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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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블기 이야기/힘이되는 법

법무부 골탕먹인 의문의 그 사나이

법무부 블로그 2010. 5. 30. 08:00

 

 

 

 

 

 

 

 

 

 

의문의 씽나칭 아저씨 

글. 노종인(광주출입국관리사무소)

 

 

 

 

출입국에서 근무한 지 어언 8년. 불법체류자로 의심은 되지만 인적사항 조회가 되지 않아 경찰서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오는 사람들은 부지기수. 하지만 그날은 확실히 달랐다. 민원인과의 힘든 전투를 마칠 무렵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불법체류자로 의심되는 씽나칭 씨란 사람을 단속했으나 아무리 전산 조회를 해봐도 ‘씽나칭’이라는 이름의 외국인은 없다는 것이 경찰관의 설명이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지만 일단 그를 만나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전형적인 필리핀 사람처럼 보여 먼저 국적을 물었다.

 

“아저씨 필리핀 사람이에요?” “네.” “이름은요?” “씽나칭이요.” “여권은 어디에 있어요?” “잃어버렸어요.”

 

대답은 쉼 없이 이어졌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필리핀 국적이라는 그가 전라도 사투리를 너무 잘 쓰는 것이다. “아저씨, 외국인이 어떻게 전라도 사투리를 그렇게 잘 써요?”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잡았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는 순간, 그의 대답은 나의 기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내가 필리핀에서 한국인 선교사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지 40년이요. 전라도에 산지도 35년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필리핀에 살던 7살 때쯤 교회에서 만난 한국인 선교사를 따라 한국에 들어와 줄곧 전라도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한 편의 영화같은 그의 이야기에 속수무책으로 시간이 흐르기를 몇 시간, 갑자기 그가 말문을 열었다.

 

“밥 안먹어요? 나는 배고프면 아무 것도 못하는데….” 그 순간 번뜩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유치하긴 하지만 어쩌면 넘어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렇지 않은 듯 너스레를 떨었다. “아저씨, 배고파요? 우리 맛있는 거 먹을까요? 아아…근데 밥 먹기 전에 아저씨 이름하고 생년월일 찾는 일 먼저 끝내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기다렸던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사람이라고 감쪽같이 속았던 씽나칭 씨의 정체는 전라도 토박이인 노○○씨.

 

단지 필리핀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된 어이없는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덤덤하게 저녁식사까지 끝내고 경찰서로 다시 돌아가는 그에게 우리는 황당했던 사건을 뒤로 하고 정겨운 작별인사를 건넸고 그의 대답에 우린 또 한 번 웃어버렸다. “씽나칭 아저씨, 이제 필리핀 사람이라고 하지 마세요.” “어, 알았어~ 다음부터는 미국 사람이라고 할게.”

 

 

 

 

 

 

 

 

 

 

이 글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출간하는 잡지인

‘공존’[2008년 겨울호]에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