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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젊은 미국남자

법무부 블로그 2010. 7. 8. 09:03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의 구비문학(口碑文學, oral literature)에 푹 빠진 미국인이 있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구비문학을 공부하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연한 발걸음이 인연이 되어 한국에 터를 잡고 대학교에서 번역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 교수 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수호(Charles la Shure)씨.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왜 한국 고전문학을 공부하세요?” 10년 넘게 같은 질문 들어요^^

 

“한국의 고전문학이 왜 좋으냐고 물어보면 설명하기가 참 어려워요. 뭔가 특별한 이유를 기대하며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 대답은 '그냥 좋다'예요. 그냥 좋은데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까요?”

 

나수호 교수는 어려서부터 옛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옛 문명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고고학자를 꿈꾸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영문학 문예창작을 전공할 때에도 유독 영국의 고전문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런 그가 한국에서 한국의 구비문학에 관심을 보이고 공부를 하는 것이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외국인이 흔치 않은 탓에 ‘왜 한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냐?’는 질문 세례를 벌써 십여년 째 듣고 있는 것이다.

 

나교수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설화, 그 중에서도 특히 트릭스터(trickster) 설화다. 트릭스터 설화는 장난을 치거나 속임수를 써서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구조의 이야기인데, 일반적으로 욕심이 많고 성적 욕구가 강한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야한 이야기가 많다고.(^^;) 트릭스터는 전 세계 어느 곳에나 있지만 한국처럼 보전이 잘 된 나라도 없다고 한다.

 

“저는 주인공이 뛰어난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모면하는 내용에 상당한 재미를 느껴요. 재미있지 않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할 수도 없었겠죠. 한국에서 십년 넘게 고전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고전문학이 그 만큼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내 머릿속에 사과를 100% 설명할 수 있나요?

 

나수호 교수는 염상섭의 <만세전>, 전상국의 <플라나리아>, 김영하의 <검은꽃>,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 등 다양한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모두 한국의 문화적 배경과 민족적 정서가 스며든 작품이라 외국어로 번역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머릿속에 빨간색 사과를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사과가 정확히 어떤 색인지, 어떤 모양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보세요.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내가 생각하는 사과와 내 설명을 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사과가 100% 일치하지는 않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이해할 수 있죠.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는 문화적 특성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해요.”

 

한국인 독자가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들을 외국인 독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완벽한 번역은 없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 교수는 단어가 아닌 문장을 번역의 기본 단위로 삼는다. 예를 들면 ‘무당’을 번역할 때 단어를 발음 그대로 ‘moodang’이라고 옮기기보다는 ‘shaman(샤먼)’이라고 표현한 후 무당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그러나 나 교수는 외국인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는 이유로 문화적 특성을 지나치게 변형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번역서를 찾는 독자들은 대부분 책을 통해 이국적인 것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그 생소함에 강렬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문학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열린 마음이 필요하죠. 그런데 번역서를 찾아서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 문화의 낯설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러니 일단 독자를 믿고 독자가 스스로 경험하고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런 경험이 더해지면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점차 완전해지는 거니까요.” 

 

 

 

옛날엔 한국 여자 손 잡고 가면 욕하는 사람들 많았어요~

나수호 교수는 1995년 한국에 왔다. 언젠가는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년 정도만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당시 서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던 한국인 친구 덕분에 한국에 머물 결심을 했다. 지금의 부인이 바로 그 한국인 친구다.

 

그가 15년 전에 경험했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많은 차이가 있다.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부드러워졌고, 외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도 많아졌다. 여러 가지 면에서 생활이 편해졌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 여자와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심지어는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많이 열려 있는 거죠.”

 

한국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며 변화하는 동안 나수호 교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의 문학과 문화를 공부하면서 삶이 더 풍부해진 것 같다는 그는 앞으로 한국 구비 문학에서 경험했던 많은 요소들을 활용해 창작 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다른 번역가들은 좋은 작품을 읽으면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는데 저는 번역보다는 ‘나도 이런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한국의 설화를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창조하고 싶기도 하고, 외국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친구들이 교재로 쓸 수 있는 학술서도 만들고 싶어요.”

 

창작의 꿈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나수호 교수. 문학가로서, 번역가로서, 교수로서의 삶에 모두 충실하고 싶다는 욕심 많은 그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 글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출간하는 잡지인

‘공존’[17호]에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