항소로 인해 고등법원에서 제 2심이 열리게 되었고, 법원은 산부인과 측에 당시의 분만기록을 법원에 비공개로 제출하도록 하였습니다. 비공개로 기록을 넘겨받은 법원은 자료를 조사하여 그 당시 병원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단 2명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친 딸을 찾아주었다고 하는군요.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의료법과, 국민의 알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법원이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준 사례인 것 같아 정말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자식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 중에서 자신의 자식을 찾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도 있듯이, 세상에서 가장 끊어지기 어려운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니 말이지요. 요즘에는 출산 직후 아기와 산모에게 즉시 인식표를 붙여서 헷갈리지 않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런 당황스러운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뒤늦게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도 충격이 크겠지만, 친자식을 찾겠다고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기른 자식과 친자식이 받을 충격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운명이 뒤바뀐 채 살아온 가족의 애틋함을 보면서 ‘하늘이 맺어준 가족’이라는 소중한 인연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드라마 반짝반짝빛나는 = mbc공식홈페이지

이미지 = 알트이미지

취재 = 원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