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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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눈물과 그늘이 있는 사람이 돼라

법무부 블로그 2011. 7. 7. 14:00

그렇게 원했던 유학이었건만!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은 어려서부터 나의 꿈이었다. 한국에 갈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마치 날개라도 달고 훨훨 날아갈 기분이었고 신나기만 했다. 그러나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여러 가지 난관들에 부딪치게

되었다.

 

 

 

우선 학습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

수업내용을 거의 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들은 부분도 요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한국어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것은 전공인 고전문학에 대한 지식이 짧고, 턱없이 부족함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목표마저 명확치 않았다. 추구할 목표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마저도 명확치 않았던 것이다.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음을 알면서도 어디서부터 착수해야 하고,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부터 공을 들여야 할지 몰라서 앞으로 갈 길이 안 보였다. 한국에 온 후에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기분이 바닥일 때가 많았다. 답답함과 절망 때문에 혼자 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업’ 생각만 나면 겁부터 나고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감과 초조함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두 번째는 견딜 수 없는 향수와 외로움이었다.  

나는 여태껏 온실의 꽃과 같이 부모님의 보호 아래서 자랐다. 지금처럼 부모님을 멀리 떠난 것은 생전 처음이다. 하여 이번 유학은 성격이 좀 내성적이고 독립성이 부족한 나에게 아주 큰 도전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집이 그립기 시작했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옆자리 아줌마가 집 생각이 안 나느냐고 하는 말에 갑자기 눈시울이 젖어들면서 말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생전 처음 타국으로 홀로 유학 온 아이의 서러움을 그 어느 누가 알겠는가? 고국에서는 늘 내 옆에 친구가 한두 명 있었는데 여기에 와서는 항상 혼자 공부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생활할 수밖에 없어서 매우 외로웠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외로움까지 겹쳐서, 혼자 있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매우 괴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 생활은 정말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고통을 들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단지 몰래 우는 것뿐이었다.

 

골치 아픈 또 하나의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한국의 물가에 비하자면 내가 가진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굶어죽고 싶지 않으면 돈을 아끼고 또 아껴서 써야 했다. 외식은 거의 못하고 항상 마트에 가서 할인야채를 사서 밥을 해 먹었다. 이렇게 해도 수입 없이는 오래 못 견딘다는 생각에 불안해졌고, 이런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국에 온 뒤로 내 머리에는 계산기 하나가 심어져있다. 가끔 친구랑 외식을 하거나 쇼핑할 때면 머릿속의 계산기는 부지런히 계산을 해야 했다. 이 순두부찌개는 중국 화폐 얼마에 해당하는지, 이 옷을 사면 내 통장에 돈이 얼마 남게 되는지.

 

우울함에 갇힌 나를 구원했던 단 1분의 통화

이런 생활이 이어지자 언젠가부터 나는 많이 우울해졌다. 그래서 슬프거나 집이 너무 그리울 때면 스스로를 방에 가두곤 했다. 불을 끄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는, 이 창문 없는 고시원의 좁은 방에서였다. 나는 마치 누에가 된 기분이었다. 고치를 하나 만들어 스스로를 그 안에 옭아 넣었다.

 

이렇게 4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이 힘들어서 한국에 온 것이 후회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때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지냈냐고. 요즘 얼굴이 통 안 보여서 걱정된다고.

그랬다. 이 1분도 안 된 통화에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제서야 내가 지금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우울증 테스트를 해 봤는데 가벼운 우울증 상태라는 결과였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제발 정신 차리자’고 주방에 가서 냉수 한 잔을 잔뜩 마셨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서 지난 시간에 대하여 반성하기 시작했다. 반성 끝에 이 모든 고생이 다 이유 없이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다 내가 여러모로 실력이 부족하고 원만한 성격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학창 시절에 엉터리로 공부한 것, 남에게 의지하고 독립적이지 못했던 것. 이런 문제점이 오랜 시간 숨어 있다가 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지금의 괴로움은 나한테 문제점을 일찍 인식하게 하였고 더 늦기 전에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어려움에 맞서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전공 수업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한국어를 잘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한국어를 죽도록 공부했다. 희미한 발음을 고치기 위하여 연필을 물고 연습했고, 도서관에서 빌린 교과서를 모조리 외웠다. 수업할 땐 녹음을 하여 반복해서 들으면서 필기를 했다. 수업의 중심 내용을 잡지 못해 20번이나 계속 들은 적도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남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내가 진정으로 관심이 가는 분야와 내 적성을 감안하여 교수님을 찾아뵙고, 드디어 공부할 구체적인 방향을 정했다.

 

어려운 새 출발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됐을 땐 집에 대한 그리움에 당장이라고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집에 가면 생활이 아주 안일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간힘을 쓰고 겨우 가라앉힌 마음인데,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까 봐 걱정돼서 한국에 남기로 했다. 이 모든 게 남들에겐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뼈를 깎는 아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을 접하고 열심히 사는 과정에서 내가 행운아라는 걸 알게 됐다. 몸도 건강하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 걸 보면 분명히 축복받은 사람이다. 이 세상엔 눈이 있어도 못 보고 귀가 있어도 못 듣고 입이 있어도 말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인가?

 

그런데 나에겐 행복한 가정이 있다. 나를 사랑하고 아낌없이 지지하는 부모님이 있다. 이는 나의 영원한 쉼터이자 난관을 극복하는 힘이다. 이 두 가지만으로 나는 무한히 감사한다. 고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대학교까지 순조롭게 졸업하고 이제 전통도 깊고 교수진도 훌륭한 성균관대학교에서 대학원 교육을 받고 있으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삶이란 밝음도 있고 어두움도 있기 마련이다. 예전엔 어두운 면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밝은 면엔 눈을 감았다. 행복은 마음먹기와 생활태도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똑같은 생활환경인데도 가지고 있는 생활관이 낙관적이냐 비관적이냐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다르다.

 

고시원에 사는 것이 힘들다고? 

꼭 그렇지 만은 않다. 한 번은 교수님을 찾아뵈러 갔는데 교수님께서 나한테 물으셨다.

 

“자네, 어디에 살고 있나? 기숙사?”

“아닙니다, 교수님. 저는 학교 근처에 위치한 고시원에 살고 있습니다.”

“고시원에 살고 있어? 힘들겠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교수님. 신경쓸 일이 없어서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월세만 내면 추가 비용이 없는데다가 밥과 반찬이 제공돼서 저렴하구요. 저와 같이 가난한 학생이 살기에는 ‘딱’이에요.”

“방이 안 좁아? 되게 좁다는데.”

“네, 방이 좀 좁긴 좁죠. 그래도 잠만 자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혼자서 생활할 수 있는 1인실에 사는 건 이번이 처음인걸요.”

“허허. 오랜만에 기분 좋은 말을 듣는군. 밝은 모습이 참 보기 좋구나. 외국에 와서 공부하려면 누구나 다 이런 고생을 하니까 힘 빠지지 말고 보람있는 유학생활을 하게”

 

한국어가 서투르다고 해서 겁을 내고 대화를 피하면 한국어 실력은 계속 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예전보다 더 못하게 된다. ‘비록 대화가 서투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는 것이 겁을 먹고 안 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 ‘발음이 이상해도 괜찮으니까 용기를 내어 계속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남의 눈을 무시하고 늘 당당하고 씩씩하게 한국어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가씨, 혹시 중국에서 오셨나요? 발음이 약간......”

내가 속상할까봐 걱정돼서 그런지 이 분은 말을 하다가 도중에 끊었다.

 

“예, 맞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왔는데요. 발음이 되게 중국스럽죠? 그래서 저는 자기소개를 할 때 중국에서 왔다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입을 열자마자 다들 알게 되거든요. 이보다 더 편한 것이 없겠죠?”

“정말 재미있는 아가씨네요. 그럼 늘 파이팅!”

 

돈이란 너무 많으면 고민거리가 될 수도 있고 없으면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돈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돈에 구애받는 것은 바람직한 인생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돈이 없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궁핍을 적극적으로 보는 자세가 갖춰졌다.

통장이 거의 바닥이고 밥 먹을 돈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고시원에서 밥과 김치를 제공하였다. 그래서 하루 세 끼니를 다 밥과 김치만으로 때운 적도 많았다. 나는 이것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는 크게 놀라 나를 가엾게 여겼다.

 

“야, 너 미친 건 아니야? 어떻게 김치만 먹고 살아? 돈 없으면 나한테 말해야지? 빌려 줄 테니까.”

“빌려 준다구? 싫어. 빌리면 갚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안 갚아도 된다면 몰라도.......”

“미친 놈. 가자! 내가 맛있는 걸 사 줄게”

“그러지 말고 너도 앉아서 같이 먹어라. 뉴스를 봤는데 김치는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더라. 이번 기회에 많이 먹어두면 좋잖아. 너도 매일 매일 먹어. 딱 보면 나중에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게 생겼구만.”

“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놈! 가만히 안두겠어!(^^)”

 

그날 친구는 ‘화나는 김에’(^^) 내가 ‘배터지도록 먹고 배불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 줬다. 김치찌개, 소고기김치볶음밥, 김치전, 정말 정말 맛있었다. 정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었다.

 

비관주의와 낙관주의의 차이를 잘 나타나는 예로 유명한 것이 물 반잔 이야기다. 컵에 담긴 물 반잔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와!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하는 반면 비관주의자는 ‘물이 반밖에 없어. 어떡해?’ 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후자는 절망에 빠질 것이고 전자는 희망을 얻을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생활 태도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관이 아닌가 싶다.

 

 

나의 그늘, 나의 눈물이 미래의 힘이 될 것임을 

 

 

지금 나는 석사 2학기다. 한국어를 여전히 잘 못하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내가 우리과 꼴찌라는 사실도 변함없지만 이제 그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는다. 언젠가시집을 살펴보다가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에 시선을 뺏겼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중략)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은 어디 있는가?

(하략)”

 

어려서부터 하도 많이 울어서 별명이 울보였는데 이 시를 읽고 나는 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번 눈물은 예전의 그 눈물과 같지 않았다.

 

예전엔 억울해서 울었고, 울고 나서 더더욱 억울한 기분이었다. 슬퍼서 울음이 터지면 눈물을 억지로 닦은 후에도 마음에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지나간 어려운 생활을 겪고 나서 삶의 햇빛이 더 밝아 보이게 되었고, 나한테 주어진 기회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받은 사랑을 더 감사히 여기게 되었다. 마음이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운 적이 없는 자는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울고 나서 더 용감해진 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의 심정을 잘 헤아려 그 사람을 도와주고 격려해 준다고 한다. 그렇다. 울고 나서 스스로 눈물을 닦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있는 자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를 격려해 주는 그늘이 될 것이다.

 

“눈물과 그늘이 있는 사람이 돼라.” 이러한 신념을 마음에 담고 창밖을 잠시 내다봤다. 개나리와 진달래와 벚꽃이 한창인 봄이다.

 

 

 

 

 

글 =  ZHOU JUAN(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