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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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유학생이 젤 좋아하는 한국말은?

법무부 블로그 2011. 6. 17. 14:00

 

원제 : 내게 기적과 같은 한국 (글 : 인인에이(YIN YIN AYE)

 

 

한국이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기쁘고, 한국 사람만 만나면 이국땅에서 고향사람을 만나듯 반가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한국어를 배운 지 벌써 9년(양곤 외국어 대학교 3년, 취직 3년, 유학생활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2년 봄 양곤 외국어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세계지도에서 가족들과 같이 찾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어머니께선 “이런 학과 나와서 뭐하냐”고 “차라리 취직이나 하라”고 하셨다. 이때 아버지께서 “3년제 대학이라 학위를 먼저 받고 나중에 취직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마지막에 학교에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남들처럼 아파트나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양곤에 있는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대학생활을 어렵게 시작했다.

 

나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들, 내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한국이라는 나라 즉 한국어를 배우게 되면서 얻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어를 배우게 된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뭔가에 빠져서 미친 듯이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를 배우고 있는 사람한테는 사전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한국어를 배웠을 땐 사전도 없었고 교과서 이외 다른 자료들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너무 좋아 기분이 들떠서 잠을 설쳤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마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몰랐던 상태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그 자체가 신이 났던 것이리라.

 

나는 나와 같이 한국어를 배웠던 대학 동기들과 알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 나와 비슷한 점들이 많은 그들과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어려운 가정상황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이들은 내가 평생 함께 하고 싶은 내 인생 제2의 동반자들이다. ‘인생에 돈보다 더 소중한 재산이 있다면 그게 친구’라고 하셨던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난다.

 

피로회복제 같은 한국어 단어 “우리”

 

나는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국인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꼭 한 번은 한국인의 정에 대해서 말하곤 한다. 나는 그런 한국인의 정을 '우리'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한국어 표현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 OO 밥 먹었어?

우리 OO 잘하네.

우리 학생, 우리 직원이에요.

우리 지현이 파이팅!

우리 지현이 잘 지냈어? (지현은 저의 한국 이름입니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아도 "우리 지현이, 우리OO"라는 말만 들으면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기분이 좋아서 얼굴에 미소를 띠게 된다. 나한테 "우리"라는 표현은 피로회복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쓰다 보니 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에 한국학과 다니는 사람들이 매년 100명 넘게 있고, 대학교 다니면 동기를 얻게 되는 것도 아주 평범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라는 표현을 나보다 먼저 쓰고 평생 쓰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천지에 살고 있는데 나 혼자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이국땅인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수 있어 너무 좋고 행복하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던 나에게 한국으로 가서 유학하는 것이 제일 큰 꿈이었다. 하지만 미얀마는 군사과도 정부라서 폐쇄적이고, 초청하는 사람 없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게다가 형편이 어려운 나한테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 한국으로 유학가고야 말겠다는 정신으로 대학교 다녔을 때도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도 늘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면서 한국으로 유학 갈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마침내 나는 한국정부 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을 통해서 2008년 9월에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 보다 1개월 정도 늦게 도착해서 처음에는 갈피를 못 잡아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1년 정도 어학연수를 하면서 또 다시 한국어와 씨름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듯이 피나는 노력 끝에 ‘세계한국말인증시험’에서 6급을 받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어학과에 대학원생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내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한 것은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를 어렵게 대학에 보내 주신 부모님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미얀마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다녔을 때도, 현재 유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의 생활비를 쪼개어 부모님께 드린다. 비록 지금 내가 보태준 것이 얼마 되지 않지만 이렇게 조금이나마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한국과의 소중한 만남을 통해서 평생 돈을 벌 수 있는 '한국어'라는 재산도 얻었고, 내 인생의 소중한 친구들과도 만났고, 부모에게 효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한테 꿈과 같았던 유학 생활과 대학원 공부들도 생겼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오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나한테 한국은 기적과 같은 하늘이 내려 주신 선물이다.

 

 

 

※ 이글은 법무부가 주최한 ‘2011 재한외국인 생활체험 수기 공모’에서 유학생⋅근로자⋅외국적동포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미얀마에서 온 인인에이(Yin Yin Aye)님의 글 ‘나에게 기적과 같은 한국’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살려두었고, 사소한 오탈자는 수정을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인인에이(지현)씨의 조국인 미얀마와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한국을 통해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부디 더 큰 성과를 이루셔서 자신과 부모님은 물론 가족과 조국을 위한 아름다운 삶을 일구어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