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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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다문화가정 자녀가 군대를 못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법무부 블로그 2010. 7. 28. 17:00

  

▲ 배기철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회장)

 

지난 5월, 제가 다니는 학교에 1세대 혼혈인 배기철(현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회장)씨가 특별 강연을 오셨습니다.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며 아픈 경험들을 참 많이 하셨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꿋꿋이 이겨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고, 지난 7월 배기철씨를 직접 만나 혼혈인으로 살아온 지난 50여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1957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인터뷰 당일, 배기철씨의 옷차림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50대에게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눈에 확~ 띠는 핑크색 티셔츠에 핑크색 운동화를 신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와서 오늘 옷차림이 좀 그렇습니다~” 머쓱하게 웃는 모습이 순수해 보이셨습니다.

 

얼굴은 서양인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분명히 ‘한국 사람’인 배기철씨. 그는 자신의 출생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며 조금은 가슴 아플 수도 있는 출생의 비밀을 밝혔습니다.

 

배기철씨의 어머니는 김해로 시집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잘 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 시장에 농산물을 팔러갔다가 미군에 의해 몹쓸 짓을 당하고 마셨습니다.

 

“제가 태어난 뒤 마을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죠. 저희 할머니는 대를 이어야 하니까 형만 남겨두고, 저와 누나 그리고 어머니를 집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저희 외가에서도 가문의 망신이라며 어머니와 저희를 쫓아내셨고요”

 

그렇게 친가와 외가 모두에서 쫓겨난 그는 그의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현재 부산 요트경기장 주변에서 작은 집을 얻어 살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는 강원도에서 다녔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호적이 없어서 이웃집 아저씨의 성을 빌려 ‘김기철’이란 이름으로 학교를 다녔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고 차별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이 친구들과 싸워야 하느냐, 아니면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느냐’ 그 사이에서 항상 고민했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그래도 다투는 일이 적었어요. 혼혈이라고 놀리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대응하면 제가 더 상처받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지금까지도 늘 조절하며 살고 있어요”

 

학교를 마치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어머니의 성을 따서 ‘배기철’로 이름을 바꾸고 일찌감치 돈 버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배기철씨와 같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과 결혼한 이주 여성들의 인권과 실질적인 복지를 구축하기 위해 사회에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은 편이었지만...”

 

 

“대부분의 1세대 혼혈인들은 고아원 신세를 면할 수 없었죠. 간혹 입양이 되기도 했지만,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해 파양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은 편이었죠. 어머니와 같이 살았고, 다른 1세대 혼혈인들처럼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전쟁이라는 조국의 아픔 속에서 슬픈 역사를 안고 태어난 1세대 혼혈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차별을 평생 견뎌내며 살아야 했지요.

 

“‘너 튀기지?’ 혹은 ‘야, 너네 엄마 양공주지?’ 이런 말은 차별도 아니에요. 나는 분명 한국 사람인데 국가가 나를 한국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거...... 세상에 그런 차별이 어디 있어요?”

 

그는 국방의 의무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978년 그가 군 입대를 위해 신체검사를 하러 갔을 때, 군 관계자는 아직 옷도 벗지 않은 그에게 4급 판정을 내렸습니다. 혼혈인은 군대 사회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1세대 혼혈인들의 입대는 완전히 ‘원천봉쇄’ 됐습니다. 배기철씨는 당시 국가로부터 ‘인권 모독’을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가 하는 차별은 ‘고차원적인 차별’입니다. 최근에는 관련 병역법이 일부 바뀌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혼혈인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실제로 시도해보지 않은 채 국민으로서의 의무인 군 입대를 거부당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한국의 많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며 국가에 의해 생긴 마음의 상처와 염려에 대해서도 털어놓았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 경북 영주에서 출생한 박근식씨(좌) 경기도 안산에서 출생한 안성자씨(우)

[사진출처= 국가인권위원회 홍보영상]

 

배기철씨에게 대한민국이 본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물어봤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나도 여기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나도 마음만 먹으면 이민 갈 수 있었지만, 나는 대한민국에 끝까지 남을 거예요. 자국에서 생긴 일은 자국에서 해결해야죠.”

 

배기철씨와 같은 1세대 혼혈인들은 6.25라는 역사적으로 아픈 상황에서 태어났고, 국가와 사회는 그들을 덮으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 껴안고 같이 가야겠지요.

 

“한국전쟁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에 대한 정서적 이해도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대한민국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다 같이 어울려서 즐겁게 살 수 있기를 바래요.”

 

사람은 누구나 생김새가 다릅니다. 누구는 키가 작고 누구는 얼굴이 동그랗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외모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지는 않습니다. 다문화가정 자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생김새가 다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더 이상 다문화가정 자녀가 외모 때문에 사회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거나 차별을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홍보 영상

http://www.humanrights.go.kr/04_sub/body06_3.jsp?flag=VIEW&SEQ_ID=482

(이 영상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동의하에 게재되었습니다.) 

 

 

     ※ 2008년 하반기부터 ‘혼혈인’이라는 단어 대신 ‘다문화 가정’ ‘다문화 가족’ ‘다문화 자녀’ 등의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기철 씨가 본인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로 ‘제1세대 혼혈인’을 말씀하셔서 이 표현을 쓰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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