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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종으로 인한 난민신청, 쉽게 인정할 수 없는 이유

법무부 블로그 2010. 5. 16. 17:00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국적․난민과 김상열

  

 

 

난민심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사례는 아무래도 개종을 이유로 한 난민신청이다. 이들 대다수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이다.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우리가 한국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10만 명의 무슬림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 이란 출신 난민신청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경험하거나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키스탄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끝없는 분쟁 국가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수니파는 전 세계 이슬람의 다수를 이루는 종파로서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한 1~4대 칼리프(이슬람 최고지도자)의 적통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4대 칼리프 알리만이 유일한 계승자이며 그에 앞서 즉위한 세 사람의 칼리프는 알리의 지위를 가로챈 사람이라 하여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알리가 죽고 그의 아들 후세인(무함마드의 손자)이 수니파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은 지금까지도 시아파 무슬림에게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때 후세인을 돕지 못한 것을 비탄하여 자신의 몸을 자해함으로써 속죄하기 위한 행사가 바로 그 유명한 ‘모하람 축제’이다. 시아파들은 이 축제를 통해 채찍이나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쳐서 피를 흘리기도 하고, 칼로 머리에 상처를 내고 피범벅이 된 얼굴로 길거리를 행진하기도 한다. 모하람 축제는 수니파에 대한 적개심과 후세인에 대한 추모를 담고 있어 항상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하는데, 파키스탄의 경우 두 종파의 극단주의자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테러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에 온 이란인은 이슬람사원 대신 교회를 찾는다!

 

세계 최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경우 원래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하다가 7세기 아랍의 침입 이후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찬란한 고대문명을 이룩한 페르시아제국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이란인은 종교적으로 같은 무슬림이라고 하더라도 아랍 민족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 큰 모독을 느낀다고 한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뼈아픈 역사가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을 때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란인들이 대한민국에 입국한 뒤에는 다른 나라 무슬림처럼 이슬람사원을 방문하지 않고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태원에 있는 중앙이슬람사원을 포함해 국내에 있는 모스크 대부분이 수니파 사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에서는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기가 쉽고, 교회 측에서 이들을 위해 피난처 겸 쉼터를 제공하거나 다과 등을 준비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말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교회를 찾는데,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예배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보고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개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목사의 말에 따르면, 정말로 개종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은밀히 자신을 찾아와 기독교에 관심이 있다는 뜻을 밝힌다고 한다. 목사 역시 그 사람의 안전을 위해 다른 이란인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기도나 성경에 대해 알려준다.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 난민신청하겠다는 무슬림, 믿어도 될까?

 

기독교로 개종했다며 난민신청을 하는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어릴 때 ‘모하람 축제’를 보고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뒤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사람도 있었고,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는 일반 무슬림과는 달리 예언자 무함마드가 9살이 된 부인을 포함하여 13명의 부인과 결혼한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하루에 다섯 번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으며, 이것 때문에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고 토로하는 신청자도 있었다.

 

개종자들을 면담해 보면 실제 코란이나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상식적 물음에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기독교 개종으로 인한 난민신청자의 경우 한국에 입국한 후 개종한 사례가 많은데, 대부분 이슬람국가인 본국에서 박해를 받은 사실이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자신의 나라에서는 종교로 인하여 위협받은 사실이 전혀 없는 이들이 돌아가서 박해를 받을 정도의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교회 목사 등 주변인들의 증언을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신청인이 난민인정을 목적으로 오래전부터 계획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것이라면 또한 기독교 교리에 대해 학습한 것이라면 난민임을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종교의 다양성 인정하는 한국은 평화로운 곳

 

난민심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대한민국은 종교적 다양성과 자유가 존중받는 매우 평화스러운 곳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가 난민신청자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새삼 여기 서 있는 내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난민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다른 심사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의 첫 장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길게 줄지어 피난가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있다. 내가 지금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흑백사진 속 고단하고 힘들었던 우리들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출간하는 잡지인 ‘공존’[2010년 봄호]에

게시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