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대한민국 법무부 공식 블로그입니다. 국민께 힘이되는 법무정책과 친근하고 유용한 생활 속 법 상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오토바이 타고 쇼핑몰로 도망가는 베트남 며느리, 쫓아가는 시어머니

법무부 블로그 2010. 7. 13. 08:00

디엔은 말괄량이

 

최병량 / 천안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디엔, 그녀는 베트남 남부 호치민 아래 한 마을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소녀다. 중산층의 삶을 살았던 디엔은 오토바이 타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다.

 

 

▲ 떡 만들기 체험 중인 말괄량이 디엔(오른쪽)

 

“저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특히 속상할 때는 야우리(천안 쇼핑몰)에 많이 가요. 물건을 사는 건 아닌데 그냥 야우리에 가서 구경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집안일을 배우기보다는 틈만 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철부지 며느리 때문에 디엔의 시어머니는 갈수록 주름살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엔의 시어머니가 디엔의 손을 잡고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천안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았다. 아주 춥던 겨울날, 자그마한 체구의 디엔과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디엔은 한국처럼 이렇게 추운 겨울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러나 전혀 낯설어하지 않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끔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오거나, 머리를 금방 감고 살짝 언 상태로 올 때도 있었는데, 춥지 않냐고 물으면 입에서 김이 풀풀 나는데도 하나도 안 춥다고 했다. 

 

▲ 디엔의 손엔 늘 책 대신 다른 것이 들려 있다. 오늘은 휴대폰이다.

 

한국어 공부를 할 때 디엔의 어머니는 디엔 곁에 바짝 앉으셔서, 행여나 당신의 며느리가 한 자라도 놓치거나 뒤질세라 연로하신 손으로 한 자 한 자 손수 짚어 주시며 정성을 다하셨다. 그러나 철부지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열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동건을 좋아하는 디엔은 입만 열면 드라마 얘기뿐이었다. 한국어를 빨리 배워야겠다는 의지는 약해 보였다.

 

어서 빨리 한국의 말과 문화를 배워 집안의 든든한 며느리로 또 아내로 자리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와 남편의 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디엔은 그저 느긋하기만 했다. 수업도 빼먹기 일쑤고, 공부도 하는 둥 마는 둥...... 가끔은 정말 한 대 콱! 꿀밤을 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 디엔은 마음씨가 착해 다른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의 주변엔 늘 사람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동행하던 길을 혼자 스스로 척척 오던 기특한 디엔이 언제부턴가 수업에 오지 않기 시작했다. ‘힘들었나? 왜 안 오지? 혹시...... 이...... 임신?’ 하며 안타까움과 궁금함을 번갈아가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오랜만에 디엔이 나타났다. 그런데 말괄량이 아가씨에게서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뭔가 심리적인 요인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조심스레 안부를 물어봤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왕방울 같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으며 어머니가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집에서 한글을 많이 가르쳐 주시는데 자신이 잘 따라하지 못하면 언성이 높아져 그럴 때마다 겁이 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살아계시는 동안 며느리가 남들에게 떳떳이 설 수 있도록, 며느리의 발음이 부정확할 때마다 큰 소리로 교정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은 속을 알 리 없는 디엔은 눈물만 흘렸던 것이다. 이것 역시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서 마음이 짠~ 했다.

 

시간이 흘러 디엔도 태중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나는 ‘드디어 디엔이 공부하겠구나’ 생각하며 디엔의 임신을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요 앙증스런 천사는 친구 따라,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제 맘대로 수업을 빠지더니, 제법 가족에게 공부 갔다 왔다고 능청스러운 거짓말도 했다. 처음에는 디엔이 혼날까봐 모르는 척 해줬는데, 결석이 빈번하여 한번은 불러다가 따끔하게 야단도 쳤다.

 

“디엔, 배 안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어요. 아기는 디엔을 엄마라 부르며 성정할 텐데 디엔은 어떻게 할 거예요? 디엔도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야죠!”  

 

▲ 제일 뒷자리에서 공부 중인 디엔, 체크무늬 난방을 입고 있다.

 

하지만 철부지 디엔은 ‘히~’하고 웃을 뿐 계속해서 속을 썩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디엔의 태도가 갑자기 180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한국어 공부에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와......! 검은 눈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총명함이 가득하고 매 시간 수업도 빠지지 않았다. 도대체 그녀를 변화시킨 건 누구였을까? 바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된 디엔의 아들이었다. 아들을 낳은 후부터 디엔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을 잘 도와줬던 디엔이 ‘결혼이민자 통·번역사’가 되겠다고 나섰던 것도 그쯤의 일이다.

 

결혼이민자 통·번역사는 ‘한국어가 미숙한 자국의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사회 문화 및 가족관계나 자녀 양육, 병원, 시장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통역, 번역은 물론이고 생활 전반의 정보제공, 고민 상담 등을 해주는 것이다. 

 

▲ 디엔은 지난 5월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도 치렀다.

 

어쨌든 오토바이만 타던 며느리가 통·번역사로 변신하자 디엔의 시어머니는 손수 육아를 전담하시며 디엔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항상 며느리가 공부하는 기관에 100%의 신뢰를 보이며, 공부하는 며느리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디엔의 남편 역시 아내의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주며, 다른 다문화가정의 남편들에게 부부문제 등을 상담해 주며 솔선수범하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일하러 갈 때마다 일찍 일찍 가라고 말씀하세요. 아기 걱정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해요. 앞으로 어머니 건강하고, 우리 신랑하고 아기도 건강하고, 저도 베트남 친구들 더 많이 도와주고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베트남 통·번역사로 일하며 표창장까지 받은 디엔

 

2010년 5월 이후부터 디엔은 천안지역의 베트남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를 보며 베트남 친구들은 마치 친정엄마를 만난 것처럼 든든해한다. 도움이 필요한 베트남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윗층, 아래층 동분서주하는 착한 디엔.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오토바이 대신 한국어 교재와 생활정보 안내 책자가 들려있다. 

 

▲ 베트남 친구들의 한국어 수업을 도와주고 있는 디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