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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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 좋아하는 꿀떡 싸왔다아이가” 가을이면 생각나는 어머니

법무부 블로그 2010. 10. 1. 11:00

어머님이 가져오신 꿀떡

 

 

 

 

 

 

 

 

김00∥ (원주교도소 출소자)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전, 저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난생 처음 파란색 명찰에 수번을 달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수인번호는 4254번이었지요. 하루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거실에 있는데, “4254번, 접견!” 이라는 복무 주임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전해진 쪽지 한 장. 거기엔 ‘이진옥’이라는 이름이 뚜렷이 적혀있었습니다.

 

이 진자 옥자...... 제 어머니 성함이었습니다. 그 성함을 본 순간 제 가슴은 쉴 새 없이 쿵덕거리고, 눈앞은 노래지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란 존재 앞에서 제 몸과 머리는 텅 비어 버렸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는 췌장암 4기라는 중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 기약할 수 없는 운명의 기로에 서 계셨기 때문에 저는 어쩌면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어머니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제가 들어간 접견소는 1번. 그런데 접견소에는 빈 의자만 놓여 있을 뿐 어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저희 어머니를 찾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팔순 노인이라 길눈이 어두워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매고 계셨나 봅니다. 교도소 직원들도 저희 어머니를 찾느라 한참 동안 분주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저희 어머니가 접견소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들어오시자마자

“여기는 도대체 뭔 놈의 방이 이래 많은기고? 늬 찾는다고 아주 시껍했다.”

하시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연방 훔치셨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제게는 7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죄인인 저는 차마 어머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만 푹 숙인 채 얘기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러다 전자시계에 남은 시간이 4분이라고 표시되었을 때, 비로소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 그걸 들고 계셨는지 불편한 손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습니다. 제가 뭐냐고 묻자

“야 이놈아. 니 좋아하는 꿀떡하고 송편 사왔다. 이제 쪼매 있으면 추석인데, 늬 여기서 추석은 잘 보내겠나?”

하시며 비닐봉지를 돌돌 말아 가로막힌 아크릴 판을 미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못난 아들에게 꿀떡을 먹이고 싶으셨나 봅니다.

“내가 느 줄라꼬 이 꿀떡 가져왔는데 저 까만 모자 쓴 순경노무 짜석들이 꿀떡은 몬 준다하더라. 추석인데 자석한테 꿀떡하나 몬 멕이나?”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울상을 지으셨습니다. 팔순 노인이 생전 처음인 교도소 행정을 어찌 알겠습니까. 어머니는 아크릴 판을 밀었다 때렸다를 반복하며 ‘이노무 순경 짜석들’을 반복하셨습니다. 명절인데 아들 입에 꿀떡 하나 넣어주지 못 하는 것이 그렇게 마음 아프셨나 봅니다.

 

 

그 날 어머니를 뵙고 나서 저는 교도소에 있는 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야말로 제 가슴에 피멍이 들더군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 말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실 수용자에게는 음식물을 영치할 수가 없습니다. 전달 과정에서 음식이 상할 수도 있고, 그 안에 탈출을 시도할 수 있는 물품이 들어간다든지 보안상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영치금을 넣어주면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있지요. 또 명절이 되면 종교단체 등에서 떡과 과일을 전달해주기도 합니다. 비록 저는 어머니가 가져오셨던 그 떡은 맛보지 못 했지만, 마치 그 떡을 입에 넣은 듯 사랑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날 면회를 오시고, 머지않아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하지만 검은 봉지를 들고 접견소 밖으로 나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저는 가끔 검정색 봉지를 들고 걸어가시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옛 말에 부모는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아들이 불효를 하든, 감옥에 있든 전혀 상관없이 사랑해주셨던 어머니. 그 깊은 사랑을 제가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요?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오늘따라 어머니의 모습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이 글은 교정본부에서 재소자들의 글을 모아 만든 책

‘새길(통권 407호)’에 실린 글입니다.

죄목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재소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죄목을 밝히지 않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잠깐!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람들 중에 약 1/4은 3년 내에 또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복역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연평균 수용자 수가 4만 8천여명에 달합니다. 이 중 1만 500여명(22.7%)이 3년 내에 재복역하는 인원입니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아직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수형자를 대상으로 한 ‘재범방지 사업’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범죄예방 사업’보다 더 효과적이라 판단하고, 수형자들의 건강한 사회복귀를 위해 취업 알선·기술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형자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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