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온 A씨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힘이 너무 약해 국민을 보호해 줄 수가 없어요.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저를 보호해 줄 곳은 아무데도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의 삶도 순탄치는 않네요. 난민 신청을 했지만, 인정을 받지 못 해 아직까지 소송 중에 있습니다. 한국에 온지 8개월이 됐지만 생계비 지원도 없고, 취직도 못 합니다. 하루 종일 빵 하나로 버틴 적도 있어요. 얼마 전엔 사고로 손을 심하게 다쳤는데 병원에 갈 수 없어, 연고를 바르며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밤에는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잡니다. 거기다 한국 사람들은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저는 제 고향에서 연구원으로도 일했던 엘리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천덕꾸러기’일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절 받아주지 않는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 한국의 난민신청자 가운데는 탈레반을 피해 온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 글은 난민의 신변보호를 위해 가상으로 작성했습니다.
동아시아 난민 NGO 국제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다
4월 28일 수요일, 연세대학교(신촌) 국제회의장에 홍콩과 일본의 난민지원 비정부기구(NGO)대표와 한국대표부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사)피난처와 일본난민협회, 그리고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주최로 ‘동아시아 난민NGO 국제회의 : 동아시아의 난민보호와 시민사회의 역할’이란 주제의 국제회의가 열렸지요. 각국의 난민지원 NGO 대표들은 ‘난민보호와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는 목소리들을 냈습니다.
이 날 열렸던 회의를 통해 동아시아 국가들(한국, 일본, 홍콩)의 난민 현황과 실태, 그리고 각 국의 난민지원 NGO들이 정부를 대신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날 회의에 참석했던 동아시아 국가의 정부들은 모두 난민 인정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밖에도 중국은 1982년 난민협약 가입 후 현재까지 단 한 건의 난민신청 조차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2009년까지의 통계를 잠깐 보실까요?
|
신청 |
허가 |
인도적 지위 |
불허 |
대한민국 (1992년~) |
2492 |
175 |
93 |
1409 |
일본 (1981년~) |
8685 |
538 |
1383 |
․ |
홍콩 CAT (by UNHCR) |
6308 |
1 |
0 |
․ |
▲ Anne Campbell (UNHCR 한국 대표)
UNHCR(UN에서 난민을 담당하는 기구) 한국대표부의 Anne Campbell은 “난민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정부에 있어요. 자국의 국민들 뿐 아니라 난민과 난민 신청자들에게도 주권을 행사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국가가 이 모두를 책임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의 ‘피난처’ ‘난민인권센터’ 같은 NGO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런 NGO들은 난민과 정부를 이어주고, 난민과 시민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각 국의 비정부기구(NGO)들은 어떤 역할을 할까?
일본 NGO인 ‘일본난민지원협회(JAR)’는 난민신청자와 난민들에게 일본어 교실을 열어주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기업과 연계하는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뒀다고 합니다. 또 홍콩 NGO인 ‘홍콩국제사회서비스(ASTC)’는 의료치료 및 심리치료, 교통비․공공서비스 사용료․생필품 등 생활을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난민지원 NGO인 ‘피난처’와 ‘난민인권센터’는 무슨 일을 할까요? ‘피난처’와 ‘난민인권센터’는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게 법률 지원을 해 줍니다. 또 일부 의료인들과 연계해 의료 지원도 해주며, 생활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난민을 알리고 시민들의 의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피난처’에서는 한글교실과 태권도교실 등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난민인권센터’에서는 난민들의 어린 아기들에게 분유를 제공하는 일도 한다고 합니다.
난민지원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
난민과 난민신청자들 속에서 뛰는 현장 사람들을 만나, 난민에 대한 국제적 분위기와 국내 분위기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황필규 /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우리나라의 현행법 상, 난민에 관한 부분은 출입국관리법에 규정되어 있는 조항들을 따릅니다. 그런데 이 조항들이 주로 절차와 규정 중심, 그리고 당국의 감독․관리 권한에 대한 내용이에요. 그래서 난민의 생계, 사회적 처우, 난민들이 원만하게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 등 이들의 실체적 권리를 보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죠. 우리나라에선 난민 신청을 한 시점부터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현행 상 합법적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정부가 허가를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 신청 진행기간 동안 생계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겪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것 같아요.
최원근 / 난민인권센터 팀장
법무부에서 ‘난민지원센터’를 건립 중이죠? 정부가 난민과 시민사회의 통합, 그리고 여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요. 우리나라에 온 난민 신청자는 대부분 서울이나 수도권에 거주하는데 난민지원센터는 인천 영종도에 설립되거든요. 서울에 소규모로 조금씩 분산해서 센터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이호택 / (사) 피난처 대표
우리나라는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지만, 많은 시민들이 ‘난민’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고 약간의 색안경을 끼고 있어요. 그렇기에 난민들이 차별도 당하고, 한국인들에게 환영을 못 받으니 자존감도 낮아요. 하지만 이들은 우리에게 잠깐 온 것이에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쫓겨 온 사람들이지요. 한국에서 난민으로서 머물다가, 자국의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때 까지 만이라도 정서적으로 서로를 이해해주며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이들이 돌아가서도 잘 살 수 있도록 말이죠!
난민법 제정, 국회 논의 중
이런 생계적인 부분 외에도, 우리나라 난민 신청제도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통역’ 이지요. 황필규 변호사는 “난민 심사 시, 통역 문제도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비영어권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도 많은데, 대부분의 난민 심사가 영어나 한국어로 진행되고 있거든요. 난민들은 그들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입니다. 자신들이 박해받은 정황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언어의 제한으로 제대로 통역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는 다른 난민 신청자의 도움을 받아 박해과정을 설명하는 특이한 상황도 발생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무부의 고민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난민심사에 필요한 정확한 의사·정보 전달을 위해 현재 난민신청자에게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신청자가 구사하는 50여 가지의 언어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통역할 인력을 구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또 시간당 통역비가 낮게 책정되어 있어 질 높은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고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준 높은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통역예산 증액을 검토하는 한편,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통역사풀을 구성하여 UN등과 협력 하에 교육 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국회에서 현재 ‘난민법’이 발의되어 심사 중에 있으며 법무부에서도 난민법 제정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난민법이 제정되면 난민들을 정부가 어떻게 보호해줄 것인가에 대한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질 것이므로, 난민의 환경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요즘 길을 가다보면 외국인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유학생들도 있고, 관광객도 있고, 취업비자를 받아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난민’도 있겠지요. 난민은 한국이 친근하게 느껴져서, 한국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목숨 걸고 우리를 찾아온 ‘이웃’입니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어떨까요?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조금 특수한 상황에 있을 뿐이에요. 난민을 위해 따듯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우리 시민사회의 첫 걸음을 지금 당신부터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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